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뿌루·각흘도 아시나요…여름 끝자락서 만난 ’추억의 섬‘

중앙일보

입력 2021.08.26 05:00

인천 섬 여행③ 덕적도 

덕적도 밧지름 해변. 물이 빠지자 모래 갯벌이 훤히 드러났다. 이 넓은 해변에 사람은 드물었다. 동남아의 어느 휴양지에 온 것 같았다.

덕적도 밧지름 해변. 물이 빠지자 모래 갯벌이 훤히 드러났다. 이 넓은 해변에 사람은 드물었다. 동남아의 어느 휴양지에 온 것 같았다.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인천항에서 뱃길로 1시간, 육지와 차단된 섬은 다른 세상 같았다. 때뿌루해변·각흘도 같은 이국적인 지명에 괜히 기분이 들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을 홀로 거닐 땐 드넓은 바다가 내 방처럼 편안했다. 콧등을 간질이는 바닷바람,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모래알, 이따금 발목을 적시고 가는 바닷물. 모두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 같았다.

여름 끝자락, 덕적도를 다녀왔다. 덕적도는 나 홀로 여행에 맞춤한 섬이었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여도 나무랄 데 없지만, 이왕이면 혼자가 더 좋을 듯했다. 한적하고 오붓한데, 낙도는 아니어서 혼자 다녀도 불편하거나 위험하지 않았다. SNS에서 ‘덕적도 차박’이 왜 이리 자주 띄는지 알 수 있었다.

관련기사

추억의 섬

덕적도 밧지름 해변. 해변이 평평해 물이 빠지면 거대한 갯벌이 드러난다.

덕적도 밧지름 해변. 해변이 평평해 물이 빠지면 거대한 갯벌이 드러난다.

덕적도는 큰 섬이다. 인천광역시에 속한 168개 섬 중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크다. 덕적도가 크다는 건, 단순히 면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덕적도는 자월도, 문갑도, 승봉도, 대이작도, 굴업도 등 이른바 근해 도서의 중심이 되는 섬이다. 덕적도 너머 문갑도, 굴업도, 백아도, 지도, 울도를 들어가려면 덕적도에 들어왔다가 배를 갈아타야 한다.

덕적도는 역사가 오랜 섬이다. 백제 시대 중국과의 해상 통로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신라의 부름을 받은 당나라 군대가 덕적도에 먼저 상륙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덕적도와 다리로 연결된 소야도(蘇爺島)가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민어 파시로 유명했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덕적도는 서해에서 가장 흥청거리던 섬이었다. 민어 배가 들어오던 북리항에만 한때 1만50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술집이고, 다방이고 없는 게 없었다. 극장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 옛날얘기다. 이제는 덕적도를 다 합쳐도 주민이 2000명이 안 된다.

덕적도의 대표 명소 서포리해수욕장.

덕적도의 대표 명소 서포리해수욕장.

“10년 전만 해도 여름 성수기면 덕적도 하루 입도객이 2000명이 넘었어요. 배가 하루에 8편씩 들어왔으니까요. 육지와 가까운 데다 섬이 넓고 해수욕장이 많으니 인기가 높았지요. 코로나 사태 전에는 500명 정도로 줄었고요. 올여름은 하루 100명도 안 들어옵니다.”

인천 섬 전문 여행사 ‘섬투어’의 현숭덕(51) 실장이 긴 한숨을 뱉었다. 현 실장의 말마따나 섬은 인적이 드물다 못해 휑했다. 해수욕장도, 야영장도, 민박집도, 식당도 많았지만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모진 해석일 수 있겠으나, 외려 한적한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해변과 바다

서포리 해변 해송숲길. 수령 200년이 넘은 해송이 기다란 숲을 이루고 있다.

서포리 해변 해송숲길. 수령 200년이 넘은 해송이 기다란 숲을 이루고 있다.

