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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 공동입장 만들어낸 바흐 … 오늘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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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일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열리는 ‘평창 회의’를 앞두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 제재 조치를 설명중인 바흐 위원장. [AP=연합뉴스]

20일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열리는 ‘평창 회의’를 앞두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의 올림픽 출전 제재 조치를 설명중인 바흐 위원장. [AP=연합뉴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던 순간이다. 이를 성사시킨 숨은 공신이 바흐였다. 그는 2014년 본지 인터뷰에서 “IOC 위원 자격으로 서울·평양을 비공개로 오가며 물밑 협상을 했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조마조마했는데 막상 입장하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났다”고 회고했다.

IOC, 오늘 북한 평창 참가 최종 결정 #당시 물밑 교섭 주역 … “눈물 났다” #이번엔 IOC위원장으로 전권 쥐어 #남북 합의안에 “환영” 관심 표명도 #일각선 “바흐, 화합 위해 뭐든 할 것”

시드니로부터 18년이 흐른 지금, 그는 남북 화합의 또 다른 역사를 쓸 준비를 마쳤다. 이번엔 세계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IOC 위원장으로서다.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20일 오전 9시30분(현지시간) 시작하는 일명 ‘평창 회의’를 주재한다. 다음달 9일 개막하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IOC에 있다.

바흐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남북 양측이 협의해 온 사항에 대해 듣고 결론을 낼 예정이다. IOC는 “회의 후 바흐 위원장이 직접 성명서(statement)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엔트리가 어떻게 될지,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할 수 있을지 등을 결정할 그의 입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날 회의 진행 양상을 보면 바흐 위원장이 직접 키를 잡고 판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먼저 IOC의 의사결정기구인 ‘EB’, 즉 집행위원회(Executive Board)의 별도 의결 과정이 생략됐다. 절차적 보수성을 중시하는 IOC로선 파격이다. 이에 대해 IOC 마크 애덤스 대변인은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번엔 EB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위원장에게) 전권(full authority)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회의는 토요일인 20일 열린다. IOC가 토요일에 회의를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세계 스포츠계 수장인 바흐 위원장의 스케줄표는 수년 후까지 빼곡히 차 있다. 바흐 위원장이 빼곡한 일정 속에도 빠른 결정을 위해 선택한 게 토요일이라고 IOC 관계자들이 전했다.

바흐 위원장은 지난 9일 남북이 북한의 평창 참가 원칙에 합의하자 다음날 곧바로 “환영한다. 이는 올림픽 정신(Olympic spirit)에 입각한 위대한 발자국”이라며 “이제 IOC가 정치적 약속들을 현실로 만들어낼 차례”란 입장을 낼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결정은 남북 화합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전향적으로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IOC는 표면적으론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다. 애덤스 대변인은 본지에 “(단일팀 구성 등) 여러 흥미로운(interesting) 제안을 받았고, 20일 회의에서 신중히 평가할 계획”이라며 “특히 다른 참가국 선수들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IOC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바흐 위원장은 평창에서의 남북 화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바흐 위원장은 펜싱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22세였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프뢰레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변에선 그가 유난히 승부욕이 강하다고 한다. 30~40대엔 사업가이자 법조인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IOC에 입성한 뒤엔 노련함과 적극성으로 존재감을 높이며 ‘준비된 2인자’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201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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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과 그는 처음엔 악연으로 시작했다. 평창이 두 번의 유치 실패 끝에 2011년 삼수에 도전했을 때 경쟁 도시는 독일의 뮌헨이었는데, 그 유치위원회의 리더가 바흐였다. 평창은 63표 대 25표로 압승을 거두며 바흐에게 수모를 안겼다. 하지만 바흐 위원장은 ‘품격 있는 패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더 큰 목표를 갖고 멀리 내다봤기 때문이다. 바로 2년 남은 2013년 IOC 위원장 선거였다.

바흐 위원장은 야심이 커 주변에 적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원장 5년차인 그에게 IOC 내부 불협화음을 해소하는 게 최대 과제란 말이 나온다. 또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에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을 눈감아줬다는 의혹은 갈수록 논란을 키우고 있다.

IOC 사정에 밝은 국내 한 인사는 “2021년 재선을 위한 선거에 나서야 하는 바흐 위원장에게 평창 겨울올림픽은 다른 악재를 덮을 수 있는 호재 중의 호재”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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