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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에 흔들리는 「조훈현 아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이창호4단이 10일 조훈현9단을 3대0으로 누르고 국수타이틀을 차지함으로써 이제 명실공히 우리바둑계에 조훈현-이창호 시대가 열렸음이 예고되었다. 내년쯤에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같은 사태가 목전에 다가오자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조-이 시대가 아닌 이창호시대의 도래를 단정하기도 한다.
프로기사 J씨는 『앞으로 조-이 타이틀대결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 조9단이 50%만 지켜내도 성공으로 본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60단대 중반 김인 현9단이 막강 조남철 국수를 무너뜨렸고 70년대 중반 조훈현 9단이 김인 아성을 무너뜨린 일과 같은 것이 곧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승부세계에서 강자는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린다는 철칙이 있다는 것이 그 같은 논리의 근거다.
한 전문기사는 『바둑세계의 왕자는 꼭 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왕자의 위엄 앞에 주눅이 들어 져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왕자가 된다』고 말하고 『한번 그 권위가 무너지면 쉽게 도전 받는다』고 풀이했다. 범이 늙으면 여우·늑대도 대든다는 속담과 비슷한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조훈현 9단이 과연 그 같은 수순을 밟을지는 확실치 않다. 프로기사 K씨는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한차례실수를 거울삼아 더 정진하여 강해질 수도 있다는 예측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고 말했다. 조9단은 국내 기전 대부분의 타이틀을 지켜내느라 피곤이 중첩되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분석이다. 그가 몇몇의 중요기전에만 심혈을 기울인다면 그의 아성은 아직도 견고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이4단의 오름세에 내림세로 답해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이 4단의 욱일승천하는 기세에 밀려 초조하게 대응하다 자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사들은 이번 국수전에서 조9단이 좋은 바둑을 서두르다 실수해 놓친 것을 주목하고 있다.
조-이의 대결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이 4단의 자태는 육중하다.
김수영6단은 이 4단에 대해 천재성·정신력·체력의 삼박자를 갖춘 위에 침착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어쨌든 이 4단은 국수·최고위 등 두개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앞으로 왕위전(중앙일보사주최)등 많은 기전에서 조9단과 다투게 되었다. 세계 최연소바둑타이틀 소유자가 되었고 앞으로의 진행결과에 따라 최연소·최강자가 될지도 모른다.
올 가을 바둑판 위에 일어날 풍운이 거셀 것 같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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