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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홍콩 언론 이어 홍콩 외신도 타깃 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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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 언론이 홍콩에 상주 특파원을 여럿 두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말부터다. 78년 초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홍콩에서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해서다. 그해 여름엔 최씨를 찾아 홍콩에 간 최씨의 전 남편이자 영화감독 신상옥씨 또한 북한으로 납치됐다. 이후 중앙일보 등 한국의 여러 언론사가 홍콩에 기자를 파견해 관련 뉴스를 다루며 자연스럽게 상주 특파원 체제가 굳어졌다. 92년엔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며 일부 홍콩 특파원이 베이징으로 임지를 옮겼지만, 97년 홍콩의 역사적인 중국 반환이 예정돼 있어 홍콩에 대한 우리 언론의 관심은 지대했다.

지난 2021년 6월 24일 마지막으로 발행된 홍콩 빈과일보. 25년 역사에 1000여 직원의 비교적 큰 홍콩 매체였으나 중국 비판에 앞장서다 폐간의 운명을 맞았다. [연합뉴스]

지난 2021년 6월 24일 마지막으로 발행된 홍콩 빈과일보. 25년 역사에 1000여 직원의 비교적 큰 홍콩 매체였으나 중국 비판에 앞장서다 폐간의 운명을 맞았다. [연합뉴스]

94년 봄 홍콩 특파원이 된 필자는 동남아에서 사건이 터지면 재빨리 현지로 달려가야 했지만, 보통 때는 중국 관찰을 많이 했다. 죽의 장막 중국의 속을 들여다보는 데 홍콩만한 곳이 없어 세계 각국의 언론인은 물론 학자와 정보 취급자 모두 홍콩으로 몰렸다. 홍콩 언론엔 언제나 중국 뉴스가 가득했다. 한데 혼란스러웠다. 같은 사안에 대해 매체마다 주장이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매체마다 각기 다른 배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홍콩을 통치하던 영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대만 입장을 전하는 매체, 또 중국과 가까운 언론 등 모두 각각이었다.
특히 홍콩 시사지는 중국 정부의 일을 마치 현장에서 지켜본 것처럼 생생하게 보도해 그 진위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하루는 홍콩의 유명 시사지 사무실을 찾았는데 방 한 칸이 전부인 걸 보고 놀랐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그 많은 중국 뉴스를 쏟아낼 수 있나. 해답은 간단했다. 중국 대륙 곳곳에 포진한 필자와 점 조직처럼 일대일 계약을 맺고 기사를 공급받고 있다고 했다. 필자 중엔 중국의 부(副)성장급 인사도 있다며 어깨를 으쓱하던 편집장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중국 당국도 해외 반응을 떠보기 위해 홍콩 언론에 가명으로 글을 싣고 있기도 했다. 홍콩 언론은 그야말로 중국 뉴스에 관한 한 자유를 만끽했다.

지오다노 창업주 지미 라이는 빈과일보를 창간해 홍콩 민주화 운동의 커다란 축으로 역할을 해 왔으나 그 자신이 체포되고 신문은 폐간되는 운명을 맞았다. 사진은 과거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의 미래를 걱정하며 눈물을 보인 지미 라이. [로이터=연합뉴스]

지오다노 창업주 지미 라이는 빈과일보를 창간해 홍콩 민주화 운동의 커다란 축으로 역할을 해 왔으나 그 자신이 체포되고 신문은 폐간되는 운명을 맞았다. 사진은 과거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의 미래를 걱정하며 눈물을 보인 지미 라이. [로이터=연합뉴스]

그런 홍콩의 언론자유에 1차 충격이 가해진 건 97년 홍콩 반환 때다. 많은 시사지가 문을 닫았다. 매체 특성상 중국의 치부를 들추는 게 많았는데 홍콩을 접수한 중국의 압력으로 광고주가 등을 돌리면서 폐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간 ‘구십년대(九十年代)’ 등이 그런 경우다. 최근 홍콩 언론에 2차 충격이 닥쳤다. 2020년 여름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통과되면서 시작된 변화다. 먼저 중국 비판에 앞장서던 빈과일보(蘋果日報)가 지난해 6월 폐간됐다. 25년 역사에 1000여 직원 등 비교적 큰 매체였지만 사주 지미라이(黎智英)가 붙들리는 등 중국 당국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지난 연말부터는 인터넷 매체 폐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9일엔 홍콩 경찰이 들이닥쳐 임원 여럿을 체포하자 입장신문(立場新聞)이 백기를 들었다. 홍콩의 존 리 정무부총리는 “국가안보를 해치는 저널리즘엔 무관용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새해 들어서인 지난 2일엔 시티즌뉴스(衆新聞)가, 그리고 4일엔 매드독데일리(癲狗日報)가 각각 폐간을 발표했다. “바람은 거세고 풍랑은 높은데 배에 탄 이의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는 걸 이유로 들었다. 중국 당국엔 눈엣가시와도 같던 매체 네 곳이 반년 사이 문을 닫은 것이다.

