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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중국의 가장 고단한 삶 중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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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코로나 19는 요술 거울(妖鏡)에 비유되기도 한다. 인간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국 베이징시가 밝힌 두 명의 코로나 감염자 동선이 빈(貧)과 부(富)로 강렬하게 대비되며 중국 사회에 많은 상념을 안기고 있다. 특히 도시의 화려한 외관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던 노동자의 고달픈 삶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며 많은 중국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베이징시는 지난달 19일 코로나 확진자 두 명의 동선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여느 때처럼 동선과 관련이 있는 곳에 대한 방역을 철저하게 하기 위함이다.

중국은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샤오캉 사회를 이미 달성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많은 노동자의 삶은 다리 밑에서 자고 쓰레기장에서 먹을 것을 찾는 등 여전히 매우 고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은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샤오캉 사회를 이미 달성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많은 노동자의 삶은 다리 밑에서 자고 쓰레기장에서 먹을 것을 찾는 등 여전히 매우 고단한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한 명은 26세 여성 은행원, 또 다른 한 명은 44세의 남성 노동자였다. 한데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두 사람의 삶의 질은 너무 차이가 났다. 주말이던 지난달 8일의 경우 은행원은 스키 타고 고급 상점에서 쇼핑한 뒤 미용실을 들렀다. 은행원은 특히 귀금속 전문점 저우다푸(周大福)를 즐겨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노동자는 8일 하루에만 공사판 세 군데를 돌며 품을 파느라 정신이 없었다. 산둥(山東)성에서 올라온 노동자 웨(岳)모씨의하루 생활을 본 중국인은 경악했다.
지난달 1일부터 춘절(春節, 설)을 쇠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전인 17일까지 그는 공사판 28군데를 전전했다. 그의 일과는 하루 단위로 끊기가 어렵다. 밤을 새워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을 전후로 살펴보자. 12일 밤 11시 18분부터 일하기 시작해 13일 새벽 3시 43분에 1차 작업을 마쳤다. 2차로 13일 19시부터 20시까지 다른 곳에서 2차로 일한 뒤, 13일 23시 58분부터 14일 새벽 5시 5분까지 또 다른 곳에서 3차 작업을 했다. 거의 매일 일정이 이런 식이다.

중국에서 가장 고단한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진 웨모씨가 지난달 1일부터 17일간 베이징에서 전전한 공사장은 무려 28군데에 이른다. [중국 텅쉰망 캡처]

중국에서 가장 고단한 삶을 사는 것으로 알려진 웨모씨가 지난달 1일부터 17일간 베이징에서 전전한 공사장은 무려 28군데에 이른다. [중국 텅쉰망 캡처]

공사판을 드나드는 화물 차량이 밤에만 베이징 시내에 진입할 수 있어 야간작업이 많다. 웨모씨는 주로 30~50kg의 모래와 시멘트 포대를 나르거나 쓰레기를 처리했다. 아침에 고용주가 주는 10위안(약 1900원)으로 멀건 죽과 만두 세 개를 사 먹으며 버틴다. 지난달 1일부터 17일까지 그가 자신의 돈으로 밥을 사 먹은 기록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대략 100위안에서 200위안 사이의 일당을 받는다.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와 아내, 아들 둘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다.
웨모씨와 같은 베이징의 막노동꾼은 비싼 임대료를 낼 형편이 안 돼 잠은 대충 다리 밑 등에서 해결하고 정 먹을 게 없을 땐 쓰레기장도 뒤진다고 한다. 이들 사정에 밝은 베이징의 황(黃)모씨는 자신이 만난 외지에서 올라온 한 임시직 여공의 경우 2위안을 주고 만두를 사 먹은 게 그 해 유일한 소비였다고 한다. 웨모씨의 초인적인 일정이 알려지며 그에겐 “중국에서 가장 고생하는 중국인”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는 고달픈 삶을 사는 중국의 전형적인 아버지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베이징에서 막노동을 하는 웨모씨가 2020년 8월 실종된 큰아들을 찾는 전단.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베이징에서 막노동을 하는 웨모씨가 2020년 8월 실종된 큰아들을 찾는 전단. [중국 바이두 캡처]

한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신문주간(中國新聞周刊)이 그를 인터뷰하며 더 기구한 사연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는 왜 베이징에 왔을까. 그의 집은 산둥성 웨이하이(威海) 룽청(榮成)시청산(成山)진에 있으며 원래 배를 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2020년 8월 12일 당시 19세로 집에서 약 50km 떨어진 곳에 있는 식품공장에서 일하던큰아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는 공장주임이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줬다고 하는데 이후 아들의 행적이 묘연해진 것이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그는 파출소를 찾아 아들 휴대폰을 통한 위치 추적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아들이 성인이라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 거리의 감시 카메라 등을 살펴봐달라고 부탁했지만, 카메라는 차량만 체크하지 사람은 챙기지 않는다는 역시 묘한 답을 들었다. 3일 후엔 아들의 휴대폰이 완전히 꺼져 더는 위치 추적을 할 수 없게 됐다. 그의 아내는 파출소 앞에서 이틀을 울며 하소연했지만,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공안국은 지난달 21일 웨모씨의 실종 아들 사건과 관련해 이미 사체를 찾았지만 웨모씨 부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사체를 화장하지 않고 보관하면서 웨모씨 부부에 대한 설득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공안국은 지난달 21일 웨모씨의 실종 아들 사건과 관련해 이미 사체를 찾았지만 웨모씨 부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사체를 화장하지 않고 보관하면서 웨모씨 부부에 대한 설득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는 파출소에서 룽청시 공안국으로, 다시 그보다 상급 단위인 웨이하이시 공안국, 또다시산둥성 공안국을 찾아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룽청시 공안국은 2020년 8월 26일 한 저수지에서 한 사체를 찾았는데 DNA 검사 결과 실종된 웨모씨의 아들로 밝혀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웨모씨 부부는 믿지 않는다. 신체 특징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웨모씨는 아들을 찾아 산둥성은 물론 허난(河南)성과 톈진(天津)을 거쳐 베이징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 중국 네티즌이 들끓기 시작했다.
“빅데이터가 고생하는 아버지 일정을 다 밝히고 있는데 어째 실종 아들의 행방은 제대로 밝히지 못하나”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했다면서 인민의 삶은 어떻게 이리도 고단한가” “웨모씨 사연을 중국 당국이 웨이보에서 차단하는 건 무슨 이유인가, 공안기관의 직무 소홀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인가” 등 웨모씨를 동정하고 공안의 방만한 업무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밖에 나가 놀 때 조심하라. 코로나 양성 판정 나오면 당신이 어디서 무얼 했는지 다 공표된다”는 글 또한 올라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중국의 참모습, 국가의 비애”라고 쓴 한 중국 네티즌의 글이 연초 중국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했다는데 #잠은 다리 밑에서 자고 먹을 것 찾아 쓰레기장 뒤지기도 #실종된 아들 찾으려 휴대폰 위치 추적 부탁했다 거절당하고 #감시 카메라 체크 요청엔 카메라는 차량만 본다 답변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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