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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IRBM 유예’까지 약속 했는데…파기 아니란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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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정은

김정은

김정은(사진)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모라토리엄’(유예)을 약속한 도발에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외에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시험발사도 포함돼 있는데도 정부는 지난달 30일 북한의 IRBM 발사를 모라토리엄 ‘파기’가 아닌 ‘파기 근처’로 규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4월 20일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됐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밝혔다.

4년 후인 지난달 19일 김 위원장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은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밝힌 대로라면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은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도 포함하는 것이고, 공언한 대로 이를 재가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일 성명에서 “이는 2018년 북한이 선언한 모라토리엄을 깬 것”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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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김 위원장이 중거리탄도미사일에 대해서도 모라토리엄 의사를 밝힌 건 당시가 처음이 아니었다. 2018년 3월 대북 특사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 위원장은)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 일각에서도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모라토리엄 파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일부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발사 당일 직접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며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라면 모라토리엄 선언을 파기하는 근처까지 다가간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문 대통령 발언의 배경엔 정부가 2018년 4월 김 위원장의 육성 약속보다 회의 결과물로 채택된 결정서 상의 표현을 더 주목했다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결정서에는 “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중거리 미사일은 빠졌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발언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모라토리엄을 파기했다고 보는 논리도 있을 수 있지만, 정부는 결정서 명시 사항을 기준으로 모라토리엄을 이해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을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뒤쪽에 그어주는 것처럼 인식될 소지가 다분하다. 또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김 위원장의 발언보다 결정서를 우선시하는 듯한 정부 기준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 발언-노동당 강령-각 기관의 결정 순으로 권위를 지니는데 정부의 판단 기준은 이와 다르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북한에서는 수령의 발언과 발표상 표현에 불일치가 있더라도 문제가 없지만, 이를 해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우리 정부는 다르다”며 “특히 안보 관련 사안인 만큼 북한의 진의를 명확히 파악해야 했는데 미흡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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