'집단 단교' 신세서 해결사 됐다…바이든이 러브콜하는 이 나라 [세계 한잔]

중앙일보

입력 2022.02.13 05:00

※[세계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맏형의 그늘에 가려졌던 중동 걸프만의 작은 나라 카타르가 연이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엔 전통의 우방 사우디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풍부한 석유 자원이라면 어느 나라도 뒤지지 않는 중동에서 경기도 면적에 불과한 자그마한 영토(1만1586㎢)를 가진 카타르가 위상을 떨치게 된 배경엔 왕실의 독특한 개혁 행보가 있다.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가 지난 2019년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차량을 타고 있다. [로이터=뉴스1]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가 지난 2019년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차량을 타고 있다. [로이터=뉴스1]

“카타르, 바이든 행정부의 필수 동맹으로 떠올라”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야욕을 견제하기 위한 서방 세계의 발 바쁜 대처가 이뤄지고 있는 와중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카타르의 에미르(군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를 만났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을 찾은 첫 걸프 지역 지도자였다. 양국은 이날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천연가스 확보 논의 등을 심도 깊게 진행했다. 카타르는 2021년 기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와 회담을 하고 있다. [AFP=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와 회담을 하고 있다. [AFP=뉴스1]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진작 이뤄졌어야 했던 일”이라며 “카타르의 주요 비 나토동맹국(Major non-NATO ally‧MNNA) 지정 의사를 의회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MNNA 명단에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 17개 국가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중동에 위치한 동맹국은 바레인과 쿠웨이트뿐이고, 최근 3년간 새로 가입한 나라도 2019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과시하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브라질이 전부다.

이런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가 예외적이라는 반응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바이든 행정부가 카타르와 밀착하는 것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UAE)에 우호적이었던 것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미 CNN은 “중동에서 소외됐던 카타르가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동맹국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천연가스 수출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세계 천연가스 수출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카타르는 앞서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다. 지난해 8월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된 후 물밑에서 탈레반의 도발을 억제하며, 카타르 항공 전세기를 이용해 아프간을 빠져나오지 못한 외국인들을 카타르 수도 도하로 이송하는 역할을 했다. 애초에 지난 2020년 2월 도하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탈레반 간 평화 협상이 타결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도 카타르가 탈레반과 신뢰 관계를 형성해온 역할이 컸다. 카타르는 현재까지도 탈레반과 미국 정부 사이의 완충 지대이자,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친미 왕정’이 ‘반미 테러리스트’ 지원하는 기이한 나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지난해 9월 카타르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마련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속 센터에 도착해 미군 관계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지난해 9월 카타르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마련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속 센터에 도착해 미군 관계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지난 2017년 사우디를 비롯한 7개국으로부터 ‘집단 단교’를 당했던 신세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당시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아랍권 7개국은 카타르가 이슬람국가(IS) 같은 급진 테러조직을 지원한단 이유로 단교를 선언하고 카타르와 통하는 ‘육·해·공’ 통로를 봉쇄했다. 단교 사태는 3년 7개월을 끌다 2021년 1월에야 종식됐다. 지난 1일 CNN은 “(단교 사태 때만 해도) 카타르가 쇠퇴하는 것이 시간문제로 보였지만, 이젠 국제사회의 핵심 국가가 되기 위한 도전이 주목받게 됐다”며 “이란 핵 협상을 진행 중인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도 셔틀외교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러니하게 카타르가 이란 핵협상에서도 역할이 가능한 것은 사우디 등으로부터 비난받은 바로 그 이유, 수니파 국가이면서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단 점 때문이다. 카타르는 반미 핵심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의 실질적 최대 후원국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내 과격 단체들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지원하고 있다. 탈레반에도 지난 2013년 도하에 사무실을 마련해주고, 핵심 지도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외교관 신분으로 대접했다. 이 같은 ‘광폭 행보’가 바이든 정부 들어 다시 대접받는 분위기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미국인들은 모호함에 익숙하지 않고, 모든 국가를 좋은 동맹과 나쁜 동맹으로 나누는 데 익숙하지만 중동의 복잡성은 그런 동화 같은 명료함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해설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 지난해 9월 탑승객을 태우기 위해 서 있는 카타르 항공 항공기.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 지난해 9월 탑승객을 태우기 위해 서 있는 카타르 항공 항공기. [AFP=연합뉴스]