덕적도는 이름난 해변이 많다. 가장 유명한 해변이 섬 남쪽의 서포리해변이다. 약 1㎢(30만평) 면적의 백사장이 펼쳐진 덕적도 최고 명소로,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백사장 어귀에는 해송숲이 있다. 수령 200년이 넘는 노송 수백 그루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강릉 해송숲길 못지않게 분위기가 그윽하다.

덕적도와 소야도는 다리로 연결돼 있어 쉽게 가볼 수 있다. 사진은 소야도의 대표 해수욕장 때뿌루해변. 물 빠진 해변을 걸어 한참을 들어가야 바다가 나온다. 해루질을 할 수 있는 해변이다.

덕적도와 소야도는 다리로 연결돼 있어 쉽게 가볼 수 있다. 사진은 소야도의 대표 해수욕장 때뿌루해변. 물 빠진 해변을 걸어 한참을 들어가야 바다가 나온다. 해루질을 할 수 있는 해변이다.

덕적도 해변은 대체로 널찍하고 평평하다. 물 빠진 시각 해변에 들어서면 바다가 안 보일 정도로 갯벌이 드러난다. 서포리해변 다음으로 유명한 밧지름해변에서도, 소야도의 대표 해수욕장 때뿌루해변에서도 허허벌판처럼 펼쳐진 갯벌을 혼자 거닐었다. 호미만 있으면 조개 따위를 양동이 한가득 캘 수도 있었다. 진말해변, 밧지름해변, 소재해변, 이개해변 모두 갯벌 체험이 가능하다. ‘때뿌루’라는 이 괴이쩍은 지명은 설명이 필요하겠다. 때뿌루, 떼뿌루, 떼뿌리 등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덕적도의 개인택시 기사 장문선(65)씨에 따르면 “때뿌루는 보리수 열매의 사투리”다. 해변을 에운 산에 아직도 보리수가 많단다.

덕적도 앞바다는 대표적인 우럭 어장이다. 우럭을 잡으러 낚시 배를 빌렸다. 낚시 배는 덕적도 아래 문갑도와 굴업도 사이 작은 섬 주변을 배회했다. 덕적도 우럭은 초보 낚시꾼이 던진 미끼도 덥석 잘 물었다.

덕적도 앞바다는 대표적인 우럭 어장이다. 우럭을 잡으러 낚시 배를 빌렸다. 낚시 배는 덕적도 아래 문갑도와 굴업도 사이 작은 섬 주변을 배회했다. 덕적도 우럭은 초보 낚시꾼이 던진 미끼도 덥석 잘 물었다.

섬을 제대로 즐기려면 역시 바다로 나가야 한다. 큰맘 먹고 낚시 배를 빌렸다. 덕적도 바다는, 낚시광은 다 아는 우럭 어장이다. 김남훈(56) 선장의 5톤급 어선 ‘노블레스호’를 6시간 빌렸는데, 낚시도 하고 주변 섬도 둘러보고 선미도도 들어갔다 왔다. 낚시와 섬 여행을 겸한 뱃놀이였다. 가도 근처에선 곰바위를 보러 일부러 배가 멈췄다. 코끼리나 사자를 닮은 바위는 본 적 있어도 곰 닮은 바위는 처음 봤다. 정말 똑같아 깜짝 놀랐다.

덕적도 앞바다 가도 근처 무인도에 있는 곰바위.

덕적도 앞바다 가도 근처 무인도에 있는 곰바위.

노블리스호는 선미도 선착장에 다다랐다. 선미도는 덕적도 북쪽 능동자갈마당에서 500m 떨어진 무인도다. 선미도(善尾島)라는 이름이 덕적도의 예쁜 꼬리라는 뜻이다. 선미도는 정기 여객선이 없다. 하여 상륙하려면 이렇게 낚시 배를 빌려야 한다.

