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사가 설마…세금이니까 '2000억 펑크' 별 거 아닌가요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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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사회2팀장의 픽 : 국민 돈은 공돈, 공약은 ‘空約’

지난주 이재명 경기지사가 추진하는 ‘전 도민 재난지원금’ 예산이 약 2000억원 더 들어간다는 후배 기자의 보고를 받고 귀를 의심했습니다. 후배 기자가 착각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사 의욕이 앞서면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차분히 검산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대권을 바라보는 현직 경기지사가, 정부의 정책과 차별화하면서,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벌인 일인데, 설마….

그런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소득 하위 88%에 지급하는 정부의 5차 재난지원금(1인당 25만원)을 받지 못하는 경기도민에게도 지원금을 줘서 모든 도민이 받게 하겠다는 자신만만한 약속은 산수부터 틀렸습니다. 정부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소득 상위 12%에 해당하는 경기도민이 전체의 18%라는 게 행정안전부의 분석 결과였고, 경기도는 당초 예산 419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약 2000억원을 더 늘려 추가 경정 예산안을 수정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8월 13일 경기도청에서 '전 도민 제3차 재난기본소득 지급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8월 13일 경기도청에서 '전 도민 제3차 재난기본소득 지급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6000억원 더 넘게 드는 일을 4000억원만 있으면 된다고 계산하고 추진한 겁니다. 물론, 행정안전부의 정확한 집계가 늦게 나왔다는 이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속셈학원 다니는 삼척동자들이나 할 얘기입니다. 경기도에 소득 상위자가 더 많다는 걸 몰랐다고요? 1348만 경기도민의 세금을 다루는 사람들이 할 변명은 아닙니다.

경기도의회 야당과 민주당 내 ‘반이재명계’ 의원들 사이에선 “이 지사가 치적을 쌓기 위해 졸속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3차 추경 예산안을 급히 늘렸는데, 예산 총액이 37조 원대니까 2000억원 늘려봐야 0.5% 조금 더 느는 수준입니다. 크게 티가 안 나서 다행입니다.

지난해 5월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5월 민주당 최고위원들이 긴급재난지원금 기부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왠지 낯익은 풍경입니다. 지난해 5월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때를 기억하시나요. 정부는 소득 하위 50%를 지급 기준으로 제시했다가 여당 반발로 70%로 수정했고, 다시 전 국민 지급안으로 급선회했습니다. 결국 모든 국민이 재난지원금을 받았습니다. 국민 50%, 70%를 나눴을 때의 정치적 이해타산에 정책은 오락가락했습니다.

당시 결사반대하던 경제 부총리의 걱정은 ‘재난지원금 기부’ 등으로 대충 무마됐던 것 같습니다. 정부는 14조2448억원을 재난기부금으로 편성해 이의 10~20%(1조4000억~2조8000억원)의 기부금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여 뒤 기부금은 수백억 원 수준이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세금은 ‘공돈’이요, 공약은 ‘空約’이라는 진리를 매번 재확인하게 됩니다. 대선 후보들의 경선이 시작되면서 그 ‘허언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모습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광화문대통령 국정과제.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광화문대통령 국정과제.

문득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파기 발표가 떠오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며 내세웠던 청와대 이전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김의겸 대변인을 통해 문 대통령은 “경제가 아주 엄중하다고 하는 이 시기에 많은 리모델링 비용을 사용하고, 이전하게 되면 또 그로 인한 행정상의 불편이나 혼란도 상당 기간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다 감수하고서라도 굳이 이전을 꼭 할 만큼 그것이 우선순위가 있는 그런 과제냐는 점에 대해서 국민께서 과연 공감해 주실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약 포기 사유는 설득력이 있지만, 불과 2년 전 대통령이 되기 전엔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것인지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지금 돌이켜 보면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은 문 대통령이 내건 것 중에 가장 쉬운 일이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잡고, 남북 평화 시대를 열고, 국민을 통합한다는 그 많은 약속의 현주소를 생각하면 말이죠.

이재명 지사뿐만 아니라 대권에 도전하는 모든 후보께 부탁드립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상누각(沙上樓閣)’ 공약, 사절입니다. 그에 따른 수리비, 재건축비, 이사 비용 다 국민이 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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