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감미롭고 섬세한 "인류예술의 극치"|자연보다도 아름다운 외광파 그림에 "희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기획이 훌륭하고 질이 좋은 미술전람회일수록 보는 사람이 적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중의 수준을 넘어서는 전람회는 오히려 정당하게 평가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향수는 지나치게 앞서가면 오히려 무관심과 무시의 결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따지고 본다면 문화의 창조는 양보다는 질에 있기에, 이와 같은 대중적인 무관심 속에서도 좋은 예술행사는 줄곧 개최돼야 한다. 비단 몇 사람의 애호가를 일깨워 준다해도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한다. 우수한 문화창조는 그러한 고독과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중앙일보 창간25주년기념으로 호암 갤러리에서 전개되고 있는 『서양회화 명품전』은 30년 이상을 여러 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한 나로서도 국내에서 처음 보는, 거창한 미술전람회이기에 여러 번 전람회장을 찾았다.
다른 전람회보다는 훨씬 관람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좋은 전람회는 역시 많은 관람객이 모일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 주는 듯했다.
이만한 가치가 있는 미술전람회라면 줄을 서서 기다려도 결코 헛되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러한 좋은 질의 전람회이기 때문이다.
이 전람회에 출품된 작품은 동경 후지 미술관이라는 일본의 한 사설미술관의 소장품으로 꾸며졌지만 그 질은 서양의 르네상스로부터 시작해 바로크, 로코코, 그리고 인상파에 이르는 서양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은 좋은 기회였다.
르네상스의 그림은 벨리니에서부터 시작해 매너리즘에 걸치는 여러 걸작들을 엿볼 수 있다.
다만 16세기의 3대거장, 즉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빠진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이 3대 거장의 보물급 작품은 구할 수가 어렵기에 일본에서도 드물고,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도 그와 같은 보물급의 문화재는 해외반출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그 작품이 없다고 섭섭하게 생각할 일이 아닐 것 같다.
바로크미술은 루벤스를 중심으로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중심이 된 회화인데 뛰어난 루벤스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또한 서민의 감정이 넘쳐흐르는 주옥과 같은 브뤼겔의 작품 또한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해준다.
이번 전람회는 인상파를 앞세우고 있지만 그것에 가러있는 로코코미술, 즉 18세기 프랑스의 미술이 무엇보다도 뛰어나게 갖추어져있다. 와토에서 시작해서 부쉐, 프라고나르로 흘러오는 로코코의 감미롭고 섬세한 화폭의 세계는 서양미술의 하나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인상파는 마네, 시슬레 등 자연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외광파의 그림이 진열되어서 시각의 희열을 통해서 생명의 전율에까지 다다른다.
주옥과 같은 인상과 그림은 결국 예술과 과학의 조화에서 온 것으로 얼마든지 보아도 싫증이 안 나는 인류예술의 극치인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