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검문소 뚫은 'IS 폭탄조끼'…탈레반 "공항 치안 美책임"

중앙일보

입력 2021.08.27 13:25

업데이트 2021.08.28 01:12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가뜩이나 철군 시한(8월31일)에 쫓기는 미군과 미국 정부가 곤경에 빠졌다.

두 차례 폭발로 미군 13명과 아프간 민간인 등을 포함, 최소 103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2월 이후 아프간에서 미군 사망자가 나온 것은 처음이며, 사망자 숫자로는 최근 10년 내 가장 많은 수준이다. 남은 나흘간 추가 테러 가능성도 우려된다.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인해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카불 시내의 한 병원에 도착한 모습.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인해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카불 시내의 한 병원에 도착한 모습. [AFP=연합뉴스]

BBC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슬람 국가 호라산(IS-K, Islamic State Khorasan)이 카불 공항 인근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25일 카불 공항의 애비 게이트, 동쪽 게이트, 북쪽 게이트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 "즉시 떠나라"고 통보했다. 영국, 호주 등 주요 서방 국가들도 자국민들에게 테러 위협이 있다며 카불 공항으로 이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바로 이 특정장소 가운데 한곳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

네스 맥켄지 미국 중부사령관은 26일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카불공항 출입문 '애비 게이트'와 근처 배런호텔 앞에서 테러조직 이슬람 국가(IS) 소속 자살 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렸다"고 밝혔다. 이어 IS도 선전 매체인 아마크 통신을 통해 자신들이 이번 공격의 주체라고 선언했다. IS는 조직원이 모든 보안시설을 뚫고 미군에 5m 이내까지 접근해 폭발물이 장착된 조끼를 터뜨렸다고 설명했다.

카불 시내에서 테러가 발생한 애비게이트까지 접근하려면 탈레반과 아프간군 등이 운영하는 검문소를 여러 곳 거쳐야 한다. 폭탄조끼를 입은 테러범이 모든 검문소를 통과해 애비게이트에 접근하기까지 ‘보안 구멍’이 확인된 것이다.

이와 관련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수석대변인은 이날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공항 인접 지역 치안책임은 미국인들에게 있고 우린 거기 없다"면서 "불행히도 공항은 탈레반 통제범위에서 벗어났다"라고 주장했다. 테러 발생을 막지 못한 책임을 미군에게 전가하는 발언이다.

카불국제공항 폭탄 테러 발생 지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카불국제공항 폭탄 테러 발생 지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탈레반 측도 이번 테러로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 27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테러로 숨진 아프간인 60명 가운데 28명이 탈레반 대원"이라고 탈레반 측이 밝혔다. 이들은 "8월 31일로 정해진 외국군 철수 '데드라인'을 연장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도 되풀이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과의 화상회의에서 '철군 시한을 연장해달라'는 동맹국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31일까지 무조건 떠나라”는 탈레반 측의 '레드라인' 압박에다 'IS 테러' 가능성이 감지되면서 불가피한 판단이라는 게 미국 측 설명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요 동맹국과의 정보 협조가 부실하지 않았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아프간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감지한 정보를 정보당국이 분석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외교적 접근을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가 그들의 리더십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26일(현지시간) 카불공항 테러와 관련해 기자 질문을 듣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카불공항 테러와 관련해 기자 질문을 듣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당장의 문제는 IS가 카불 공항 인근에서 추가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다. 맥켄지 사령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IS의 위협은 실재(real)한다"면서 "공항을 겨냥한 로켓 공격, 차량 폭탄 공격, 등 IS의 추가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과도 협력하고 있다"며 "공항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탈레반 지휘관들에게 연락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현재 카불 현지에 남아있는 미국인의 숫자가 약 1000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미국 대사관 현지 직원 등 특별 이민 자격을 갖춘 아프간인들이 대피를 기다리고 있다.

주요 서방국가들은 철수 시한인 31일까지 구출 작전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긴급 안보회의를 열어 철군 시한 마지막까지 구출 작전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자국으로 수백명을 더 이송해야 한다며 "매우 긴박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이미 대피 작전 중단을 발표한 국가도 있다. 캐나다, 벨기에,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등은 이날 아프간 대피 항공편의 운항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카불국제공항 폭탄 테러 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카불국제공항 폭탄 테러 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캐나다군의 웨인 아이어 합참의장 대행은 이날 아프가니스탄 탈출 작전을 펴온 카불 현지의 캐나다 군용기가 마지막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고 일간 글로브앤드메일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미국이 오는 31일 철수 시한 마감을 앞두고 미군 병력 5800명 이송을 위한 공항 활주로 확보가 필요한 데다 IS 등 적대 세력의 테러 위험이 고조됐다면서다. 지금까지 캐나다 정부는 현지 난민 8000여 명으로부터 이주 신청을 받아 이들 중 3700여 명을 카불 공항을 통해 이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테러 배후를 자처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오래전부터 탈레반과 대립각을 세워온 세력이다. 이들은 20년 만에 아프간에서 재집권한 탈레반이 미군의 아프간 철수에 순순히 협조한다며 불만을 표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이번 “테러에 아프간을 장악하고 있는 탈레반이 연관됐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일각에서 제기된 ‘탈레반 공모설’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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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인근 테러를 다룬 해당 기사에서 소셜미디어 갈무리 영상 중 일부가 카불 테러 관련 폭발 장면인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삭제‧수정했습니다. 신속하고도 정확한 보도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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