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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때리지만 말아주오" 55세男에 9살 딸 판 아빠의 비극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바드기스주에서 작은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55세의 코반. 이 지역 재력가로 알려졌지만, 결혼식은 단출했다. “우리 아이를 잘 부탁한다. 이제 당신이 내 딸을 책임져야 한다. 부디 때리지 말아달라”. 신부 아버지의 당부가 전부였다. 그 말을 들은 신부는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이날 코반의 아내가 된 파르와나 마릭은 올해 겨우 9살이다. 신랑·신부의 나이 차는 무려 46년. 이날 파르와나는 돈에 팔려갔다.

아프가니스탄의 한 실향민 난민촌에서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23세 남성과 조혼한 어린 소녀 아쉬오.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한 실향민 난민촌에서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23세 남성과 조혼한 어린 소녀 아쉬오. [AF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CNN이 공개한 아프간 소녀의 조혼 현장이다. CNN은 탈레반 점령 이후 급격히 악화한 경제난에 어린 소녀를 돈을 받고 결혼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아프간은 15세 미만 어린이·청소년의 조혼을 법으로 금지한다. 하지만 난민촌과 시골에서 조혼은 생존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고 있다. 현재 이들에게는 법적 처벌보다 굶주림이 더 큰 공포다.

딸 파르와나를 시집 보낸 압둘 마릭도 그랬다. 4년째 난민촌에서 사는 그는 앞서 12살 큰 딸을 시집보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구걸도 했지만 생계가 막막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55세의 남성과의 결혼식 내내 울고 있는 파르와나 마릭(9, 오른쪽). [영상 캡처]

지난달 24일(현지시간) 55세의 남성과의 결혼식 내내 울고 있는 파르와나 마릭(9, 오른쪽). [영상 캡처]

파르와나를 조혼시키는 건 마지막 선택이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죄책감과 수치심, 딸에 대한 걱정으로 며칠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교사를 꿈꾸며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한 아이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머지 8명 가족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릭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결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파르와나를 보내던 날, 마릭은 코반으로부터 약 2200달러(258만 원)어치의 가축과 땅, 현금을 받았다. 남은 가족들이 몇 달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대신 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버티는 딸을 지켜보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몇 번이고 자리에 주저앉는 아이를 코반이 끌고 나갔다.

CNN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간 소녀들이 가난 때문에 돈에 팔려가고 있다며 경제난이 아프간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전했다.

결혼 뒤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9살 소녀 파르와나(동그라미)와 아이를 끌고 나서는 신랑 55세 남성(왼쪽). [영상캡처]

결혼 뒤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9살 소녀 파르와나(동그라미)와 아이를 끌고 나서는 신랑 55세 남성(왼쪽). [영상캡처]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에 따르면 올 한해 아프간에서 집을 잃고 실향민이 된 주민은 67만7000여명. 이들의 삶은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과 함께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제 사회의 원조 중단으로 사실상 국가 경제가 붕괴하면서다.

가장 극적인 어려움은 식량 위기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유엔(UN)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에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매일 배를 굶주리고 있다. 은행에 현금이 바닥나면서 노동자들은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피해는 어린이와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 5세 미만 어린이 300만 명 이상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소녀들은 학교가 아닌 결혼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시장에서 구두닦이로 돈을 벌고 있는 11세 소년.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카불 시장에서 구두닦이로 돈을 벌고 있는 11세 소년.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여성인권담당 헤더 바는 아프간의 상황을 “대격변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바에 따르면 팔려간 소녀들이 교육을 받거나 독립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건강과 안전도 불안정하다. 유엔 인구기금(UNFPA)에 따르면 강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15~19세 아프간 소녀가 약 10%에 달한다. 너무 어려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이들은 출산으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린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임신 관련 사망률은 20~24세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마우라와이 잘랄루딘 탈레반 정권 법무부 대변인은 이와 같은 조혼을 근절하기 위해 식량을 보급하겠으며 조혼 적발 시 투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보급할 식량도, 국제 사회의 개발 원조도 없다는 게 문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탈레반 통치 아래 여성의 교육과 인권,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하라고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탈레반 통치 아래 여성의 교육과 인권,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하라고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9월 유엔 회원국은 아프간에 10억 달러(약 1조1752억 원) 이상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 가운데 6억600만 달러만 당장 지원돼도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약속된 금액의 절반도 모금되지 않았고, 일부 회원국은 한 푼도 건네지 않았다고 UNOCHA는 지적했다.

탈레반이 보유 중인 구호 자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사벨 무사드 칼슨 UNOCHA 사무총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받는 건 빈곤한, 사회적으로 취약한, 그리고 그들의 어린 소녀들”이라며 “개발지원이나 유동성 현금 부족 사태가 길어질수록 기아 사망률과 조혼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겨울이 오기 전 국제 사회와 구호 단체의 도움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CNN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날이 추워질수록 마릭의 걱정도 더 깊어지고 있다. 지금은 파르와나를 보내고 받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굶주림은 되풀이된다. 마릭은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미래는 이미 파괴됐다”며 “재정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두 살배기 딸도 시집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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