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 “지시”드러나 책임 못면해/김용휴사장 불법 빚보증사건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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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편의봐주라”에 부하들 과잉충성/국영기업 인사ㆍ경영난맥상 노출
남해화학 어음불법지급 보증사건은 검찰수사착수 이틀만에 김용휴사장의 「부탁성 지시」와 부하들의 과잉충성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따라 김용휴씨에 대한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실정이나 미국에 체류중인 김씨가 자진귀국하지않을 경우 당분간은 범죄사실을 밝히고도 처벌못하는 맥빠진 수사가 될 전망이다.
검찰은 당초 김씨의 개입여부를 정확히 알고있는 남해화학 김종렬상무(52)가 끝까지 자신의 독단적 행위라고 주장할 경우 김씨의 혐의사실입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다른 정황증거를 수집했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때 「김사장불개입ㆍ자신의 독자적 결정」임을 강조했던 김상무가 17일밤 검찰에서 『김사장이 장남의 회사를 도와주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함으로써 김사장의 개입이 분명해졌다.
김상무는 『지난3월 김사장이 아들이 경영하는 한국유니텍을 살려야하니 남해화학자금을 활용,한국유니텍이 금융자금을 쓸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성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에따라 김상무는 남해화학 운영자금 88억원을 변칙 인출,김사장의 아들 혁중씨가 지정하는 조흥은행 신기지점(인천) 등 6개금융기관에 신탁자금 등으로 예치시켜주는 조건으로 한국유니텍이 35억5천만원을 특혜대출받게 해주었다.
김사장은 지난5월에도 담보능력이 없어 금융대출을 못받고 있는 한국유니텍이 어음을 할인받도록 편의를 봐주도록 김상무에게 재지시했다.
김상무는 지시대로 회사자금 40억원을 또다시 인출,한일ㆍ동부ㆍ한양 등 3개단자회사에 예치하고 혁중씨가 발행한 약속어음에 남해화학이 지급을 보증한다는 취지의 법인대표(김용휴)의 인장을 날인,12차례에 걸쳐 모두 39억원을 지급보증해 주었다.
검찰은 이번사건이 당초 김용휴씨가 한국유니텍 발행어음에 개인명의로 보증을 해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방법으로 아들의 부채를 정리하다 더이상 개인보증이 통용되지 않자 법인명의로 보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해화학은 법적으로는 일반 회사지만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종합화학이 대주주인 재투자회사며 김용휴씨가 사장직을 겸임하고 있었다는데서 이 사건은 국영기업의 경영ㆍ인사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 할수 있다.
국영기업의 경영에 가장 큰 문제는 기관장 자리가 개인의 능력ㆍ경력에 관계없이 유력인사들의 자리나눠주기식으로 이뤄져왔다는 점이다. 또 이 경우 임명된 기관장들은 상당수가 권력주변 인사로 감독관청이 인사ㆍ경영을 제대로 챙길수 없었던 허점도 이번같은 「있을 수 없는 비리」를 낳은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때문에 6공에 접어들면서 정부투자기관의 인사제도를 쇄신해야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어났으나 정부는 이를 외면했고 현재도 25개 정부투자기관의 사장중 6명(25%)과 이사장중 8명(35%)을 군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현재 사건의 더 큰 초점은 김사장이 회사가 아들의 빚보증을 불법으로 선 사실을 몰랐겠느냐와,그의 귀국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김사장은 사건발생후 사건처리를 위해 미국을 찾아간 박병억 남해화학 부사장에게 『당초에는 채무보증사실을 몰랐고 뒤에는 가옥ㆍ골프회원권 등 모든 재산을 처분,25억원을 변제했으며 미국은 부인의 신병이 나빠 출국한 것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남해화학이 김사장 아들 회사 한국유니텍의 채무보증을 서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24일부터로 7월31일까지 8회에 걸쳐 25억원을 지급보증했으며 김사장도 8월10일께 이 사실을 안 것으로 감사원 감사결과 밝혀지고 있다. 결국 채무를 정리해도 더이상 손쓰기 어려워 해외로 도피한 셈이 되는 것이다.
또 현재 검찰에 수사를 받고있는 김종렬상무 등도 임명권은 전적으로 김사장에게 있어 「비리를 몰랐다」는 그의 주장을 믿기어렵게 하고 있다.
이와함께 김사장은 『지병인 부정기고혈압으로 의사가 귀국을 불허,당분간 귀국을 않겠다』는 뜻을 밝혀 사건수습에 나설 의사가 없음을 비쳐 공인으로서의 자세도 의문시되고 있다.
남해화학측은 이번 채무보증에 관련된 김상무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회사가 한국유니텍의 어음을 물어주게될 경우 김사장을 포함한 이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문제의 한국유니텍회사는 총자본금 15억원에 종업원 2백여명규모의 중소기업으로 83년 설립됐으며 88년10월 김혁중씨가 인수했다.
오디오와 포터블 카셋레코더를 생산하는 이 회사의 연간매출액은 50억원수준으로 대우전자 등에 납품해오다 87년에는 5백만달러어치를 직접 수출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1월 공장을 서울 공항동에서 경기도 부천시 내동으로 옮기면서 3개의 오디오제품 생산라인을 갖췄는데 수출부진에다 지난3월의 화재까지 겹쳐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졌다.<장성효ㆍ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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