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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말하지 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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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여성국 탐사팀 기자

골든글로브 수상 발표 전, 배우 오영수(78)의 연극 ‘라스트 세션’을 봤다. 죽음을 앞둔 무신론자(프로이트)와 젊은 유신론자(루이스)가 삶과 죽음, 고통의 의미와 신의 유무에 대해 논쟁하는 2인극이다. 프로이트가 된 오영수는 신을 만든 종교가 세상을 유치하게 만들고 있다고, 견디기 힘든 인간의 고통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게 어떻게 신의 선물이냐고 일갈한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프로이트의 대사였다. 루이스가 함께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친구의 어머니 무어 부인과 동거한다면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피하자 정신분석가 프로이트가 이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 장면이다.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배우 오영수가 연기한 프로이트는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배우 오영수가 연기한 프로이트는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합뉴스]

왜 무언가는 끝내 말하지 못하는 것이고, 왜 더 중요한 걸까. 타인을 의식해 감춘 욕망과 진실을 검열하는 자아도 중요한 ‘나’이기 때문일까. 연극은 끝났지만 물음은 계속됐다. 오래전 쓰지 못한 기사에 대해 말한 선배가 떠올랐다. 어떤 기자가, 언론사가 말하지(쓰지) 못한 것은 말한(쓴)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좌우 성향을 떠나 타사 동료들로부터 쓰지 못한 기사, 문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뉴스 시작 전 기사가 빠졌다는 말, 바뀐 문장 때문에 정부·수사기관·정치인 비판 기사에 힘이 빠졌다는 말을 듣는다. 일부는 쓰지 못한 이야기나 경험을 훗날 책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대사는 그런 면에서 저널리즘 격언 같다.

말하지 못한 것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다른 예도 있다. 지난해 11월 혼자 전봇대에 올라 고압 전류에 감전돼 숨진 하청노동자 김다운씨의 죽음은 언론이 즉시 말하지 못한 사실이다. 한 달여 뒤인 지난 3일, 뒤늦게 MBC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전력은 사고 66일 만에 사과했다. 국회 출입 선배는 소셜미디어에 기사를 공유하며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종일 입씨름만 쳐다봤나”고 적었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은 “빨갱이나 친일 같은 문제에 우리는 고래 심줄처럼 질기고 도돌이표처럼 따지는데 ‘일터의 죽음’에 대해서는 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치인·기업인의 SNS 한마디와 달리 왜 김씨의 죽음은 언론이 바로 말하지 못했나. 더 말하지 못한 삶과 죽음은 없나. 주변의 비슷한 배경을 가진 이들을 기준 삼아 안과 바깥의 삶을 구분하고 경중을 따지진 않나. 그래서 언론이 외면받는 건 아닐까. 또 권력이 숨긴 사실을 아직 찾지 못해 말하지 못하는 건 더 없을까. 배우 오영수는 한 인터뷰에서 “묵묵히 몫을 다해 온 사람들이 자기 삶에서 1등”이라 했다. 언론은 제 몫을 다하고 있나. 올해를 돌아볼 때, 나와 동료들이 언론을 향한 자조 대신 “몫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