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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갯벌 세계유산 됐는데···'세계 5대' 강화갯벌 왜 빠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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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순천만 갯벌. 학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순천만 갯벌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손민호 기자

전남 순천 순천만 갯벌. 학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순천만 갯벌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손민호 기자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놀라운 성과다. 갯벌 이전에 우리나라엔 세계유산이 모두 열네 개 있었다. 이 중에서 자연유산은 제주도(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딱 하나였다. 제주도야 세계가 알아주는 천하 절경이니 당연한 감도 있는데, 이 흔해 빠진 갯벌이라니.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너무 익숙하면, 그 가치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잊을 때가 있다(7월 30일 페이스북)”고 말한 것도 ‘흔하지만 소중한’ 갯벌의 가치를 강조한 축하 인사였다.

7월 26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은 모두 네 곳이다. 전남 신안, 전북 고창, 충남 서천, 전남 보성·순천. 이 중에서 전남 보성·순천 갯벌을 제외하면 모두 서해안 갯벌이다. 우리나라 해안엔 이들 네 개 지역 말고도 갯벌이 널렸다. 그런데 왜 이 네 개 갯벌만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세계유산위원회 선정 이유)”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을까. 왜 다른 지역의 갯벌은 세계유산이 못 됐을까.

갯벌 절반이 세계유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전국 갯벌 네 곳. 그래픽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전국 갯벌 네 곳. 그래픽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

우리나라 갯벌의 면적은 2489.4㎢이다.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약 2.4%를 갯벌이 차지한다. 갯벌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 몰려 있다. 전체 갯벌 면적의 약 83%인 1980㎢가 서해안에 있고, 나머지 409.4㎢가 남해안에 있다. 2010년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될 때 이름이 ‘서남해안 갯벌’이었던 까닭이다. 재단법인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이하 갯벌 추진단)’은 2014년부터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로 이름을 바꿔 등재를 추진했고, 마침내 7월 이 이름으로 세계유산이 됐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오른 갯벌 면적은 1284.11㎢이다. 다시 말하지만, 놀라운 성과다. 우리나라 갯벌의 절반 이상(51.58%)이 세계유산이라는 뜻이자, 남한 영토의 1.2% 이상이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이란 뜻이어서다. 긴 세월 찬밥 신세였던 갯벌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자연환경 국가 지위에 올랐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갯벌의 85.7%가 전남 신안군에 있다. 사진은 압해도 갯벌의 노둣길 풍경. 물이 빠지면 길이 드러나고 물이 들어오면 길이 사라진다. 손민호 기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갯벌의 85.7%가 전남 신안군에 있다. 사진은 압해도 갯벌의 노둣길 풍경. 물이 빠지면 길이 드러나고 물이 들어오면 길이 사라진다. 손민호 기자

갯벌 세계유산은 더 넓어지고 커질 참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2025년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까지 유산 구역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갯벌 추진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서너 개 자치단체가 유산 추가 등재를 신청했다. 2025년이면 전국 갯벌의 70%가, 남한 영토의 2%가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혹여 오해가 있을까 싶어 밝힌다. 갯벌이 세계유산이 돼도 갯벌에 기대어 사는 주민의 일상은 달라지는 게 없다. 타격을 입는다면 개발 업자고, 불편해진다면 행정 당국이다.

세계유산의 85.7%를 거느린 고장

드론으로 촬영한 전남 신안 압해도 대천리 갯벌. 진흙 갯벌에 모래가 쌓였다. 갯벌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물골 너머로 가두리 양식장과 김 양식장이, 그 너머로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보인다. 갯벌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공간이다. 손민호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전남 신안 압해도 대천리 갯벌. 진흙 갯벌에 모래가 쌓였다. 갯벌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물골 너머로 가두리 양식장과 김 양식장이, 그 너머로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보인다. 갯벌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사는 공간이다. 손민호 기자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갯벌 중에서 85.7%에 달하는 1100.86㎢가 전남 신안군에 있다. 신안군에는 모두 14개 읍·면이 있는데, 이 중에서 13개 읍·면의 갯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흑산면만 세계유산에서 빠졌다. 지정 면적만 보면 한국의 갯벌 유산은 ‘신안 갯벌과 기타 갯벌’로 명명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신안군은 갯벌 유산 등재 추진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자치단체이자 가장 주도적으로 벌인 자치단체다.

