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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추모 메시지 안 내기로…이재명·윤석열 “조문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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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3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이 유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셋째부터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차남 전재용씨, 손자 전모씨. [뉴시스]

23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이 유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 셋째부터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차남 전재용씨, 손자 전모씨.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별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에 조화를 보내거나 조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 명의의 추모 메시지도 내지 않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차원의 조화와 조문 계획은 없다”고 했다.

박 대변인은 ‘명복’과 ‘위로’라는 표현이 담긴 청와대 입장을 공개하면서도 이 문장의 주어를 표기하지 않았다. 청와대 발표문이 문 대통령의 추모 메시지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했을 때는 이튿날 장례를 국가장(國家葬)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뒤 대통령 명의로 추모 메시지를 냈고,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빈소로 보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전(前) 대통령’ 호칭을 쓴 것과 관련해 ‘최소한의 예우냐’는 질문에 “대변인 브리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책을 쓴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이라고 직접 호칭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국가장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유족들이 가족장을 치르더라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고 했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도 “국가장으로 예우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담당비서관은 “고인이 회고록에서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그냥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고 남긴 내용이 사실상의 유언”이라며 “평소에도 ‘죽으면 화장해 그냥 뿌리라’고 하셨고, 가족들은 그대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화장한 후 연희동에 모시다가 장지가 결정되면 그리로 가실 것”이라고 했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여당 “전두환씨” 야당 “전두환 전 대통령”

이날 부인 이순자씨가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7일, 장지는 아직 공지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이날 부인 이순자씨가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7일, 장지는 아직 공지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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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 대통령 별세 소식에 대한 여야 반응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일단 그에 대한 호칭이 여당은 ‘전두환씨’, 보수 야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조문도 하지 않고 조화도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가장에도 반대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날 오전 “전두환씨는 내란 학살사건 주범”이라며 “사적 욕망을 위해 국가 권력을 찬탈했던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도 국민에게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 상태로는 조문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생물학적 수명이 다해 피의자 전두환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며 “추징금 956억여원이 미납 상태다. 상속 재산에서 추징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준비하겠다”고 썼다.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왼쪽)과 고명승 전 육군대장이 23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왼쪽)과 고명승 전 육군대장이 23일 오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에 국민의힘은 고민을 거듭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이날 오전 경선 주자들과의 오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전직 대통령이시니까 (조문을) 가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며 조문 가능성을 열어뒀다. 고인에 대한 평가도 “상중이니까 정치적인 얘기는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2시간쯤 흐른 이날 오후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조문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오찬 자리에서 “안 가는 게 좋겠다”는 만류가 많았다고 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따로 조문할 계획이 없다. 당을 대표해 조화는 보내겠다”는 짧은 입장을 밝혔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 조문하는 게 인간으로서 도리”라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명복을 빈다”면서도 “역사적 과오를 끝내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조문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상정 대선후보는 “성찰 없는 죽음은 그조차 유죄”라고 평가했다.

5·18 기념재단과 5월 단체(유족회·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반성과 사죄는커녕 5·18 영령을 모독하고 폄훼하며 살았던 학살자 전두환은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정치인도, 시민 조문객도 뜸했다. 오후 4시30분에 빈소가 차려졌지만 오후 10시까지 찾아온 조문객은 300명 정도였다. 조문객 중 현역 국회의원은 전 전 대통령 딸 효선씨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만 눈에 띄었다.

민주당에선 조문하는 이가 없었고 조화나 조기도 없었다. 국민의힘에서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원내대표, 정진석 국회부의장, 김도읍 의원이 조화를 보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 여야 정치인과 재계 인사가 줄지어 조문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핵심 측근 장세동, 밤새워 빈소 지킬 것”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는 오후 5시쯤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 없이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전두환의 분신’으로 불렸던 핵심 측근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오후 5시30분쯤 빈소에 들어간 뒤 한 차례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가족 측 인사는 “장 전 부장은 밤새워 빈소를 지킬 것”이라고 했다.

적막감 속에 빈소를 지킨 이들은 전두환 정권 핵심 실세들이었다. ‘하나회’ 출신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고명승 예비역 육군 대장 등이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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