선미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인도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1290㎡ 면적의 선미도는 전국 2876개 무인도 중에서 가장 크다. 선미도 북쪽 언덕의 선미도등대도 명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등대이어서다. 해수면으로부터 223m 해안절벽 위에 19.4m 높이 등대가 서 있다. 37㎞ 떨어진 바다에서도 선미도등대 불빛이 보인다고 한다. 선미도등대는 12초에 한 번씩 깜빡인다. 선미도등대에는 현재 등대지기(정식 명칭은 항로표지관리원) 세 명이 교대로 근무 중이다. 조만간 무인 등대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선미도등대. 선미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등대다.

선미도등대. 선미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등대다.

호박회관

여느 서해 섬과 달리 덕적도는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숙박시설도 많거니와, 섬 구석구석을 도는 버스는 물론이고 관광객을 위한 택시도 있다. 택시는 모두 두 대 있는데, 1시간 30분이면 섬을 한 바퀴 돈다. 덕적도에는 하루 최소 세 번 배가 들어간다. 인천항에서 쾌속선이 오전과 오후에 들어가고, 대부도에서 차를 실을 수 있는 차도선이 하루 한 번(주말엔 두 번) 들어간다. 덕적도 차박을 계획한다면 대부도에서 차도선을 타야 한다.

덕적도 앞바다에서 우럭 낚시를 하는 모습. 초보 낚시꾼이었지만 두어 시간 만에 여남은 마리가 올라왔다.

덕적도 앞바다에서 우럭 낚시를 하는 모습. 초보 낚시꾼이었지만 두어 시간 만에 여남은 마리가 올라왔다.

덕적도를 대표하는 음식은 우럭이다. 갯바위 낚시에서도 올라올 만큼 우럭이 흔하다. 덕적도에선 우럭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데, 말린 우럭을 푹 고는 건작탕이 특히 유명하다. 여름에는 우럭을 말리지 못하고 갓 잡은 우럭을 백숙처럼 끓여서 낸다. 호박 같은 채소를 넣고 끓이는데, 뽀얀 국물이 진국이다. 꽃게, 간자미, 바지락도 흔하다.

덕적도의 신흥 명소 '북적부적 호박회관'. 마을 주민이 주주로 참여한 농업회사법인이다. 덕적도 주민이 덕적도 호박으로 빵을 만들어 판다. 동네 사랑방처럼 분위기가 훈훈했다.

덕적도의 신흥 명소 '북적부적 호박회관'. 마을 주민이 주주로 참여한 농업회사법인이다. 덕적도 주민이 덕적도 호박으로 빵을 만들어 판다. 동네 사랑방처럼 분위기가 훈훈했다.

한 집은 꼭 소개해야겠다. ‘북적북적 호박회관’이라고, 덕적면 진1리 마을회관 자리에 들어선 빵집이다. 여느 동네 빵집과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가 남다르다. 덕적도 호박으로 빵을 만드는 농업회사법인이다. 이현주(51) 대표는 ”그냥 호박이 아니라 흠이 나서 팔지 못하는 파지 호박만 쓴다“며 ”마을 주민 33명이 주민 주주로 참여한 주식회사“라고 소개했다.

호박회관은 호박 빵 만들기 체험도 운영한다. 직접 만들어본 오픈 찰떡. 단호박이 들어가 맛이 달다.

호박회관은 호박 빵 만들기 체험도 운영한다. 직접 만들어본 오픈 찰떡. 단호박이 들어가 맛이 달다.

호박회관은 2018년 5월 문을 열었다. 첫해 3800만원 매출을 찍었고, 2019년 이후에는 매해 60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직원도 마을 주민만 쓴다. 현재 이 대표를 포함해 주민 4명이 일하고 있다. 인천관광공사 민민홍 사장은 “덕적도 호박회관은 인천 섬에서 처음 시도한 6차 산업의 성공 사례로, 지역 주민이 특산물을 활용해 수익을 올리고 고용을 창출한다”고 말했다. 대표 메뉴는 오븐 찰떡과 단호박 식혜다. 모두 단호박이 들어가 달큼하다. 호박 빵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덕적도지도

덕적도지도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