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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단독인터뷰 "20년 전 오노 사건과 똑같아...中 이기는 법? 앞뒤에 안둬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김동성(왼쪽)의 금메달을 뺏아간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상황. [중앙포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김동성(왼쪽)의 금메달을 뺏아간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상황. [중앙포토]

“오노 사건 이후 20년이 지났는데도 편파 판정이 나오네요.”

2022년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편파 판정에 김동성(42)도 분노했다. 한국 황대헌과 이준서는 지난 7일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황당한 판정 탓에 나란히 실격을 당했다. 앞서 김동성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안톤 오노(미국)의 할리우드 액션 탓에 실격 당하며 메달을 놓친 바 있다.

김동성은 8일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저도 90년대에 중국에서 시합을 많이 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 전부터 아내에게 ‘비디오 분석 아무 의미 없어’, ‘바람만 스쳐도 실격 줄거야’라고 말했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근 논란이 있었지만 김동성은 쇼트트랙만 놓고 보면 레전드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를 땄다.

어제 경기를 어떻게 봤나.

“열 받죠. 저도 국민 한 사람으로서 욕 나오죠. 저도 스케이트를 탔던 선수로서 흐름이란 걸 알아요. 실격인지, 실격이 아닌지. (어제는) 실격 될 만한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황대헌과 이준서 선수를 실격 처리 시켜 버리는 걸 보고 화가 났죠. 과연 ‘선수들을 위한 올림픽인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외국 손님 초대해 놓고 들러리 세워 놓은 것 같아요. 4년을 준비한 선수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거라면 아예 개최를 안 하는 게 낫죠.”

한국 선수단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기로 했다.

“국민 여러분은 제소하면 바뀔 거라 기대하시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마도 결과가 바뀌지 않을 거에요. 제소하는 이유는 남은 경기에 피해보지 않기 위한 포석일거에요. 심판진에 ‘함부로 하지마’라고 경고를 주기 위함이죠. 분명 심판에게도 한국 선수단의 얘기가 들어갈 거에요. 다른 나라도 목소리를 낸다면 심판도 사람인지라 두려움이 있을거에요. 막 하지는 않겠죠.”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황대헌이 인코스로 파고들어.런쯔웨이(54번) 리원룽을 제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황대헌은 패널티를 받아 실격됐다. 김경록 기자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황대헌이 인코스로 파고들어.런쯔웨이(54번) 리원룽을 제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황대헌은 패널티를 받아 실격됐다. 김경록 기자

황대헌 선수는 자리를 뺏는 과정에서 레인에 늦게 진입했다며 페널티를 받았다.

“황대헌 선수가 나갈 때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뒤에 있던 두 번째 중국 선수가 왼 손으로 황대헌 선수의 무릎 뒤를 건드렸어요. 거기서 세게 밀면 뒤로 넘어지거나 앞으로 고꾸라질 수 있어요. 툭 쳐도 힘이 빠져 중심을 잃게 돼요. 중국의 두 번째 선수는 얼음판에 들어오기 전부터 무조건 막는 작전이었을거에요. 아마도 ‘네가 희생해서 막아라’는 지시를 듣고 황대헌 선수를 막았을 거에요. 결승에서도 헝가리 선수를 못 나가게 계속 막더라고요. 완전히 한 명을 잡고 늘어졌어요.”

황대헌 선수가 파고 드는 기술은 어땠나.

“조금 위험한 기술이기는 해요. 부딪히면 실격 처리 당하거나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 기술을 성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거에요. 1000m 예선에서 이준서 선수가 보여준 것과 같은 기술이에요. 그 기술을 정확히 알고 있는 선수들이니 깔끔하게 나간거죠. 그 순간 집중력과 파워로 빠져 나간 거에요. 쉽게 비유하면 자동차 ‘칼치기’처럼 위험하긴 하지만, 엔진이 튼튼한 스포츠카라서 쭉쭉 빠져 나간거죠. 얼음판에서는 상대에 위협적인 기술이에요.”

이준서 선수도 샤오린 산도르 류(헝가리)와 접촉 과정에서 레인 변경 반칙을 했다며 실격 당했다.

“실격의 이유가 없어요. 헝가리 선수와 같은 선상이었다면 실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준서 선수가 앞에 있었고, 헝가리 선수의 어깨가 뒤쪽에 있었어요.”

레인 변경 규칙은.

“같은 선상 여부가 중요해요. 도로에서도 2차선에서 1차선으로 훅 들어오는 차가 잘못이잖아요. 비슷하게 난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날 막으려 들어왔다면 실격이죠. 옐로 카드는 저희 때도 있었지만 요즘 많이 나오더라고요. 한 경기에서 위험한 플레이를 두 번 하면 실격과 함께 옐로카드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결승에서도 헝가리 선수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비디오 판독 끝에 2위로 들어온 런쯔웨이(중국)에게 금메달이 돌아갔다.  

“아… 중국이니까 가능한 거에요. 저도 옛날에 중국에서 시합을 많이 했어요. 베이징올림픽 전부터 아내에게 ‘비디오 분석 아무 의미 없어’, ‘바람만 스쳐도 실격 줄거야’라고 말했거든요. 전 경험해봤잖아요. 제가 잘 빠져 나와도 (소용 없어요). 90년대에 중국에서 시합하면 더 심했어요. 중국 선수들이 손으로 잡아당기는 이유요? 몸에 밴 거에요. 그런 것들은 한 번에 나오지는 않아요. 몸에 밴 거죠. 중국인들이 요즘 쇼트트랙을 많이 좋아한다고 해요. 한국의 1998년, 2000년처럼 쇼트트랙 붐이 일어난 것과 비슷하게.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 쇼트트랙에서 메달이 많이 나와야 하고, 체육계도 눈치를 보지 않을까요?”

