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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송구" 사과한 文, 방역책임 이진석·기모란은 또 감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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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6일 단계적 일상회복의 중단 결정과 관련 “위중증 환자의 증가를 억제하지 못했고, 병상 확보 등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며 “방역조치를 다시 강화하게 돼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가 불과 45일만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되돌아간 상황에 대한 사과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확진자의 폭증 속에서도 지난달 2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1만명 확진자가 나올 것에 대비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같은달 29일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도 “과거로 후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방역조치를 즉각 강화해야 한다”는 방역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 결과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7622명으로 8000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위중증 환자는 989명으로 또다시 최다치를 갈아치웠고, 하루 사망자도 62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달 중 1만명, 1월중 최대 2만명까지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경미 대변인을 통해 전달된 이날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포함돼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지속한다는 결정 과정에서 일종의 ‘오판’이 있었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정부와 청와대가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재의 코로나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준비 부족과 관련 참모들에 대한 질책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관련 질책은 없었다”고 답했다.

기모란 방역기획관이 청와대에서 열린 2차 특별 방역 점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모란 방역기획관이 청와대에서 열린 2차 특별 방역 점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은 문 대통령이 방역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이진석 국정상황실장과 기모란 방역기획관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황규환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최고의 방역전문가라며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앉힌 기모란 기획관 등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아무 설명이 없다”며 “당초 위기 극복 의지가 있었다면 진작 이들을 경질하고 전문가들의 고언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 실장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기소됐음에도 “방역 때문에 의사 출신인 이 실장을 경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보은 인사’ 논란을 빚었던 기 기획관에 대해서도 “방역당국과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두둔해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과 통일정책비서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지만, 이들 두 사람은 이번에도 교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두번째)과 이진석 국정상황실장(오른쪽)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 두번째)과 이진석 국정상황실장(오른쪽)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부동산 실패에 대해 사과했을 때는 김수현 전 정책실장 등을 경질했던 문 대통령이 왜 방역 책임자들은 끝까지 두둔하는지 모르겠다”며 “참모들의 잘못된 보좌로 대통령이 ‘후퇴 불가’ 등의 메시지를 냈다가 번복하면서 신뢰도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이들을 또 감쌀 경우 모든 책임을 온전히 문 대통령이 지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강화된 방역조치 기간에 확실히 재정비하여 상황을 최대한 안정화시키고 일상회복의 희망을 지속해 나가겠다”며 “코로나 상황을 예상하기 어렵고 방역과 민생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정부는 기민하게 대응하고 국민들과 함께 인내심을 가지고 극복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상회복으로 기대가 컸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상실감이 크므로, 손실보상과 함께 방역 협조에 대해 최대한 두텁게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확정해 신속히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소상공인 지원 방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적모임·시설이용 추가 제한을 골자로 하는 거리두기 강화 방안이 발표된 16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사적모임·시설이용 추가 제한을 골자로 하는 거리두기 강화 방안이 발표된 16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 영업종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관계자도 지원 방식과 관련해선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에 대해서도 “현재로서 추경은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 가용한 예산을 활용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에 그쳤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문 대통령은 그간 이른바 ‘K방역’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지지율 관리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해온 측면이 있다”며 “사실상 방역 실패를 인정한 것은 임기말 국정운영 동력의 급격한 약화는 물론 내년 대선에서도 여당 후보에게 악영향을 줄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2일 오후(현지시간) 코로나 백신 공급 확대 및 보건 역량 강화 방안을 다룰 확대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 사진에 대해 "각국 정상들이 한국의 방역 성과를 극찬한 것"이라고 홍보했다. 연합뉴스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2일 오후(현지시간) 코로나 백신 공급 확대 및 보건 역량 강화 방안을 다룰 확대회의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 사진에 대해 "각국 정상들이 한국의 방역 성과를 극찬한 것"이라고 홍보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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