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국읽기

시진핑, 마오쩌둥 만년 접어들었나

중앙일보

입력 2022.01.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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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문화대혁명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화인(華人) 학자 쑹융이(宋永毅)는 1949년 12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두 달여 만에 출생한 그의 신상엔 홍색(紅色) 기상이 넘쳤다. 그의 아버지는 개국공신으로 상하이 초대 시장을 맡았던 천이(陳毅) 장군을 흠모해 그에게 ‘영원한 이(毅)’라는 뜻의 이름 ‘융이(永毅)’를 안겼다. 그의 마음 또한 붉게 물들어 마오쩌둥(毛澤東)과 공산당을 열과 성을 다해 호위하고 장차 미사일 설계사가 돼 조국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문혁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화인 학자 쓩융이는 정치심리학적으로 볼 때 지금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미 마오쩌둥의 만년 시기에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유튜브 캡처]

문혁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화인 학자 쓩융이는 정치심리학적으로 볼 때 지금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미 마오쩌둥의 만년 시기에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유튜브 캡처]

그러나 그가 17세 되던 해 발생한 문화대혁명은 그의 생각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홍위병(紅衛兵) 싸움에 말려들어 20대 초반 5년 반의 세월을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실 감옥에서 보냈다. 한때 자살도 생각했다. 결국 독서에 몰두하며 인생의 가장 암울한 시기를 넘겼다. 마오쩌둥 선집과 마르크스-엥겔스 저작 등 각종 서적을 보고 또 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세 가지를 깨닫게 됐다고 한다. 항일전쟁 시기 마오쩌둥은 항일은 하지 않고 공산당 힘만 키웠다는 점, 마오는 건설은 모르고 파괴만 안다는 점, 마오는 서방이나 과학은 모르고 오로지 권술(權術) 운용만 알았다는 점이다.
89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이후 문혁 관련 사료를 모으는 일에 전념해 『중국문화대혁명데이터베이스(1966~1976)』 등 문혁 연구에 필수적인 다섯 권의 데이터베이스 자료집을 냈다. 1차 자료만 4만 여건 1억 2000만 자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의 문혁 전문가 로드릭맥파커 하버드대 교수는 “이들 데이터베이스가 당대 중국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문혁 당시 광시(廣西)지구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풍조까지 파헤친 자료 수집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가을 개최되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때 세 번째로 총서기에 취임하며 장기 집권을 이어갈 전망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오는 가을 개최되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때 세 번째로 총서기에 취임하며 장기 집권을 이어갈 전망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그는 1999년 여름 자료 수집차 중국에 들어갔다가 간첩죄로 체포된다. 그러자 100여 명의 미국과 유럽의 학자가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부주석에게 편지를 보내 그의 석방을 탄원한다. 중국에 붙들린 지 반년만인 2000년 초 미국으로 돌아오며 그의 국적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뀐다. 이처럼 한평생 문혁과 마오쩌둥 연구에 몰두해온 그가 최근 영국 BBC 중문판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마오의 만년 시기에 접어든 것으로 진단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시 주석은 2012년 가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오르며 14억 중국의 1인자가 됐을 때 많은 기대를 모았던 게 사실이다. 우선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당내 개명파(開明派)여서 시진핑 역시 부전자전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한층 심화시킬 것으로 여겨졌다. 또 아버지가 마오에 의해 숙청됐고 시진핑 또한 이에 연루돼 산간벽지로 추방당한 경험이 있어 마오에 비판적인 태도로 중국을 보다 민주화된 길로 이끌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집권 10년이 보여준 시 주석의 치세에선 마오의 그림자가 짙게 보인다는 평가다.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해인 1966년 여름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강에서 수영을 즐겼다는 소식을 전한 중국 해방군보의 1면 모습. [중국 해방군보 캡처]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해인 1966년 여름 7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강에서 수영을 즐겼다는 소식을 전한 중국 해방군보의 1면 모습. [중국 해방군보 캡처]

쑹융이는 “내 판단으론 시진핑이 이미 ‘마오의 만년 시기’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정치심리적인 분석에 근거해서다. 문혁을 발동했을 때 마오의 나이가 73세였고, 지난해 11월 시진핑이 ‘3차 역사결의’를 추진할 때 나이가 68세였다. 시진핑이 다섯 살 어리긴 하지만 그의 육체적 건강이 마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시 마오는 여전히 장강(長江)에서 수영을 할 정도였지만 시진핑은 3년 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방문 시 넘어질 뻔한 일이 발생하는 등 신체적으로 마오보다 나은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마오의 만년 시기 정신 상태는 어땠는가? 펑전(彭眞)에서 양상쿤(楊尙昆)까지 모두를 의심하는 상황이었다고 쑹은 말한다. 당내 인사 중 정변을 생각하거나 마오쩌둥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심은 계속됐다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며 해외에 감히 나가지 못하고 비행기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쑹융이는 3차 역사결의가 나온 데 대해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두 가지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시진핑의 권력 공고화를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 군사정변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심복으로 한때 ‘시진핑의 칼’로도 불렸던 푸정화 전 사법부장이 지난해 10월 초 갑자기 낙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배경과 관련해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심복으로 한때 ‘시진핑의 칼’로도 불렸던 푸정화 전 사법부장이 지난해 10월 초 갑자기 낙마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배경과 관련해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때 시진핑의 심복으로 ‘시진핑의 칼’로 불리던 푸정화(傅政華) 전 사법부장과 쑨리쥔(孫力軍) 전 공안부 부부장 등이 지난해 낙마한 것도 칼을 든 이들이 반기를 들 것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외부에서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만, 시진핑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쑹융이는 독재자의 심리는 비슷한데 시진핑의 지금 정치적 심리상태가 마오의 만년과 유사해 두려움에 떨며 바깥출입도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독재자가 공통으로 갖는 의심과 공포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왜 주위 사람을 숙청하나. 하루에 한 명이라도 숙청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쑹융이는 시진핑을 나폴레옹 3세에 비유한다.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는 삼촌을 모방해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다시 황제에 올랐다가 폐위당한다. 1852년 마르크스는 헤겔을 평가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헤겔은 ‘위대한 세계의 모든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꼭 두 번씩 출현한다고 말했는데 헤겔이 까먹고 말하지 않은 게 있다. 그건 ‘하나가 정통 드라마라면 다른 하나는 황당 드라마’라는 것이다.” 쓩융이가 보기에 마오 시대가 정통이라면 마오를 롤 모델로 하는 시진핑 시대는 그저 황당할 뿐이라는 이야기다.

문혁 연구 전문 미국의 화인 학자 쑹융이
현재의 시진핑 정치심리를 분석할 때
문혁 발동한 마오쩌둥의 만년 시기 해당
의심과 공포에 떨며 주위 숙청에 열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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