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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데이터…누가 통제해야 할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0호 21면

테크놀로지의 정치

테크놀로지의 정치

테크놀로지의 정치
실라 재서노프 지음
김명진 옮김
창비

1951년 헨리에타 렉스라는 흑인 여성이 31세의 나이에 암으로 숨졌다. 그의 몸에서 나온 세포를 배양한 세포주는 ‘헬라 세포’라고 불리며 이후 60년 동안 숱한 실험에 사용됐다. 이를 통해 창출된 수익은 무려 수십억 달러, 과학 논문은 6만건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랙스나 유족은 이에 동의하기는커녕 이런 사실조차 몰랐다. 이 기구한 사연은 2010년 출간된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2013년에야 미국 국립보건원이 유족과 합의했다. 향후 연구는 유족의 심사를 받도록 했지만, 물질적 보상은 포함되지 않았다.

현대 기술의 발전과 활용은 종종 엄청난 수익을, 반대로 가끔 심각한 재난을 초래한다. 재난의 책임은 과연 누가 지고, 수익은 누가 누려야 할까. 쾌도난마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은 이 책에 실린 많은 사례에서 드러난다. 저자인 미국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의 과학기술학 교수 실라 재서노프는 변호사이기도 하다.

책에는 1984년 인도 보팔의 유니언카바이드 화학공장 가스 누출 참사, 미국에서 일찌감치 허용한 GMO 농작물이 유럽에서 직면한 반발,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실험용 동물 같은 생명체나 DNA와 관련된 특허 부여, 대리모가 출산한 아기에 대한 ‘부모’의 권리, 디지털 정보의 통제와 스노든의 폭로 등 이 방면에서 거론할 만한 중요한 사안이 대거 등장한다. 법정 공방과 최종 판결까지, 엇갈리는 주장이 충돌한 면면을 상세하게 조명하는 것도 강점이다. 때로는 소송 자체가 사건이다. 특히 생명체와 관련된 특허에 문제를 느낀 시민단체 변호사가 제기한 소송, 인간과 침팬지의 가상 잡종에 대한 제레미 리프킨의 특허 출원 시도는 비판을 넘어선 행동으로도 의미가 돋보인다.

저자의 시선은 결국 새로운 규범의 문제, 누가 규범을 만들고 강제하고 수정할 것이냐의 문제로 향한다. 여러 사례가 보여주듯 기술의 활용과 그 파장에는 사회적·윤리적·국제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다. 저자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조하며 기술결정론과 기술관료제, 그리고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표현에 담긴 생각도 거듭해서 비판한다. 책임 면제나 운명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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