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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축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중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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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중국은 스포츠 강국이고 각 종목에 걸쳐 세계 챔피언도 많다. 지난 4일 개막한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도 주최국의 이점을 안고 적지 않은 금메달을 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 남자국가대표팀은 축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다. 지난 1일 베트남에 3대1로 패하며 카타르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이 날아갔다. 특히 이번 패배는 ‘역사적’이란 수식어가 등장할 정도로 중국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겼다. 그럴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미딩 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 베트남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 중국이 3대1로 패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이 좌절됐다. [AFP=연합뉴스]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미딩 경기장에서 열린 중국과 베트남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 중국이 3대1로 패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이 좌절됐다. [AFP=연합뉴스]

첫 번째는 무엇보다 베트남전 패배로 20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꿈이 확실하게 깨진 점이다. 베트남과 맞붙기 전 중국의 전적은 1승 2무 4패로, 조2위에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딸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7전 전패로 최약체인 베트남을 꺾을 경우 잘하면 조3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는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한데 경기 시작 7분 만에 베트남에 잇따라 두 골을 먹는 등 대패하며 카타르에서 중국팀을 볼 일은 완전히 없어졌다.
두 번째는 패한 시점이 좋지 않았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 당일 날 온 가족이 모여 TV를 보며 응원을 하는 가운데 석패도 아니고 무참하게 패했다. 중국 언론은 중국남자축구대표팀이 춘절 세배인 ‘바이녠(拜年)’ 대신 ‘바이녠(敗年)’을 선사했다고 비통해했다. 또 대표팀이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처럼 늠름하기(虎虎生威)는커녕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騎虎難下)이었다고 질타했다. 오죽하면 화를 참지 못하고 TV를 때려 부순 중국 팬들이 나왔나.

중국의 한 남성이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이 베트남에 3대1로 패하자 격분해 보던 텔레비전을 부수고 있다. [중국 웨이보 캡처]

중국의 한 남성이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이 베트남에 3대1로 패하자 격분해 보던 텔레비전을 부수고 있다. [중국 웨이보 캡처]

세 번째는 중국이 이제까지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팀에 패했다는 사실이다. 베트남과는 1956년 첫 평가전을 가진 이래 중국이 진 적이 없다. 한데 이번에 66년 만에 패했다. ‘역사적 패배’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 중국에선 현재 전 국가대표 판즈이(范志毅)의 불길한 예언이 돌고 있다. 판은 2013년 중국이 태국에 5대1로 참패한 뒤 “다음엔 베트남에 질 것이고 그다음엔미얀마에도 져 더는 질 곳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의 부진과 관련해선 많은 이유가 거론된다. 리샤오핑(李霄鵬) 감독은 “작전이 잘못됐다”고 했지만, 중국 인터넷 공간에선 “축구는 아무래도 중국 남자와는 맞지 않는 모양” “누구도 중국 남자축구를 구제할 수 없다” 등 별별 이야기가 다 돈다. 그러나 비교적 많은 이의 공감을 사는 건 중국의 스포츠 발전 전략인 거국체제(擧國體制)가 남자축구의 경우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지난 1월 27일에도 일본에 2대0으로 패했다. 중국 축구팬들은 질 줄 알았지만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지난 1월 27일에도 일본에 2대0으로 패했다. 중국 축구팬들은 질 줄 알았지만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중국 바이두 캡처]

거국체제는 잠재력 있는 선수를 조기에 성(省)이나 시(市)에서 발굴해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시킨 뒤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선수를 국가대표로 선발해 훈련과 생활 등 모든 걸 국가가 보장해주는 시스템이다. 중국은 이 거국체제를 이용해 다이빙이나 체조, 수영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선수 육성을 시장에 맡기는 대신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거국체제 신봉자라 할 수 있다.
축구광이기도 한 시진핑 주석은 일찍이 2016년 중국 축구발전 방안을 직접 지시한 바 있다. 중국의 축구관리시스템을 개혁하고, 세계의 축구발전규칙과 중국의 국정에 맞춰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조직관리시스템을 세우며, 청소년 축구의 대폭적인 발전, 축구장 건설 등 인프라 완비, 국제교류 강화 등을 강조했다. 이 같은 시 주석의 축구 강국몽(强國夢)이 제시되자 온 중국이 시 주석의 축구 야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섰다.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지난 1일 벌어진 베트남과의 경기에서 3대1로 지며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이 사라졌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지난 1일 벌어진 베트남과의 경기에서 3대1로 지며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의 꿈이 사라졌다. [중국 바이두 캡처]

큰돈을 들여 외국 선수를 데려오는 건 물론 유럽의 명문 구단을 사들이는 등 막대한 금액을 축구에 쏟아부었다. 2016년 당시 중국 정부의 계획 중엔 향후 10년 내 중국 축구인구를 한국 인구에 맞먹는 5000만 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있었다. 또 중국 교육부는 지난해 중국 각지에 축구 특색의 유치원을 세워 매년 각 성마다 100~200명의 우수 선수를 추천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선 아예 우수 외국 선수를 귀화시켜 중국 국가대표로 선발하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3명, 영국에서 2명 등 모두 5명의 귀화 선수가 중국 대표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5월엔 ‘비장의 무기’도 투여했다.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남자축구대표팀 안에 중국 공산당 임시 지부를 설립한 것이다. 20명의 당원이 특별히 모범적인 역할을 하도록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5월엔 상하이(上海)에 있는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개최 장소를 참관하며 애국주의 사상 교육도 했다. 사명감과 책임감, 명예심을고취시키기 위한 차원이었다.

중국은 지난해 9월부터 벌어지고 있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경기에서 지난해 10월 7일 베트남을 홈으로 불러들여 3대2로 이긴 게 이제까지의 유일한 승리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은 지난해 9월부터 벌어지고 있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경기에서 지난해 10월 7일 베트남을 홈으로 불러들여 3대2로 이긴 게 이제까지의 유일한 승리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한데 결과는 백약이 무효로 드러났다. 중국 당국의 처벌이 두려워 익명을 요구하는 중국 축구 관계자는 “중국 축구 관리가 아직도 계획경제체제에 머무르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축구협회는 ‘정치 기구’라고 설명한다. 축구를 모르는 인사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당성(黨性)을 강조하며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니 중국 축구가 제대로 갈 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과거 중국 프로축구리그에서 광저우 헝다(恒大)팀이 여러 차례 우승했다. 투자도 많았지만 이면엔 국가대표가 될 선수를 중국축구협회가 강제로 헝다팀으로 이적을 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헝다팀을준(準)국가대표팀으로 만들어 훈련시키려 한 까닭이다.
그래서 중국 축구를 발전시키려면 당국이 개입하지 말고 프로팀을 그냥 시장의 규칙에 따라 생존하게 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야 현대 축구 발전에 필요한 선수들의 상상력과 창의력, 자유의 정신이 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는 한 1억 명 중 한 명씩의 선수만 뽑아도 어마어마한 드림팀을 구성할 수 있는 중국남자축구가 더는 ‘불가사의’한 패배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데 모든 걸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현재의 중국 분위기 속에서 과연 이런 해법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한 번도 진 적 없던 베트남에 66년 만의 첫 패배 #국가가 모든 걸 해결하는 거국체제 방식 문제 #축구 관리가 아직도 계획경제체제 머무른다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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