“오노는 양반이었다”는 재평가까지 나온다.

“헝가리 선수(샤올린 산도르 류)가 충격이 클 거에요. 결승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뒤바뀌었으니. 일등으로 들어왔는데 실격을 받으면 충격이 엄청나요. 그런데 베이징올림픽은 한 선수만 기죽이는 게 아니라 한국 팀도 죽이고, 중국보다 앞에 있거나 실력이 앞서는 선수를 다 죽이고 있어요. 조금만 부딪힘이 있어도 한국과 헝가리 선수를 쳐내죠. 그래야 중국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충격의 무게감을 놓고 보면 저와 오노 사례지만, 범위로 보면 이번이 더 지저분한 것 같아요.”

악연을 딛고 나중에 화해한 김동성과 안톤 오노. [중앙포토]

악연을 딛고 나중에 화해한 김동성과 안톤 오노. [중앙포토]

지금도 오노가 밉나.

“2002년에는 꼴도 보기 싫었죠. 저도 사람인지라 (금메달을) 뺏어간 선수니까. 근데 12년이 지나 소치올림픽에서 해설위원으로 만났어요. 소치에 ‘스타벅스’가 없는데 오노가 미국 방송국 쪽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버스까지 타고 미디어 센터에 있는 제게 가져다줬어요. 당시 너랑 그럴 이유가 있겠냐며 잘 풀었죠. 돌이켜보면 실격은 그 친구가 준 게 아니라 심판이 준거잖아요. 선수와 코치는 열심히 싸운 것 뿐이죠. 제가 만약 금메달을 땄다면 그냥 금메달리스트로 기억됐겠지만, 오노 때문에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잖아요. 근데 20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이 편파 판정이 나오네요.”

당시 충격이 컸나.

“저 그 때 라커룸에서 기절했었어요. 울다가 정신 잃어서 눈을 떴는데 의무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어요. 그 정도로 충격이 컸죠. 이후 500m에 출전했는데 준결승에서 떨어졌어요.”

2002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골을 넣은 안정환이 이천수 등과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2002 솔트레이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의 금메달을 빼앗아간 미국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빗댄 골 세리머니다. [중앙포토]

2002년 월드컵 미국전에서 골을 넣은 안정환이 이천수 등과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2002 솔트레이트 겨울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김동성의 금메달을 빼앗아간 미국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빗댄 골 세리머니다. [중앙포토]

황대헌 선수도 힘들겠다.

“정말 힘들 거에요. 멘털을 잡기도, 컨디션을 유지하기도 힘들거에요. 혼자서는 한계가 있으니 코치진과 스태프, 주변에서 빨리 털어버릴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미국은 오노 시절부터 마인트 컨트롤 시스템이 있었어요. 사실 우리가 혼성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승승장구하며 갔을 수도 있어요. 이탈리아 폰타나처럼. 첫 메달을 따면 200% 힘을 쏟을 수 있거든요. 근데 지금 같이 벽에 막혀있으면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게 돼요.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이 자신감이 없듯이.”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분노의 질주’인가.

“1500m는 13바퀴 반 장거리고, 6~7명 정도 함께 타기도 하죠. 예전에 한국 선수들은 두 바퀴 때 치고 나갔어요. 편파 판정을 딛고 당당하게 들어오기 위해서는 최대한 앞에서 움직여 이끌어 나가는 경기를 해야 해요. 물론 앞에 서는 게 힘들긴 해요. 또 내 ‘앞에 혹은 뒤에’ 중국 선수를 두면 안돼요. 라이벌 선수를 앞뒤로 세우지 않는 것도 작전이에요. 2002년 올림픽 때 제가 8바퀴 때 앞으로 나갔어요. 일 번으로 나갔을 때는 오노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맨 뒤쯤, 오노 뒤쪽에 있었어요. 결국 상대적으로 못하는 선수를 끌고 가야 해요. 분노의 질주요? 예전에는 두 바퀴를 따라 잡기도 했지만, 지금은 외국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비슷비슷해서 어려워요.”

중국 기술 코치 안현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사람이 추구하는 게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돈을 추구하죠. 제가 운동하던 90년대는 국가를 위해 뛰었고 국가대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죠. 요즘에는 세대가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환호하던 김동성이 전광판에 실격패를 알리는 내용이 뜨자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며 환호하던 김동성이 전광판에 실격패를 알리는 내용이 뜨자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요즘 근황은.

“다시 해설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력해서 코치가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저도 움츠리고 있는 것보다 얼음판에서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노력할게요.”

일각에서는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얘기까지 나온다.

“끝까지 마무리해야 해요. 보이콧 한다고 해서 좋아할 사람이 누구일까요. (중국이) ‘그래? 니들 생각 없어? 그럼 우린 더 좋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대한민국이 제일 잘 타고 강한 종목이 1500m에요. 중국보다 체력이 나아요. 1500m에서 확실히 도장을 찍어준다면, 흐름이 한번에 바뀔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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