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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86) 가을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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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가을연가
허형만(1946∼)
오늘도 세상의 숲속은 달빛 한 두름 고요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먼 별까지, 눈물겨운 사랑이여
세상의 깊은 그리움 흘러 흘러 적막입니다.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우주는 대답이 없다

가을이 온다. 여름이 매미 울음소리처럼 들끓었다면, 가을의 소리는 달빛 고요다. 가을은 사랑을 생각하는 계절이다. 그것도 지상에서 가장 먼 별까지 이르는 눈물겨운 사랑이다. 가을의 소리는 적막이다. 세상의 깊은 그리움,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이 와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위세는 그칠 줄을 모르고,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수도 카불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된 공항, 아이만이라도 탈출시키려는 부모들, 바구니에 담겨 홀로 남은 아기,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고 사살되는 여성, 눈을 가린 채 총탄 세례로 숨지는 경찰 책임자, 죽음의 공포에 떠는 통역 등 미군 조력자들. 그것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고통이다. 우리가 일찍이 겪었던, 베트남이 겪었던, 미얀마가 겪고 있는 공포와 살육의 지옥도가 저 가난한 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간 세상의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우주는 순환하고 우리는 또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 우주의 질서는 묵묵하다. 대답이 없다. 과거에도 그러했으며, 현재도 그러하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역사는 인간들이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