“2003년 5월 전남대 지질학과 전승수 교수와 개인적으로 갯벌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신안군 차원에서 타당성 조사 같은 갯벌 사업을 추진한 건 2007년이고요. 처음엔 신안 갯벌만 등재를 추진했었는데, 문화재청이 다른 갯벌도 포함하는 게 좋겠다고 해 대상을 확장했습니다. 2010년 다른 5개 지역과 함께 잠재목록에 등재됐고, 2015년 지금의 네 개 지역으로 확정됐습니다. 전국 자치단체 중에 세계유산과가 있는 건 신안군이 유일합니다.”

갯벌은 해양 생태계의 보고다. 전남 신안 증도 갯벌의 짱뚱어. 김경빈 기자

갯벌은 해양 생태계의 보고다. 전남 신안 증도 갯벌의 짱뚱어. 김경빈 기자

신안군청 고경남(56) 세계유산과장의 설명이다. 고 과장은 갯벌 유산 등재 사업의 산증인이다. 24년 공무원 생활 중 18년을 갯벌 등재 추진 업무를 맡았다. 고 과장은 “세계유산위원회가 가장 높이 평가한 갯벌의 가치가 생물 다양성”이라며 “가령 우리 갯벌이 없으면 수많은 철새가 중간 기착지를 잃어 멸종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안 갯벌에는 김·미역·다시마 같은 해조류 144종, 조개·새우·게 같은 대형저서동물 568종이 서식한다. 신안 갯벌에 사는 해조류와 대형저서동물의 종 다양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철새 낙원

충남 서천 유부도에서 촬영한 알락꼬리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는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기종(EN 등급)의 희귀종이다. 유부도를 중심으로 한 서천 갯벌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중앙포토

충남 서천 유부도에서 촬영한 알락꼬리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는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기종(EN 등급)의 희귀종이다. 유부도를 중심으로 한 서천 갯벌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중앙포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갯벌은 하나같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철새 중간 기착지’다. 특히 서천 갯벌에선 세계적인 희귀종 넓적부리도요가 관찰된다. 넓적부리도요는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적색목록 멸종위급종(CR 등급) 동물이다. 야생동물 중에서 멸종 가능성이 가장 큰 동물이 CR(Critically Endangered) 등급에 속한다. 넓적부리도요는 전 세계에서 300여 쌍만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넓적부리도요의 국내 최대 서식지가 서천 갯벌의 중심을 이루는 유부도다.

유부도에서 촬영한 넓적부리도요. 넓적부리도요는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급종(CR 등급) 동물이다. 야생생활을 하는 동물 중에서 멸종 가능성이 가장 큰 동물이 CR 등급에 속한다. 중앙포토

유부도에서 촬영한 넓적부리도요. 넓적부리도요는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급종(CR 등급) 동물이다. 야생생활을 하는 동물 중에서 멸종 가능성이 가장 큰 동물이 CR 등급에 속한다. 중앙포토

유부도는 작은 섬이다. 0.77㎢ 면적으로, 여의도의 4분의 1 크기다. 주민 80여 명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정기 여객선이 없어 어선을 얻어 타야 들어갈 수 있다. 유부도는 진즉부터 국내 탐조 관광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2013년 환경부가 전국 12대 생태관광지로 지정했고, 이듬해엔 유부도를 포함한 서천 갯벌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중앙일보는 2014년 11월 유부도에서 닷새를 머무르며 겨울 철새를 관찰했고, 끝내 넓적부리도요 촬영에 성공했다.

