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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게 나간 日엔 대응 자제 中…“韓, 올림픽 적극지지” 쐐기 박기

중앙일보

입력

지난 24일 베이징 겨울 올림픽 선수촌에 물품을 나르고 있는 관계자들. AP=연합뉴스

지난 24일 베이징 겨울 올림픽 선수촌에 물품을 나르고 있는 관계자들. AP=연합뉴스

중국이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선수단만 참가하고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과 관련해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결이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에 동참하는 일본에는 반응을 자제한 반면 결정을 미루는 한국에는 보이콧 불참을 기정사실화하려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지난 24일 오전 “베이징 올림픽·패럴림픽에 일본 정부 대표단 파견은 예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기본적 인권의 존중이 중국에서도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 인권 상황을 이유로 들었다.

‘신의’ 운운하더니…中 “日 선수 환영”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중국은 일본올림픽위원회 관련 인사와 일본 선수들이 중국에 와서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답했다. 추가 질문에도 “상대방이 개최하는 올림픽과 스포츠의 비정치화를 지지하기로 한 약속을 일본 측이 제대로 이행하기를 희망하고 촉구한다”고만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 7월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도 중국이 도쿄 여름 올림픽 개막식에 정부 인사를 보낸 사실을 부각하며 “신의를 지키라”고 강조했던 것과는 온도 차가 큰 반응이었다.

지난 24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마쓰노 히로카츠 일본 관방장관. AP=연합뉴스

지난 24일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마쓰노 히로카츠 일본 관방장관. AP=연합뉴스

반면 중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아예 쐐기를 박으려는 듯 하고 있다. 지난 23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러위청(樂玉成) 중국 외교부 부부장 간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 뒤 중국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한국은 중국의 베이징 겨울 올림픽 거행을 적극 지지한다고 거듭 밝히고, 원만한 성공을 축원했다”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 자료에는 “최 차관은 베이징 겨울 올림픽이 방역ㆍ안전ㆍ평화의 올림픽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되기를 기원했다”고만 돼 있다. 중국이 발표한 “적극 지지” 등의 표현은 없었다. 정부는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거리를 두는 동시에 “정부 대표단 파견에 대해서도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결정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여왔다.

韓 대만 장관 초청 취소도 ‘칭찬’

앞서 정부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행사에 탕펑(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정무위원(장관급)을 초청했다 행사 당일에 취소한 것도 중국은 높이 평가했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는 21일 “한국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고려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또 “중국과 미국 중 한 편을 들지 않는 이성적 태도가 (한국의)국가 상황에 맞다”는 전문가 평가까지 인용해 한국의 결정을 한껏 치켜세웠다.

한국은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됐다. 대만과 비공식적 실질 교류를 지속해서 증진해 나가겠다”며 중국과 대만 간 양안관계 맥락에서 결정했다는 입장인데, 글로벌 타임스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미국을 택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논조였다.

탕펑(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정무위원. 사진 코드게이트보안포럼

탕펑(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정무위원. 사진 코드게이트보안포럼

미국을 선택해버린 일본에는 조심스럽게 대하면서 선택을 유보 중인 한국에는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라고 사실상 압박하는 셈이다. 일본은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결정 직후 대만과 반도체 협력을 증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중국으로선 중‧일 관계 개선 추세를 보이던 일본이 미‧일 동맹을 선택한 가운데 일본이 대중 공세에 더 강하게 나서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과 일본은 지난 2014년에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극한 대립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깜짝 합의를 이뤄내 관계의 방향을 급전환한 적이 있다. 일본이 직전까지 미국과 밀착하며 중국에 공세적 입장을 취했던 게 협상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대중 저자세 외교라는 일각의 비판을 살 정도로 한‧중 관계 개선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이뤄진 한한령 등 중국 보복은 임기 말인 최근에 와서야 완화의 조짐이 다소 보일 뿐이고,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도 달라진 게 없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러위청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화상으로 한ㆍ중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러위청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화상으로 한ㆍ중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은 물론 일본의 결정이 불쾌하겠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대응해 충돌로 가거나 문제를 확대하지는 않겠다는 합리적 선택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며 “한국은 종전선언에 대한 중국의 지원이나 사드 갈등의 궁극적 종결 같은 목표에 대해 나름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韓, 미‧중과 6일 간격 협의 ‘균형’

실제 고위급 협의 일정만 보더라도 지난 17일 한‧미 차관이 서울에서 고위급 경제협의회(SED)를 연 직후인 23일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가 열렸다. 일정은 각기 조율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미국과 고위급 협의를 한 뒤 불과 엿새 뒤 꼭 같은 급에서 중국과 협의를 진행한 건 결과적으로 기계적 균형을 맞춘 것처럼 보이게 됐다.

또 대만 탕펑 디지털 정무위원 초청을 취소한 것도 지난 16일, 중국과의 차관 전략대화 불과 1주일 전이었다. 고위급 협의를 앞두고 중국을 의식한 조치로 인식될 여지가 컸다. 실제 한‧중 차관 대화에서는 대만 문제와 관련한 입장 교환이 이뤄졌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전했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과 기념촬영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이 지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서 호세 페르난데스 미국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과 기념촬영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미‧중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공급망 문제에서도 양쪽 모두와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미 고위급 차관 경제협의회 뒤 외교부는 언론설명서를 내고 “양국(한‧미)은 반도체 등 핵심 품목의 다양하고, 회복력 있는 안전한 공급망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 뒤에는 “양 측은 원자재 공급 등 분야에서 성과 지향적인 실질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중국은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의 가장 약한 고리를 한국으로 보고 공략을 계속하는 게 사실”이라며 “올림픽 보이콧이나 신기술 협력 등에 대해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외교적 목표에 맞게 전략적으로 판단하되, 자유민주주의나 인권 등 보편적 가치 문제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공통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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