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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타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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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15년 만에 재개봉하는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는 장르 영화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쾌감이다. 탄탄한 원작과 더 탄탄한 각색, 더 이상 적절할 수 없는 캐스팅과 물 만난 고기 같은 배우들의 연기, 볼 땐 그냥 무난해 보이지만 실상은 대단한 완급 조절의 연출력, ‘향연’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쉼 없이 이어지는 명대사…. 이 영화가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반복 관람되는 건, 여전히 캐릭터들의 성대모사가 이뤄지고 곽철용 같은 캐릭터가 ‘밈’으로 만들어지는 건, ‘타짜’라는 텍스트가 지닌 디테일과 풍부함 때문일 것이다.

타짜

타짜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이 영화에 레전드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건 아니다. ‘타짜’가 웰메이드 장르 영화에서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었던 건, 온갖 욕망이 뒤엉킨 드라마가 남기는 씁쓸한 페이소스 때문이다. 아귀(김윤석)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고니(조승우)는 돈 가방을 들고 열차에 탄다. 이때 용해(백도빈)의 공격을 받는 고니는 다행히 목숨을 건지지만, 열차 문고리에 매달리는 위기에 처한다. 이때 가방이 열리면서 지폐가 눈처럼 날리는데, 이 상황을 바라보는 고니의 표정은 이 영화의 감성을 축약한다. 무표정 위에 조금씩 피어나는 미묘한 웃음. 화투라는 건 플라스틱 쪼가리 놀음일 뿐이라며, 돈이라는 건 바람에 날리는 허약한 종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은 자의 미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