알자지라 세운 아버지, 메시팀 구단주 아들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카타르 전 군주. [AP=뉴시스]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 카타르 전 군주. [AP=뉴시스]

카타르는 지난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사우디 왕실과 같은 사우디 중부 나즈드 지역 출신이고,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비즘을 계승한다는 이유로 사우디의 동생 국가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1995년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 전 군주는 왕세자였음에도 당시 스위스에 머물고 있던 친 사우디 성향의 부왕을 몰아냈고, 18년 동안 카타르를 ‘강소 부국’으로 만들었다.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엔 사우디 주둔을 거부당한 미 공군을 알 우데이드 기지를 통해 대거 받아들여 미국과 밀착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물리적 한계를 넘기 위해 소프트파워에 주목했다. 폐쇄적인 아랍 언론 환경을 개선하고자 아랍권 최초의 24시간 뉴스 채널 알자지라를 설립했고,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다. 이후 2013년 중동 왕정국가에선 매우 이례적으로 60대 초반의 나이에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취임부터 퇴임까지 모두 보수적인 중동 왕실에선 상상하기 힘든 행보였다.

카타르 도하의 알자지라 방송국 본부. [APF=연합뉴스]

카타르 도하의 알자지라 방송국 본부. [APF=연합뉴스]

이런 부친의 성향을 물려받은 타밈 군주도 집권 이후 개혁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소프트파워를 중시하는 행보를 계승했다. “다른 어떤 지역적 한계에 구속받지 않고, 카타르만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란 게 그의 취임 일성이었다.

현재 카타르의 인구는 약 300만 명(시민권자 약 40만 명)에 불과하지만 지난 2020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4만9746달러(약 6000만원)로 세계 6위다. 카타르가 중동 지역에서 최초로 월드컵 유치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타밈 군주는 최근 유명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를 영입하면서 화제가 된 축구팀 파리생제르맹(PSG)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자국 생산 LNG의 대부분을 아시아로 수출하는 카타르는 한국 최대 천연가스 공급국이자, LNG 선박 발주국이다.

타밈 군주는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 연단에 올라 아프간 사태 관련 “도하가 지역 내 문제를 논의하는 다자간 협의장이 된 것이 기쁘다”며 “카타르는 앞으로도 세계의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테러연구기관인 수판센터의 콜린 클라크 선임연구원은 “카타르는 여러 전쟁 당사자가 갈등을 끝낼 방법을 찾도록 돕는 정직한 중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며 “카타르는 분쟁 당사자가 중립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중동의 제네바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아프리카중동연구부장은 “걸프만의 작은 국가였던 카타르가 어딘가에 종속된 국가를 넘어서기 위해 선택한 것이 지금과 같은 외교 행보였다”라며 “아프간 등이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미국이 원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선 카타르의 도움이 필수적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카타르 군주(에미르)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왼쪽)가 지난해 1월 제41차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도시 알울라에 도착, 무함마드 빈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의 환영을 받고 있다. 카타르 군주가 사우디를 방문한 것은 2017년 6월 사우디와 단교한 이후 처음이다. [사우디 왕실 제공=연합뉴스]

카타르 군주(에미르)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왼쪽)가 지난해 1월 제41차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도시 알울라에 도착, 무함마드 빈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의 환영을 받고 있다. 카타르 군주가 사우디를 방문한 것은 2017년 6월 사우디와 단교한 이후 처음이다. [사우디 왕실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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