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밀양 백중놀이 기능보유자 하보경 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춤에 미쳐 지난 60여년을 그냥 흘려 보냈지만 후회는 없어.』
밀양 백중놀이의 양반춤과 범부춤 기능 보유자로 지난 80년 무형문화재 68호로 지정된 하보경 옹(84·경남밀양시내1동332).
하옹의 일생은 춤과 놀이에 미친 바람난 한량의 그것이었지만 지금은 전통 민속춤을 마지막까지 지켜낸 살아있는 문화재로 우뚝 서있다.
『춤은 온몸의 뼈마디가 하나도 없이 부드러운 상태에서 가락에 맞춰 움직이면 되는 거야.
한군데라도 뻣뻣한 곳이 있으면 제대로 된 춤이라고 할 수 없지.』
특별한 스승 없이 동네어른들과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는 하옹의 춤관은 단순 명료하다.

<연구논문도 나와>
부드러움과 무거움이 하나로 조화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는 하옹의 양반춤은 무용학계에서도 연구논문이 나올 만큼 깊이가 있다고 한다.
하옹의 범부춤은 장구잡이와 함께 어울려 추는 것이 특징으로 중인계층의 활달한 몸짓이 살아있다.
하옹이 범부춤을 출 때는 범나비가 훨훨 날아오르는 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7대째 밀양에서 살고 있는 밀양토박이 하옹은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이 동네 노인들이 하는 몸짓을 보고 따라하다가 춤을 배웠다.
하옹은 구한말인 1906년1만평에 가까운 농토를 지니고 객주업을 했던 중인출신 부자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하옹의 아버지는 전국을 돌며 춤과 노래를 베푸는 놀이패의 화주였으며 그 자신 북을 치고 춤을 추는 예인이기도 했다. 하옹은 지금도 아버지가 쓰시던 북을 가지고 있다.
해마다 음력 7월 보름 백중날이면 동네 노인들이 마을 「한바다」라는 놀이터에서 양반춤 등을 추는 것을 보며 자랐다.
예부터 땅이 기름져 물산이 풍부했고 재약산 표충사, 남천강 영월루 등 산천이 수려했던 밀양에는 보본계라고 하옹의 아버지때에 조직된 놀이계가 있었고 24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놀이계의 북치는 고수가 됐다.
20세때 중매로 결혼했으나 언제나 집밖으로만 떠돌았다고 한다.

<부잣집 맏아들로>
24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집안 일은 부인에게만 맡긴 채 마을 앞산, 이웃동네, 더 먼 동네로 놀이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역시 춤으로 남의 춤을 보고 있으면 절로 어깨짓이 나오고 자신이 춤을 추면 그 속에 몰입돼 세상의 아무 것도 춤 만한 깊은 감흥을 주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
23세때 술에 취해 사람을 다치게 한 이후 술을 끊어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하옹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방랑생활을 계속하며 춤에만 열중해 살았다.

<놀이판 찾아 유랑>
해방전해에는 장에 소를 팔러나가 그 돈을 가지고 그 길로 훌쩍 만주로 떠나 넉달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만주에서도 하옹이 춤을 추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집회가 금지된 시절에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을 돕는게 아니냐는 혐의로 일경에 쫓기게 돼 발길을 고향으로 돌렸다는 것.
하옹은 해방 후 친목계놀이에서 국악협회로 밀양지역의 춤놀이 전통이 이어지면서 부산지역 탈춤놀이의 하나인 동래야류·수영야류 등의 행사에 초청 받아 찬조출연을 자주 했다.
이 과정에서 국악협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우리도 훌륭한 민속놀이와 기량이 있으니 우리 고장 것을 살려보자』는 여론이 생겼다.
이래서 지난79년 경남지역 민속경연대회에 병신굿놀이를 가지고 출전했고 80년엔 경남도대표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나가게 됐다.
전국대회에 나갈 바에는 이 지역의 백중놀이를 복원하기로해 그동안 병신춤·북춤·농신제 등 일부만이 백중놀이로 이어져 왔던 것을 하옹이 중심이 돼 양반춤·범부춤·5북춤 등을 추가해 집대성했다.
넉달간의 연습 끝에 출전해 80년 전국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것이 백중놀이가 무형문화재로 공인받게 된 계기다.
하옹은 백중놀이가 무형문화재가 된 후에는 마을 민속회관에서 한달에 두차례씩 제자들을 가르치는 외에 민속경연대회, 거리축제, 각종 초청공연 등에 두어달에 한번씩 참여하고 있다.
하옹의 제자는 손자 용부씨(35)를 포함, 26명의 이수자, 2명의 전수자등이며 이들에게 춤을 가르칠 때는 80고령의 나이를 잊고 직접 북을 치며 시범을 보인다.

<제자키우는게 낙>
1m76㎝의 훤칠한 키에 기골이 장대해 젊을 때는 씨름대회에 나가 소도 여러 마리 탔었다는 하옹은 『이제 너무 되어서 범부춤은 못 춰. 3년전만 해도 추었었는데…』라며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일생동안 한푼도 벌지 않고 쓰기만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은 이제 남은 것이 없지만 춤 하나에 매달려 일생을 바친 하옹.
그 얼굴에는 허허로움 보다는 자신의 춤을 제자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세상에 남기겠다는 예인의 뜻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 계속해서 춤을 출 거야. 제자들도 열심이어서 조금만 더 가르치면 될 것 같고.』
글 조현욱·사진 오동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