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우리 애가 설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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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친구.동료의 행동이 어느 때부턴가 이상하게 보일 때, 혹은 나 자신이 낯설고 이전과 다르다고 느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이럴 땐 바로 '정신 질환이 아닐까' 생각하고, 서둘러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게 해법이다. 인간의 삶은 정신활동에 의해 지배받는다. 정신이 병들면 정상적인 생활이 무너지는 것이다. 정신질환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정신분열병이다. 하지만 정신분열병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정신병 의심해 보세요, 조기 발견이 중요합니다

단란한 가정의 외딸로 친구도 잘 사귀고, 성적도 상위권에 속했던 L양(18세). 하지만 고 3이 되면서 친구들이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하는 모습만 봐도 ' 내 욕을 하는 게 아닐까' 란 생각에 신경을 쓰면서 학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럴 리 없다'는 믿음은 있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워 음악도 듣고 공부방도 바꿨다. 물론 소용이 없었다. 당시의 상태에 대해 L양은 "내 스스로 놀랄 정도로 감정이 무뎌지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과 의논했지만 '처음엔 입시 스트레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고 설명한다.

L양의 부모는 결국 그녀의 태도가 심각해지자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그녀가 친한 친구를 보는 것조차 마음이 불편하다며 방과 후 집으로 직행, 방에만 틀어 박혀있었던 것. 진단 결과는 초기 정신병(정신분열병)이었다.

정신병은 뇌의 이상으로 감정.생각.행동 기억력.집중력 등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다. 언제나 발병할 수 있지만 우울증.불안증 등과 더불어 청소년기에 발병률이 높다. 문제는 이때가 한창 사춘기인데다 입시 스트레스까지 겹쳐 기분이나 행동이 이상해지고 대인관계와 학업 등에 문제가 생겨도 '사춘기라 그렇다'거나 '고3병'이라며 방치하기 쉽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 정신병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질병에 대한 무지.두려움.편견 등으로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것"이라고 들려준다. L양은 부모의 도움으로 비교적 조기 진단.치료를 받은 경우지만 방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학생 P군(20세)이 대표적인 예다. 그의 이상해진 행동 때문에 온 가족의 신경이 곤두서게 된 것은 1년 전.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부터 가족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잔소리가 많아졌다. 예컨대 집에만 들어오면 '아파트 앞 동에서 우리를 보면 어떡하느냐'며 항상 커튼을 닫으라고 신경질을 부리고, 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잠그기 시작했다. 또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웃으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옆집에서 다 듣고 있으니까 조용히 하라"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부모가 "앞 동에서 우리집을 염탐할 리 없고, 거리가 멀어 들리지도 않는다" 고 아무리 설득해도 P군은 막무가내로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에 가는 일도 꺼리더니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아예 학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가족은 P군의 모든 행동을 "원하던 대학에 못 간 탓"으로 돌리고 마음 잡을 때까지 기다린다며 마냥 집에 방치했다.

권 교수는 " 정신분열병은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몇 달에서 몇 년에 걸쳐 나타난다"며 "애매모호한 이상 행동, 사회 활동 감소, 업무 능력 저하 등이 보이면 서둘러 관리를 해야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표 참조>

L양은 약물치료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난 지금 "내가 왜 그런 이상한 추리를 하고, 사실로 느꼈는지 모르겠다"며 " 지금은 공부도 잘하고 학교 친구들하고 이전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들려준다.

권 교수는 "정신병은 발병 전 약간 이상하다 싶을 때 치료하면 약물.인지행동 치료 등으로 발병을 막을 수 있는 반면 발병 1년 이후에 치료를 하면 그 이전에 치료한 환자보다 2년 내 재발률이 3배 이상이 된다"고 말했다. 뇌기능 손상이 진행돼 만성화하면 정상 회복이 힘들고 약물 복용 기간도 길어진다는 것.

치료는 항정신병 약물치료가 기본. 보조적으로 환자 상태에 따른 심리치료의 도움이 되기도 한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초기 정신병 주변에서 느끼는 증상

.의심이 많아졌다

.우울해 한다

.불안해 한다

.행동이 바뀌었다

.이전보다 활동성이 줄었다.

.늘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짜증이나 화를 잘 낸다

.주변에 통 관심이 없다.

.주어진 임무(공부.일)를 수행하기 힘들어 보인다.

.혼자 있으려고만 하고, 남과 어울리기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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