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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김정은이 괘씸했다…IOC도 대북제재, 수십억 박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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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1일자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그해 평창 올림픽 개최 직후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2018년 3월 31일자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 그해 평창 올림픽 개최 직후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8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해 내년 말까지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사실상의 대북 제재 성격이다. 자격정지가 되면 내년 2월 중국이 개최 예정인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을뿐더러 IOC가 각 회원국에 지급하는 지원금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정확한 금액에 대해 IOC는 함구했지만 IOC 안팎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9일 중앙일보에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는 될 것”이라며 “평양 입장에선 베이징 올림픽 참가 여부보다는 지원금을 못 받는 것이 더 아픈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APㆍ로이터 등의 IOC 전문기자들은 “IOC가 북한에 수백만 달러를 몰수(forfeit)한 셈”이라고 표현했다. 내년 3월 대선 직전에 개최되는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 화합의 계기로 삼고자 했던 국내 일각의 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화상으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중앙포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화상으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중앙포토]

IOC가 이같은 강경 결정을 내린 것은 수개월 간 북한에 대한 ‘괘씸죄’ 성격이 짙다. 그 발단 중 하나는 한국 정부가 불을 지핀 2032년 여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였다는 후문이다. 한국 정부의 의사를 전달받은 IOC가 북측에 수차례 의사를 타진했으나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미국의 IOC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스포츠를 통한 평화 증진’이라는 건 올림픽 무브먼트(정신)의 주요 기둥인만큼, IOC도 열린 자세로 검토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IOC에 북한이 무시 전략을 쓰면서 화를 자초한 셈이다. 2032년 올림픽 개최지는 호주 브리즈번으로 확정됐다. 여기에다 IOC가 안팎으로 각종 리스크를 감내해가면서 개최했던 도쿄올림픽에도 북한이 무단으로 선수단을 보내지 않겠다고 일방 결정 및 통보한 것은 결정타였다.

이번 결정을 IOC가 발표한 방식도 주목할만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본인이 직접 밝혔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린 것은 IOC의 집행위원회(EB)이지만 바흐 위원장 본인이 직접 그 결과를 브리핑했다. IOC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격인 EB 후엔 기자회견이 응당 따르지만 위원장이 직접 상세히 답변을 하리란 보장은 없다. 바흐 위원장은 그러나 관련 질문에 직접 마이크를 잡고 답변을 했다. 그는 스위스 로잔 본부에서 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북한 올림픽위원회가 도쿄올림픽에 일방적으로 선수단을 보내지 않았다”며 “내년 말까지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없고 그동안의 제재로 인해 보류된 (금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함께 기념촬영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바흐 IOC 위원장. 그 옆으로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의 모습도 보인다. 연합뉴스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함께 기념촬영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바흐 IOC 위원장. 그 옆으로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의 모습도 보인다. 연합뉴스

이는 바흐 위원장의 진노(震怒)를 반영한다. 독일 출신으로 통일을 몸소 겪으며 성장한 바흐 위원장은 남북 화합의 파급력을 잘 안다. 그 자신도 남북 화합을 위해 IOC 위원 시절부터 활약했다. 기자와 2014년 인터뷰에서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공동 입장을 성사시키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원장에 당선한 뒤인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 직후인 3월 29일에도 평양을 방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바흐 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이 환히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은 북한 관영매체에도 비중있게 보도됐다. 평화 전도사였던 바흐 위원장이 북한에 대해 이번엔 경고장을 제대로 날린 셈이다. 바흐 위원장뿐이 아니다. IOC 사정에 밝은 미국 소식통은 “일군의 IOC 위원들과 관계자들 역시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남북간 중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사진은 2019년에서 남북한 체육 관계자들과 만난 직후 약식 기자회견 중인 장면이다. 당시 2020년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및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 등을 논의했다. 모두, 불발됐다. 왼쪽부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 바흐 위원장, 김일국 북한 체육상. 연합뉴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남북간 중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사진은 2019년에서 남북한 체육 관계자들과 만난 직후 약식 기자회견 중인 장면이다. 당시 2020년 도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및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 등을 논의했다. 모두, 불발됐다. 왼쪽부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 바흐 위원장, 김일국 북한 체육상. 연합뉴스

 노련한 전략가인 바흐 위원장은 그러나 뒷문은 열어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격이 되는 선수들에 한해,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 개인적으로 출전할 수 있는지 여부는 추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하는 것을 봐서 문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넌지시 전한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다거나 남북 공동 개최를 한반도기를 들고 하는 등의 장면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현재로서의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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