전남 순천 순천만 갯벌. 손민호 기자

전남 순천 순천만 갯벌. 손민호 기자

보성·순천 갯벌은 그 유명한 순천만 갯벌을 아우른다. 순천만 갈대밭 어귀 여자만 일대 갯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이 갯벌에서 벌교 꼬막이 올라온다. 익히 알려졌듯이 순천만은 흑두루미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한해에 4596마리나 관찰된 적도 있다. 흑두루미는 IUCN 적색목록 취약종(VU 등급)에 속한다. 고창 갯벌은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기종(EN 등급) 황새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서천 갯벌과 보성·순천 갯벌은 개발 위기를 극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천 갯벌은 장항 국가산업단지 건설사업이 추진되면 매립될 예정이었으며, 순천만 갯벌도 주변 농지 홍수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매립될 뻔했다.

세계유산에서 빠진 세계 5대 갯벌

인천 강화도 동막 갯벌. 대표적인 진흙 갯벌로 육지에서 최대 6㎞까지 갯벌이 펼쳐진다. 세계 5대 갯벌로 통했던 동막 갯벌이 이번 세계유산 등재에서 빠졌다. 손민호 기자

인천 강화도 동막 갯벌. 대표적인 진흙 갯벌로 육지에서 최대 6㎞까지 갯벌이 펼쳐진다. 세계 5대 갯벌로 통했던 동막 갯벌이 이번 세계유산 등재에서 빠졌다. 손민호 기자

‘강화도 남단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의 하나로 전체 면적은 약 353㎢에 달하며, 특히 여차리∼동막리∼동검리를 잇는 남단 갯벌은 육지로부터 최대 약 6㎞, 면적은 약 90㎢로 강화 갯벌 면적의 약 25%를 차지하며,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되었다.’

인천 강화갯벌센터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강화도 동막 갯벌 설명이다. 생태 관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동막 갯벌이 흔히 세계 5대 갯벌로 불렸던 걸 기억할 테다. 그리고 한국 갯벌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 갯벌이 세계유산 목록에서 빠진 사연이 궁금했을 테다. 익명을 요구한 갯벌 추진단 간부는 “인천시와 강화군 모두 유산 등재에 부정적이었다”며 “자치단체가 갯벌 보전으로 인한 이익보다 개발로 인한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경기도의 갯벌 면적은 838.5㎢로 우리나라 갯벌 면적의 35%를 차지한다. 특히 강화도와 영종도 남쪽 해안은 국제조류보호회의(ICBP)가 지정한 철새 주요 서식지다.

전북 부안 줄포생태공원의 칠면초 군락. 줄포생태공원이 들어선 곰소만의 남쪽 해안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갯벌이다. 같은 갯벌을 보유했으면서도 부안은 이번 유산 등재에서 빠졌다. 손민호 기자

전북 부안 줄포생태공원의 칠면초 군락. 줄포생태공원이 들어선 곰소만의 남쪽 해안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갯벌이다. 같은 갯벌을 보유했으면서도 부안은 이번 유산 등재에서 빠졌다. 손민호 기자

동막 갯벌 말고도 세계유산에서 빠진 갯벌이 눈에 밟힌다. 신안 갯벌 북쪽은 무안 갯벌과 닿아있으며 영광 갯벌까지 이어진다. 보성·순천 갯벌도 고흥 동쪽 갯벌과 연결되고, 서천 갯벌의 중심 유부도는 서천항보다 군산항이 훨씬 가깝다. 그러나 무안, 영광, 고흥, 군산 모두 이번 목록에서 빠졌다. 전북 부안이 안 보이는 것도 아쉽다. 고창 갯벌은 곰소만 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데, 곰소만 북쪽 해안이 부안 땅이다. 곰소염전, 곰소젓갈, 줄포생태공원 등 곰소만의 관광 브랜드는 오히려 부안이 우세하다. 무안과 부안 모두 2010년 잠재목록에는 들어가 있었다. 갯벌 추진단 유창형 팀장은 “지역마다 사정이 복잡하다”며 “이번에 빠진 갯벌들이 추가 등재할 때 참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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