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남북올림픽 IOC 수차례 연락했지만, 평양 거부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5 05:00

업데이트 2021.07.05 09:55

박용성 전 두산 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두산타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박용성 전 두산 회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두산타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한국이 개최한 첫 겨울올림픽이자, 남북 화해의 물꼬를 한때나마 터줬던 2018 평창을 유치한 지 6일이면 꼭 10년이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평창은 삼수의 분루를 삼킨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쟁쟁한 겨울스포츠 선진국 독일의 뮌헨, 프랑스의 안시에 63:25:7 이라는 압승을 거뒀다. 지구 반대편에서 IOC 당시 자크 로게 위원장이 ‘평창’을 호명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만세’를 외쳤다.

평창 유치 10주년, 박용성 전 회장 인터뷰

평창 유치의 주역 중 상당수가 기업인이었다. 당시 대한체육회장이었던 박용성(81) 전 두산그룹 회장을 최근 만났다. 함께 유치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0년 사이 유명을 달리했다. 박 전 회장은 “두 분을 떠나보내고 나니 참 슬펐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간 제대로 얼굴도 못 보았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곧 “서울 여름올림픽 유치위원회는 얼마 전에 유치 30주년 모임도 했다고 하더라”며 “평창을 얘기할 때면 ‘우리가 겨울올림픽을 하긴 했었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가 참 아쉽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1988 서울 여름올림픽 유치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이후 IOC 위원 및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스포츠 외교의 국제화에 핵심 역할을 해냈다. 그가 키워낸 재목들은 현재 IOC 및 각 국제기구에서 한국을 대표해 일하고 있다.

2011년 평창의 올림픽 유치 확정 직전의 순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자크 로게 IOC 당시 위원장이 악수를 건네고 있다. 맨 오른쪽이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 [연합뉴스]

2011년 평창의 올림픽 유치 확정 직전의 순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에게 자크 로게 IOC 당시 위원장이 악수를 건네고 있다. 맨 오른쪽이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 [연합뉴스]

그는 “IOC 위원이 되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지만, 자국에 올림픽을 유치한다는 건 위원들의 꿈”이라며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점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동시에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는 물론,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와 ‘더반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은 나승연 유치위원회 대변인을 언급하며 “우리 모두가 함께 해낸 성과”라고 강조했다.

평창 유치 성공을 결정한 IOC 남아공 더반 총회를 앞두고 외신기자 질문에 답하는 김연아 선수. 왼쪽과 오른쪽으로 각각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과 고(故) 조양호 당시 유치위원장이 보인다. [연합뉴스]

평창 유치 성공을 결정한 IOC 남아공 더반 총회를 앞두고 외신기자 질문에 답하는 김연아 선수. 왼쪽과 오른쪽으로 각각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과 고(故) 조양호 당시 유치위원장이 보인다.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정세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내 책상 위에 핵 (발사) 버튼이 있다”(김정은) “내 책상 위 버튼이 더 크고 강력하다”(트럼프)며 일촉즉발 대치 모드였다. 상황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에 참석 의지를 밝히며 급반전했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현 노동당 부부장이 방남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 대표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 평창 올림픽이 물꼬를 튼 뒤, 남북은 그해 세 차례 판문점ㆍ평양에서, 북ㆍ미는 그해 6월엔 싱가포르, 이듬해 2월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역사에 남을 정상회담을 열었다.

2018년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 내외의 모습 등이 보인다. [연합뉴스]

2018년 2월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마이크 펜스 당시 미국 부통령 내외의 모습 등이 보인다. [연합뉴스]

박 전 회장은 “스포츠로서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IOC와 올림픽의 정신을 극대화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그러나 남북 관계 관련 레거시(legacyㆍ유산)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스포츠인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며 “한 국가가 겨울올림픽까지 개최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대한 유산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다시 기억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성 전 두산 회장. 임현동 기자

박용성 전 두산 회장. 임현동 기자

비화도 공개했다. 로게 당시 IOC 위원장의 공식 발표를 몇 시간 남겨두고, 쿠웨이트의 왕자로 IOC 위원이기도 한 셰이크 아흐마드 알파하드 알사바가 박 전 회장을 보더니 손짓을 했다고 한다. 다가가자 박 전 회장의 귀에 그가 “평창이 60표가 넘었다, 압승 축하한다”고 전했다. 박 전 회장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현장에 있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고, 둘은 함께 씩 웃었다고 한다. 당시 평창의 호적수였던 독일 뮌헨의 유치를 이끌던 수장이 현 I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다. 만만찮은 적수를 상대로, 단번에 압승을 거둔 건 한국 스포츠 외교의 승리였다. 일각에서 그를 조직위원장에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가 먼저 사양했다고 한다.

평창이 유치에 승리한 직후인 2011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만난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 본지가 선물한 당시 1면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평창이 유치에 승리한 직후인 2011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중앙일보와 단독으로 만난 자크 로게 당시 IOC 위원장. 본지가 선물한 당시 1면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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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정부에서 추진했던 2032년 남북 공동 여름올림픽 유치에도 그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지난해 사망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대표적이다. 박 전 시장은 박 전 회장에게 직접 전화해서 “유치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박 전 회장은 “나는 나이도 많으니 필요하다면 뒤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욕심이 나진 않았을까. 박 전 회장은 “나는 대한체육회장으로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과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고 올림픽 유치에도 성공했다, 그 정도면 됐고 후세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2032년 여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는 IOC에서도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IOC측에서수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평양 측에선 “관심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고 한다. 박 전 회장은 “남북이 함께 개최하면 좋긴 하겠지만 현실적 상황도 고려를 해야 한다”며 “한국의 다른 도시들도 앞으로 가능성이 있으니 계속 도전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창은 과거가 됐다. 이제 약 반 년 후면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개최가 코앞이다. 박 전 회장은 “무엇보다 4년을 기다리며 훈련을 해온 우리 선수들이 빛나는 올림픽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한국에서도 계속 올림픽을 향한 열정의 불꽃이 타오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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