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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소(吳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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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강(長江)과 회하(淮河)가 겹치는 곳 일대는 예부터 오(吳)나라 땅이라 불렸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손권(孫權)의 오나라도 현재의 난징(南京)을 비롯한 장쑤(江蘇) 지역에 근거지를 뒀다. 한여름이면 날씨가 매우 더워 난징의 경우 중국의 '3대 화로(火爐)'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다.

이곳에 사는 소가 오우(吳牛)다. 남쪽 지방 무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소 종류로 더위에 약하다. 한여름 땡볕을 피해 물이나 진흙밭에 들어가 몸을 숨기는 습성이 있다. 강렬한 태양을 피하려는 그 모습을 두고 중국인들은 역시 고사를 만들어 낸다.

진(晋)나라 무제(武帝) 때 만분(滿奮)이라는 관료는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이다. 북풍이 강렬하게 몰아치는 날이면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바람 부는 어느 겨울날 그는 무제를 알현하려고 궁에 들어섰다. 유리로 만들어진 창을 통해 바람을 느낀 그는 황제 앞에서 몸을 떨고 말았다. "왜 몸을 그리 떠느냐"는 황제의 질문에 이유를 설명하자 황제는 "유리는 바람이 통하지 않는 걸 모르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자 만분은 "제가 바로 달만 봐도 헐떡거리는 오나라 소입니다"라면서 궁색함을 피해 간다. '오나라 소는 달을 보고도 헐떡거린다(吳牛喘月)'라는 성어가 등장하는 '세설신어(世說新語)'의 한 대목이다.

한여름 강한 땡볕에 시달린 오나라 소가 밤에 떠오른 달을 보고 태양인 줄 착각해 지레 겁을 먹는 모습을 담았다. 자신이 과거에 당한 피해와 비슷한 상황이 닥칠 경우 먼저 우려와 불안을 갖게 되는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 성어다.

요즘 우리는 느닷없이 오나라 소의 공황(恐慌) 심리에 젖는다. 북한 핵실험을 겪은 뒤에도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이 정당했다는 점을 극구 주장한다. '햇볕'이 지니는 대북 정책의 실효성을 제대로 검토해 볼 만하지만 지난 정부와 현 정부의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지레 겁을 먹는 모습의 '오나라 소'를 나무라는 모양새다.

이에 못잖은 우려가 있다.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을 찾아 호남(湖南) 카드를 다시 뽑아들었다. 영락없는 지역구도의 재연이다. 여야도 함께 지역구도를 향한 대열에 뛰어들 모양새다. 지난 30년 한국을 분열과 반목으로 몰았던 지역감정의 부활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불안과 우려를 떨칠 수 없다. 헐떡거림이 신음으로 이어지는 국민의 마음을 저네들은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