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옥고 후 자전수기 『조국』펴낸 전 북한 공작원 김진계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모진 풍파 속을 거치면서 내 구사도 아니고 수백사의 위기에서 겨우 일생을 건졌소. 고희를 지나 앞길이 말 그대로 여생일 뿐이니 새삼 욕심 차릴 일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지내온 기구한 역정을 더듬어 가감 없이 서술함으로써 남한에 사는 겨레에게 반쪽 땅 저 너머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고, 또 그것이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여 민족통일을 이루는 일에 작으나마 도움을 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김진계옹(73). 최근 『조국』(상하권·현장문학사)이란 방대한 분량의 자전수기를 펴낸 김옹은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혁명전략노선에 따라 남파됐던 공작원으로는 거의 마지막 인물에 속한다. 70년10월 북한으로부터 제3차 특수 공작임무를 부여받고 거제도 다대리에 상륙하자마자 체포됐던 그는 그후 대법원에서 무기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 88년12월21일 고령을 이유로 18년만에 석방돼 세상 빛을 보게됐다.
이번에 펴낸 『조국』 은 김옹이 출감 후 40년만에 되돌아온 고향, 강릉에서 새생활을 시작한지 한달여쯤 지나 출판사측의 권유를 받고 쓰기 시작한 것. 처음엔 망설이는 그에게 출판사측은 그의 삶이 우리민족전체가 겪었던 현대사의 뼈아픈 우여곡절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하나의 전형이며 북한에 대한 객관적 사실규명이라는 점에서 그의 증언은 지금으로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생생한 1차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나의 정치사상적 견해를 주장하거나 특정한 시각을 앞세워 역사를 기술하는 식이 아니라 한 인간이 겪고 느끼고 실천했던 바를 어떠한 가치판단 없이 담담하게 기록하는 것이라면 달리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에 동조해 작년 2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작업을 끝내야 한다는 초조감에 쫓겼지만 손이 떨리는 바람에 글씨가 제대로 써지질 않아 하루에 16절 갱지 한 장을 채우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끊었던 담배까지 다시 피우며 그렇게 1년을 고생해 금년 봄 마침내 2백자원고지 4천장분의 깨알같은 초고가 완성됐다. 그 육필 초고를 작가 김응교씨가 재구성하고 문장을 가다듬은 뒤 미진하거나 의문가는 점이 있으면 다시 김옹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바로잡는 과정을 거쳤다.
김옹의 수기 『조국』은 하나같이 분단의 비극적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우리 민족성원중에서도 그 불행에 한발짝 더 발을 내딛고 있었던 까닭에 본의 아니게 남과 북을 넘나들어야했던 한 기이한 삶의 역정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1918년 강원도 명주군 사천면 판교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나온 뒤 25세 때인 1942년 일제에 징용되어 남양군도에서 비행장활주로를 닦다가 해방직전에 귀국했다.
김옹이 공산주의 활동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은 10대 때인 30년대부터였으나 거기에 적극 가담하기는 해방과 함께였다. 「모스크바」 란 별호까지 붙어있던 이웃 연곡면 퇴곡리의 처가마을사람들이 그를 운명의 「주의자」로 끌어들였다.
6·25의 와중에서 북한으로 간 그는 한동안 인민군 군관으로 종군하다가 53년 정전성립과 함께 제대, 50년대에는 평북 안주군 평률리에서 리민주선전실장으로, 60년대에는 평남농업부의 지도원으로 일했다.
그동안 중앙당의 소환교육을 받고 58년부터 세 차례나 대남공작원으로 남파돼 활동하다70년 거제 다대리해안 침투공작 때 붙잡혀 그후 18년간의 수형생활을 거쳤다.
휴전선을 넘어온 귀순자도 아니요 자수간첩도 아니며 붙잡히자마자 전향한 간첩도 아닌 그는 북한의 대남공작원치고는 그 예가 흔하지 않은 특수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그가 이 책에서 취하고 있는 북한사회에 대한 진술의 형식이나 내용은 귀순·전향자들이 지금까지 써냈던 어떤 수기와도 다르게 엮어져있다. 예컨대 그의 진술은 북한에 대한 극도의 부정이나 적의로 착색돼있지 않으며 북한의 각종매체가 강하게 드러내고있는 선전적 공식성을 따르고 있지도 않다. 북한 내부인의 입장에서 당시 느끼고 지녔던 감정과 정서를 담담한 어조로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기조에 힘입어 독자들은 1950∼60년대 말 그가 겪었던 북한사회의 분위기를 매우 박진감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등장시키고있는 수많은 북한사람들, 이를테면 제대군인, 귀환병사, 전쟁중 치안대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 전쟁이후 숨어 지내는 치안대원, 각급 당원들과 인민위원회일꾼들, 지주였던 사람, 농부들, 남한출신자, 남로당원이었던자, 노동자들, 관개사업소직원들, 기독교인, 관개사원, 숙청된 사람들의 여러 일화와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북한내부의 구체적 실상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70년 이전까지의 북한은 그들이 주장하듯이 젖과 꿀이 넘치는 인민의 낙원도 아니었고 남한쪽이 선전하듯 절망감 속에 불만만이 가득 찬 강제수용소도 아니였습니다. 또 그곳이 남한사람들이 믿고있는 것처럼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들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여기와 똑같은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일깨워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출옥 후 김옹은 자식도 없이 고향에 홀로 남겨져있던 조강지처 한정희씨(74)를 찾아가 함께 지내고 있다. 두 번 장가들어 황해도 땅에 처와 1남4녀의 자녀를 두고있는 그는 자기 때문에 3년의 옥살이까지 치른 뒤 지금은 허리가 꺾이고 귀마저 깜깜절벽이 된 아내 한씨에게 참담한 속죄의 마음을 건네며 살고있다.
『내 지난 삶에 달리 후회는 없소. 다만 나 하나 때문에 집안이며 이웃사람들이 그동안 못할 일을 너무 많이 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픕니다.』
한마장거리에 이사를 해와도 걸음 한번 없이 친지들마저 자기를 피하고 곁을 주지 않을 땐 야속한 생각도 든다는 그는 『남북이 하나되어 우리 겨레가 천년만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내내 기도하는 자세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