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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따질 때 아니다" 해외생산·아웃소싱 포기하는 기업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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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베네통 매장에 한 시민이 들어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베네통 매장에 한 시민이 들어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가 기업의 비용절감 원칙을 바꾸고 있다. 공급망 대란으로 자재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자 돈이 더 들더라도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직접 고용과 자국 생산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 기업을 중심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해오던 오프쇼어링(생산시설 해외 이전)과 아웃소싱을 포기하고 있다”며 “자국생산(온쇼어링), 직접고용(인소싱)을 선호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형 건설업체 풀티그룹은 주택용 창문·페인트·가전기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결책으로 택한 건 자체 생산이다. 미 전역에 6~8개의 공장을 지어 외부 업체에서 공급받던 자재를 직접 만들 계획이다. 라이언 마샬풀티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안정적인 자재 조달을 위해 추가비용을 들어도 유연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칵테일 기계를 생산하는 미 스타트업 바테시언도 시카고 외곽에 재활용 가능한 캡슐 제조시설을 세우기로 했다. 과거 중국에서 생산해 물품을 들여오던 전략을 바꾼 것이다. 국내 생산이 더 비싸지만, 운송 정체에 시달릴 일은 없다. 라이언 클로즈바테시언 CEO는 “납품업체에 좌지우지될 수는 없다"며 "우리가 통제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 철강업체 머제스틱스틸은 협력업체 공장 부지에 완제품 생산시설을 짓기로 했다. 납품업체와 물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다. 해외에서 오는 자재를 빨리 받기 위해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에 가까운 네바다·텍사스에 지사도 설립했다.

지난 7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국제공항에서 델타항공 로고가 적혀진 좌석에 관광객들이 앉아 여객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국제공항에서 델타항공 로고가 적혀진 좌석에 관광객들이 앉아 여객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노동력 부족 현상은 아웃소싱에 대한 기업의 시각도 바꾸고 있다. 델타항공은 지난 몇 개월 동안 항공기 청소와 휠체어 운행 인력 등 수천 명을 직접 고용했다. 용역업체가 해당 인력을 제때 확보해주지 못해서다.

에드 바스티안 델타항공 CEO는 “많은 경영자가 향후 노동시장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직원은 마법처럼 늘지 않을 것”이라며 “비용이 더 들어도 인소싱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항구에 보관돼 있는 컨테이너의 모습.[EPA=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항구에 보관돼 있는 컨테이너의 모습.[EPA=연합뉴스]

낮은 임금을 찾아 떠났던 다국적 기업의 생산기지를 본사 등의 근거리로 옮기는 이전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탈리아 패션업체 베네통은 향후 12∼16개월 이내에 라오스·캄보디아·태국·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의 제품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아시아는 베네통 제품 생산의 58%를 담당해왔다.

줄어든 아시아 생산을 메우기 위해 세르비아·크로아티아·터키·이집트 등 지중해 국가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물류비가 오르며 아시아의 저렴한 인건비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WSJ은 “비용이 저렴한 아시아 지역 공장에 의존해오던 의류업계의 관행을 역행하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베네통 마시모 리논 베네통 CEO는 “아시아 업체를 이용할 때보다 생산비가 오르겠지만, 더 나은 품질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생산지가 가까워져 더 꼼꼼하게 생산 과정을 점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베네통 측은 배송 시간이 수주에서 1주로 줄어들면서 운송비도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변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변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허리띠 졸라매기에 집중하던 기업의 U턴은 기업 경영의 방점이 비용절감에서 리스크(위험) 절감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3D 프린팅 업체 카본의 엘런 쿨먼 CEO는 “기업들은 이제 아웃소싱과 오프쇼어링을 기반으로 한 경직된 생산 시스템이 경영에 손실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리스크 관리가 기업 경영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영국의 해운 전문 컨설팅 업체 드류리는 최근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라 2023년 초까지 컨테이너선 공급망 차질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쿨먼 CEO는 “공급망 불안정과 인력난을 일시적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천재지변이나 새로운 전염병 등으로 공급 차질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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