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천연가스 무기화 막는다…美, 유럽 공급 확보에 직접 SOS

중앙일보

입력 2022.01.26 17:19

업데이트 2022.01.26 18:07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아킬레스건(취약점)으로 등장한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대체하는 전략에 나섰다. 대러 전선을 앞두고 일치단결이 절실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유럽의 ‘에너지 안보’ 불안을 해소해 동맹의 결속을 다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유럽은 러시아 가스의 최대 소비처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가는 직통 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 스트림2' 건설현장. 지난해 9월 완공했지만, 아직 사용 승인을 얻지 못했다. [AP=연합뉴스]

러시아에서 독일로 가는 직통 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 스트림2' 건설현장. 지난해 9월 완공했지만, 아직 사용 승인을 얻지 못했다.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 CNN 등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경우 이를 대체할 중동·북아프리카 공급업체를 찾는 중이다.

미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 정부가 유럽으로 통하는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며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단기간 천연가스를 증산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오는 31일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군주를 만나 글로벌 에너지 공급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 중 하나인 카타르는 자국 생산량의 대부분을 한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수출 중이다. 이를 일정 부분 유럽으로 돌리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24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카타르 외무장관과 통화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

NYT는 “미국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핵심 전략(key strategies)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최근 몇 주간 미국 관리들이 세운 계획은 1948~1949년 당시 소련의 봉쇄를 뚫고 서베를린에 구호물자를 공급한 ‘베를린 공수작전’(Berlin airlift)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또 미국은 자국 생산 물량의 유럽 수출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유럽-러시아 간 가스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유럽-러시아 간 가스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유럽 전체 물량의 약 4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이는 서방 입장에선 ‘약한 고리’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겐 ‘지정학적 위협을 노린 무기’가 됐다. 특히 지난해 9월 ‘노르트 스트림 2’ 파이프라인을 완공했지만, 아직 쓰지 못하는 독일은 심각하다. 유로스타트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자국 가스 수요의 50% 이상을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다.

탈핵‧친환경 정책을 추진 중인 독일은 올해 3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고, 오는 2038년까지 석탄 발전도 중단할 계획이다. 당분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임스 헉스텝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플랫츠 애널리스트는 “유럽이 얼마나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매우 그렇다”고 말했다.

세계 천연가스 수출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세계 천연가스 수출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 유럽은 지금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풍력 등 북해의 신재생에너지 생산이 저조한데다, 지난달 러시아가 ‘상업적 이유’를 내세워 야말-유럽 파이프라인을 잠그면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25일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네덜란드 TTF 거래소의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메가와트시(MWh)당 93.6유로(약 12만6500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20.2유로)보다 4배 뛰었다.

영국 북해 천연가스전의 증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의 기후위기 대응에 반한다는 내부 비판이 일면서다.

그러나 카타르산을 들여온다고 해도 액화천연가스(LNG) 설비 등이 부족해 애로가 따른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오는 가스는 기체 상태로 오는 데 반해 카타르산 LNG는 액체 상태라 해상에서 육상으로 옮길 운반선과 저장 시설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받는 러시아산과 달리 선박으로 수송하는 미국‧중동산 LNG는 복잡하고 비싸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영국 노스요크셔 지역에서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져 사람들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영국 노스요크셔 지역에서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져 사람들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또 유럽의 수급 불안정을 해소하기엔 양이 역부족하고, 각각 입장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WP는 “이런 대책은 유럽 국가의 광범위한 보조금 정책을 동반해야 하는데, 모든 국가가 우크라이나의 운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에너지 인프라가 취약한 일부 국가에겐 까다로운 제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최근 셰일가스를 통한 천연가스 생산량이 늘어 (파이프라인을 제외한) 세계 1·2위 생산국이 됐다”며 “남아도는 셰일가스를 이용하기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LNG 수출은 전 세계 물량의 22%를 차지하며, 카타르·호주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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