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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이 없대요,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 22세 딸의 절규 [편지전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병상 부족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51세 아버지를 둔 22세 딸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 환자의 딸의 피 끓는 호소가 관심을 끌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뉴스1

16일 오후 서울 중랑구 서울특별시 서울의료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뉴스1

“저는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대기 중인 코로나 중증환자(환자번호 222912)의 딸입니다”라고 소개한 박민경(22)씨는 22일 언론사에 “코로나 치료 병상이 없습니다. 아빠를 살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박씨는 “현재 아버지는 지난주부터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중환자 병상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대기중”이라며 “상태는 점점 악화하는데 의사 선생님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정부에서 이송 명령이 나야만 큰 병원으로 갈 수 있다. 이제는 폐 기능이 상실되고 몸에 산소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절규했다.

 22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공사 관계자들이 중환자실을 음압병동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내년 1월까지 중등증 이상 병상을 2만5천 개까지 늘리기로 하는 코로나19 병상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22일 오전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공사 관계자들이 중환자실을 음압병동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내년 1월까지 중등증 이상 병상을 2만5천 개까지 늘리기로 하는 코로나19 병상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제대로 된 검사나 치료도 못 받고 혼자서 외롭게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원통하고 미안하고 가슴이 찢어진다”며 “의학적인 것은 잘 모른다. 그냥 듣기로는 에크모라는 장비와 중환자실이 필요하다는 것밖에 모른다. 현재 병원은 중환자실이 없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서울시립서북병원. 박민경씨 제공

서울시립서북병원. 박민경씨 제공

박씨는 “국가가 힘을 집중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며 “전셋집에서 나가 길거리에 내몰리더라도 돈이 필요하면 평생 갚겠다. 제발 아빠를 살려주세요. 환자들을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는 “주변에는 확진돼도 연락이 없어 집에 대기하는 사람도 있다. 구청으로부터 코로나 증빙 문자를 받으려 해도 전화도 1주일 넘게 불통이다. 직접 방문해 연락하고 신청서를 기재해야해야 며칠 뒤 문자를 받는다. 이게 현장이다”라며 과부하가 걸린 시스템을 지적했다.

박씨는“지금 국가는 없고 국민은 각자도생”이라며 “이 글을 보시는 국가에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주시길 부탁드린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따위의 말은 하고싶지도 않다. 그냥 빨리, 무조건 빨리, 치료를 받을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아빠 힘내라고 기도좀 해달라”며 글을 마쳤다.

박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아버지는 은평소방학교에 마련된 생활치료센터에서 지난 17일 서울서북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후 상태가 악화됐지만 상급 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아버지가 3인실에서 노즐에 의지해 산소를 공급받고 있다. 에크모가 있는 상급 병원에 가야 정상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박씨는“아버지는 물론 현재 중증 환자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야 한다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고 밝혔다.

박민경씨가 보낸 이메일 전문

코로나 치료 병상이 없습니다. 아빠를 살려주세요.

저는 서울시립서북병원에서 대기중인 코로나 중증환자(환자번호 222912, 51세)의 딸입니다. 현재 아버지는 지난주부터 산소호급기에 의존한 채 중환자 병상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대기중에 있습니다.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데 파견 나오신 의사선생님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 곳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정부에서 이송 명령이 나야만 큰 병원으로 이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제는 폐기능이 상실되고 몸에 산소가 형성되지 않고…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12월 14일 화요일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양성 판정 당시 바로 은평소방학교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었으며 해당 센터에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금요일(17일)에 서북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만해도 아빠가 적절한 치료를 받아 회복의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연속은 시작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이송 후 바로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폐는 이미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답변은 현재 비는 병실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저와 엄마는 아무것도 못하고 지금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건강하던 아빠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제대로 된 검사나 치료도 못 받고 오로지 혼자서 외롭게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원통하고 미안하고 가슴이 찢어집니다.

아빠! 옆에 있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자가호흡이 불가능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한 CT 촬영도 불가능해졌습니다. 몸상태가 어떤지 확인조차 안되고 대소변도 병상에서 받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하루 한시가 고비이고, 이제는 오로지 질병관리본부에서 이송 승인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처음부터 위급하다고 판단하고 백방으로 알아보셨지만 현장에는 아무런 권한도 정보도 없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관계 기관이나 병원이 연락도 안되고 소통이 안되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전화벨이라도 울리면 혹시라도 상상하기 싫은 연락이 올까 봐 너무나 두렵습니다.

제가 의학적인 것은 잘 모릅니다. 그냥 듣기로는 에크모라는 장비와 중환자실이 필요하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현재 병원은 중환자실이 없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모두들 너무나 고생하시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원망스럽습니다.

병원의 탓도, 의료진의 탓도 누굴 탓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지금의 상황이 너무 원통하고 원망스럽습니다. 국가가 힘을 집중하면 이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저희 전세집이라도 나가 길거리에 내몰리더라도 필요한 경비를 충당해주세요. 돈이 필요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평생토록 갚을 게요. 그리고 제발 아빠를 살려주세요. 환자들을 살려주세요.

병실은 좀더 빨리 늘리고, 장비는 좀더 많이 구입하면 안될까요? 정치도 선거도 부동산도 다 멈추고 지금은 이곳에 집중해주시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공직사회나 관료주의의 의사결정시스템과 절차, 업무효율성 등에 대해 전혀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시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병실이 부족하다 곧 소진된다’고 할 때 이미 현장은 병실이 소진된 지 오래이며 지옥이며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코로나 확진되어 몸이 아파도 연락이 없어 집에서 대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청으로부터 코로나 관련 증빙용 문자를 받기 위해서는 전화도 1주일 넘게 불통이고 직접 구청을 방문해서 연락달라고 신청서를 기재해야 며칠 뒤에나 문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현장입니다.

지금 국가는 없고 국민들은 각자도생입니다. 누구는 코로나 의심되면 절대 검사나 관할구청에 연락하지 말고 스스로 119타고 응급실부터 가라고 합니다. 일단 병원에 들어가야 치료 받을 수 있다고…이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너만 힘드나 너 보다 더 힘든 환자도 많다. 징징대지 마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빠를 위해서라면 이렇게 밖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니 더 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바쁘시고 힘드신 데 이런 글 올려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제가 평생 욕먹고 살더라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달게 받겠습니다. 제발 아빠만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세요. 누군가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또 누군가 좋은 방안이 있다면, 또 어디인가 병실이 있다면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환자 그리고 가족분들 모두 힘내시기 바래요. 그리고 방역당국 의료진 관계 봉사자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희망을 놓지 않도록 부탁드려요.

그리고 또 이 글을 보시는 국가에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서둘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따위의 말은 하고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빨리요. 무조건 빨리요. 하루 한시라도 빨리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아빠 힘내라고 같이 기도좀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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