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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낙인"에 강원래도 떠났다…곡소리 퍼지는 이태원

중앙일보

입력

 1분기 매출액이 2019년보다 82% 폭락한 이태원의 거리. 뉴스1

1분기 매출액이 2019년보다 82% 폭락한 이태원의 거리. 뉴스1

"외국인 사라지니 방문객 발길 뚝"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7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모(46)씨는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줄어든 매출을 감당하지 못해 직원수를 줄였다. 이씨는 “10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대출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라며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이 커 차마 가게를 닫지는 못하고 11월에 코로나 집단면역이 형성된다는 희망만 가지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 주인 문모(59)씨는 “암담한 건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상권이 살아날 기미가 안보인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강씨는 “홍대나 건대처럼 대학을 끼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강남이나 종로처럼 기업들이 입주해있는 것도 아니어서 배후지가 뒷받쳐주지 못한다”며 “이미 죽은 시장이 소생하는 건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썰렁한 이태원 골목. 뉴스1

썰렁한 이태원 골목. 뉴스1

서울의 중심 번화가였던 이태원 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24일 오후 찾은 이태원은 한적하다 못해 황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거리에선 외국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임대 문의’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는 빈 상가나, 손님이 없어 가게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 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이태원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019년 같은 시기보다 82%나 폭락했다. 다른 주요 상권인 홍대(49%), 건대입구(48%), 강남역(41%) 등에 비해서도 유독 상황이 좋지 않다. 올해 2분기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31.9%로, 서울 평균 소규모 상가 공실률(6.5%)보다 5배가량 높다.

"정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유령도시 됐다" 울분

이태원이 침체기를 걷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용산 미군기지가 이전하면서 외국인 인구가 확 줄어들었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사라진 탓인지 방문객도 자취를 감췄다.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후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상가들이 급등한 임대료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난 것도 상권 침체에 한몫을 했다.

경리단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강모(60)씨는 “경리단길 열풍이 불었을 때 월 임대료가 150만원에서 300만원까지도 올라 상인들이 휘청할 수밖에 없었다”며 “특색있는 가게들이 밀려나니 젊은 사람들이 ‘와도 별 게 없구나’ 하고 실망해서 돌아간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태원 발(發)’ 낙인이 재해처럼 밀려왔다. 지난해 5월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후 정부와 언론 등에서 이태원발 집단감염으로 부르자 그나마 오던 손님들도 발길을 끊었다.

한때 이태원에서 펍스타일 바를 열었다가 폐업한 가수 강원래는 지난 1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태원발’이란 마녀사냥, 낙인 때문에 이태원 소상공인, 자영업자 전체가 피해도 보고 유령도시가 되었지만 우리는 더더욱 조심하며 집합금지, 영업제한, 시간제한, 하라는 대로 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태원 살리기' 용산구, 임대료 내리면 현금 지원

이태원 살리기 결의대회에 나선 성장현 용산구청장. 용산구 제공.

이태원 살리기 결의대회에 나선 성장현 용산구청장. 용산구 제공.

상황이 심각해지자 용산구는 ‘이태원 살리기’에 나섰다. 용산구는 임대료를 인하한 임대인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용산형 착한 임대인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이날 밝혔다. 예비창업자 20명을 선발해 임차료와 융자금 대출, 창업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이태원 스타샵 프로젝트’도 준비중이다.

부동산업자 강씨는 “임대인들이 일정 기간만이라도 임대료를 무료로 해주고 정부가 가게 리모델링 비용을 저리로 융자해주고, 지자체는 주차장 확보를 혁신적으로 해주는 등의 지원이 있어야 죽은 상권이 되살아날 수 있다”며 “상인들도 배달ㆍ포장 위주로 재편된 외식업계 흐름에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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