중국에선 지미 라이(黎智英)를 ‘민족의 변절자(民族敗類)’라고 비난한다. 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히며 반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에선 지미 라이(黎智英)를 ‘민족의 변절자(民族敗類)’라고 비난한다. 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히며 반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바이두 캡처]

현재 홍콩 정부의 언론 단속은 두 단계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는 통제하기 힘든 언론사에 ‘선동죄’를 씌우는 것이다. 선동죄에 처음 걸리면 징역 2년, 두 번째 걸리면 징역 3년에 처한다. 선동죄 이후 단계는 입법을 통한 ‘가짜 뉴스’ 때리기라고 한다. 크리스 탕(鄧炳强) 홍콩 보안국장은 “국가안보를 해치는 외부세력이 가짜 뉴스를 이용해 정부를 공격한다”고 말한다. 한데 이는 홍콩 정부가 앞으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진리부(眞理部)’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언론을 담당하는 진리부는 어떤 뉴스가 참이고 또 어떤 뉴스가 가짜인지를 판단한다. 앞으로 홍콩 언론의 보도에서 뭐가 참이고 뭐가 가짜인지를 홍콩 당국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아직까지 정론지로서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명보(明報)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또한 흔들릴 조짐을 보인다. 명보는 지난 6일 오피니언 등 몇 개 지면에 게재된 칼럼이 어떤 선동도 할 의도가 없다는 걸 밝힌다는 안내의 글을 실었다. 꼬투리가 잡힐까 두려운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홍콩 최고 권위의 영자지 SCMP를 중국 국영기업이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1903년 창간된 SCMP는 86년 미디어 재벌 루퍼트머독을 거쳐 93년 말레이시아 화인(華人)에게 넘어갔다가 2015년부터는 마윈(馬云)의 알리바바가 소유 중이다.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의 광범위한 언론계 장악을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기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말처럼 SCMP의 운명 또한 관심사다.

지난달 30일 대만 타이베이의 중국은행 지점 부근에서 대만에 거주하는 홍콩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대만인들이 홍콩의 언론자유 보장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 경찰은 전날 홍콩의 입장신문에 진입해 간부 여러 명을 체포했고 입장신문은 바로 폐간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대만 타이베이의 중국은행 지점 부근에서 대만에 거주하는 홍콩인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대만인들이 홍콩의 언론자유 보장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 경찰은 전날 홍콩의 입장신문에 진입해 간부 여러 명을 체포했고 입장신문은 바로 폐간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한데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건 이번 홍콩 언론의 잇따른 폐간 사태가 단순하게 홍콩 언론 손보기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다. 다음엔 홍콩에 있는 외신기자와 외신기구가 타깃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이후 이제까지 홍콩 정부가 외국 언론사에 발송한 항의 서한이 무려 13통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홍콩 입법회 선거를 보도하며 “선거 보이콧이나 백지투표는 홍콩인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할 마지막 수단 중 하나”라고 했는데 이에 홍콩 정부가 발끈해 “WSJ이 홍콩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외국 언론에도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홍콩은 국제금융센터로 유명하다. 이를 가능케 하는 중요 요소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인데 앞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제금융센터로서의 홍콩의 우세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뉴욕타임스(NYT)가 홍콩 사무소 일부를 서울로 이전했는데 여타 주요 외국 언론사가 NYT를 따라 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떠나려는 건 비단 홍콩 내 외국인만은 아니다. 지난 4일 홍콩민의(民意)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현재 홍콩인의 심리는 간단하게 “돈 벌어 이민 가자”로 정리된다고 한다. 홍콩의 언론자유가 종언을 고하면서 홍콩 특유의 매력이 상실되고 있는 것이다.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선동죄’와 ‘가짜 뉴스’ 때리기로 #지난 반년 동안 빈과일보 등 홍콩 4개 언론사 문 닫아 #다음 타깃은 홍콩 내 외신기자와 외신기구란 전망 나와 #언론자유 상실되며 홍콩인 심리는 “돈 벌어 이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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