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 내놓고 왕벨트로 꾸민 티 팍팍…흑역사 패션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06 05:00

하이틴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년)의 한 장면. [인스타그램 캡처]

하이틴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년)의 한 장면. [인스타그램 캡처]

호텔 상속녀 패리스 힐튼의 분홍색 운동복,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골반 청바지와 왕벨트,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학생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법칙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3040세대가 학창시절 ‘흑역사’로 추억하는 Y2K 패션이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에게 신선하고 멋진 스타일로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까지 무심한 듯 세련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스타일이 대세였다면, 올해부터는 꾸민 티가 팍팍 나는 화려한 패션 아이템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샤넬·미우미우, 골반 치마·배꼽티 선보여  

미우미우의 2022년 봄·여름 신상품.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짧은 상의에 골반까지 내려온 치마를 선보였다. [사진 미우미우]

미우미우의 2022년 봄·여름 신상품.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짧은 상의에 골반까지 내려온 치마를 선보였다. [사진 미우미우]

실제로 명품 브랜드의 2022년 봄·여름 신상품에는 Y2K 아이템이 대거 등장했다. 미우미우는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짧은 상의에 골반까지 내려온 치마를 선보였다. 바지 윗단은 한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아졌다.

샤넬은 가수 박지윤이 2000년 ‘성인식’ 무대에서 착용한 골반 치마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배꼽 주변에 두르는 벨리 체인(허리 장식용 금속 끈)과 같은 과감한 아이템도 등장했다.

샤넬의 2022년 봄·여름 신상품. 골반 치마와 허리 장식용 금속 끈이 등장했다. [사진 샤넬]

샤넬의 2022년 봄·여름 신상품. 골반 치마와 허리 장식용 금속 끈이 등장했다. [사진 샤넬]

이 밖에도 언뜻 과해 보이는 패션이 런웨이를 가득 채웠다. 베르사체는 화려한 스카프를 두건으로 활용했고, 돌체앤가바나는 밀리터리(군복) 패턴의 카고 바지(큰 주머니가 달린 바지)를 출시했다. 블루마린은 주먹만 한 나비 장식이 달린 벨트를, 발렌시아가·토즈·아크네스튜디오 등은 바이커(오토바이 운전자) 가죽 재킷을 선보였다.

올 겨울 떡볶이 코트·어그 부츠 인기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왼쪽)와 패리스 힐튼이 골반 청바지를 착용한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왼쪽)와 패리스 힐튼이 골반 청바지를 착용한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벌써 올겨울부터 Y2K 패션은 유통업계를 먹여 살리고 있다. 대표적인 아이템은 과거 중·고등학생들이 즐겨 입던 ‘떡볶이 코트’다. 정식 명칭은 더플코트로 소재는 다양해졌고, 기장이 엉덩이를 겨우 덮을 정도로 짤막한 디자인도 나왔다. 브랜드 이름인 ‘어그 부츠’로 불리는 양털 부츠도 인기다.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어그 부츠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1990년대 대표 패션 소재로 꼽히는 코듀로이 제품도 다양한 색상으로 돌아왔다. 최문열 신세계백화점 패션담당 상무는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고객을 중심으로 레트로(복고) 겨울 패션 아이템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인기였던 브랜드도 재출시됐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마리떼라는 이름으로 재출시되면서 지난해 10월 한남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데님 브랜드 리(LEE)는 재출시 직후부터 무신사 판매랭킹 10위권에 진입했다. 이밖에도 노티카, 보이 런던, 챔피언, 트루 릴리전 등 과거 브랜드가 최근 부활했다.

수억명 팔로워 지닌 인플루언서의 Y2K 패션 

(왼쪽부터) 가수 선미, 태연, 제니 등은 지난해 Y2K 패션을 선보였다. [인스타그램 캡처]

(왼쪽부터) 가수 선미, 태연, 제니 등은 지난해 Y2K 패션을 선보였다. [인스타그램 캡처]

사실 Y2K 패션이 트렌드로 급부상하며 세기말 감성에 불을 붙인 건 모델 벨라 하디드, 헤일리 비버, 가수 두아 리파 같은 세계적인 패셔니스타 덕분이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놓고 브리트니 스피어스 또는 패리스 힐튼을 연상케 하는 패션을 선보였다. 세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합치면 1억7000만명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제니, 선미, 태연 등 다수의 여자 아이돌 가수가 Y2K 패션을 활용했다. 위아래 색깔을 맞춘 벨벳 운동복, 밝은색의 선글라스, 분홍색 두건, 통굽 구두, 배꼽티 등을 착용한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무대와 뮤직비디오 등에 등장했다.

Y2K 시절 닮은 2022년…불안함과 기대감 공존  

Y2K 패션을 즐기는 20대 모델 벨라 하디드. [인스타그램 캡처]

Y2K 패션을 즐기는 20대 모델 벨라 하디드. [인스타그램 캡처]

유행이 돌고 도는 이유에 대해 패션 전문가들은 트렌드를 주도하는 힙스터(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의 ‘청개구리 심보’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다수가 착용하는 옷과 신발은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 예로, 배우 조니 뎁의 딸 릴리 로즈 뎁은 지난여름 에어팟 대신 유선 이어폰을 착용한 채 거리를 활보한 사진이 파파라치에 찍혀 화제가 됐다.

전문가는 2000년대 초반을 경험한 기성세대에게 Y2K 패션은 추억이나 향수일 수 있으나, Z세대에게는 새로운 패션으로 인식된다고 분석했다.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 소장은 “배꼽티와 윗단이 짧은 바지로 대변되는 Y2K 패션이 유행한 2000년대는 과감한 노출과 군복, 운동복 등 다양한 아이템이 뒤섞인 파격적인 시대였다”며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집에 머물며 패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심리가 폭발해 가장 개방적이었던 시대를 떠올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3년째 지속되는 올해가 Y2K 시절을 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 소장은 “1990년대 말, 밀레니엄 버그 등이 예고되며 새천년에 대한 불안함과 기대감이 공존했던 세기말의 심리가 코로나19로 불안한 동시에 종식의 희망을 꿈꾸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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