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처리장 태부족 72%는 그대로 흘려|생활하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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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가정의 주방이나 화장실 등에서 쏟아지는 생활하수가 하천·강·바다의 수질오염을 가속화하고 있다.
산업폐수가 경제성장과정에서 불어나는데 비해 전체 폐수·하수 발생 량 중 약 70%를 차지하는 생활하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필연적으로 증가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환경학자들은 사람을 환경의「오염원」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세수·빨래·청소·취사·화장실 이용 등으로 국민 l인당 하루에 쏟아 내는 생활하수는 평균 2백70ℓ정도.
농어민들의 경우 1백ℓ에 불과하지만 도시인들은 하루에 3백ℓ나 되는 생활하수를 발생시키고 있다.
따라서 인구 4천2백만 명이 매일 쏟아 내는 생활하수는 전국적으로 1천1백34만t정도이고 여기에 20%정도 섞이는 빗물·지하수를 감안할 때 하루에 처리해야 할 생활하수 발생 량은 약1천3백60만t에 달한다. 이 생활하수 발생 량은 지난85년 6백85만t의 약 2배로 불어난 것이다.

<처리장 고작 17곳>
이처럼 방대한 양의 생활하수가 매일 생기는데도 이를 처리할 전국의 하수종말처리장은 시울의 4개소를 비롯, 모두 17개소에 불과하고 하수처리율은 고작 28%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프랑스의 하수처리율이 95% 이상 기록하고 있는데 비하면 그야말로「환경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정도다.
하수처리율이 이렇게 낮은 상황에서 수질오염에 결정타를 가하는 합성세제의 사용량은 매년 크게 늘어 수질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하이타이 등과 같은 세탁용 세제와 주방용·화장실용 합성세제의 1인당 사용량은 지난85년 3·lkg이었던 것이 지난해에는 5·9kg, 올 들어서는 6kg을 훨씬 웃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합성세제와 물, 그리고 일부 분뇨 등 이 뒤섞인 생활하수 중 72%에 해당하는 l천여 만t이 매일 정화되지 못한 채 하천으로 흘러나와 물을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합성세제는 잘 분해되지 않고 뭉게구름처럼 하천의 수면을 거품으로 뒤덮어 보기에도 흉할 뿐만 아니라 산업폐수·축산폐수와 함께 수질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수질에 대한 합성세제의 악영향은 물의 부영양화와 이에 따른 적조현상으로 특히 호소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합성세제에 들어 있는 인산 염 성분이 물 속에 풍부해지면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부영양화를 초래한다.

<적조현상 일으켜>
이렇게 될 경우 플랑크톤은 살아 있을 때 각종 유독 물질을 내뿜고 죽어서는 분해되면서 많은 양의 산소를 소비, 물 속의 산소를 절대 부족하게 만들어 물고기의 떼죽음을 몰고 오는 적조현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합성세제의 수질오염으로 이미 심각한 부 영양상태를 보이고 있는 곳은 영산 호·아산 호며 전국 상수공급량의 약 38%(14억 여t)를 공급하는 팔당호를 비롯, 안동호·삽교호 등 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합성세제의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수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성균관대 홍사오 교수(약학)는『합성세제로 오염된 하천의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하는 경우 정수처리 때 거품이 생겨 여과기를 가로막는다』고 말했다. 즉 수돗물로 공급될 상수원에 섞여 있는 유해한 물질이 걸러지지 못하도록 악영향을 미치는 주범의 하나가 바로 합성세제라는 것이다.
생활하수에는 분뇨도 포함된다.
수거 식 화장실에서 나오는 분뇨는 별도로 분뇨처리장에서 처리토록 돼 있고 수세식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는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처리토록 돼 있으나 너무 낮은 하수 처리율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중낭 천·탄천·안양천·난지 하수처리장 등 4개가 설치, 가동되고 있어 흘러드는 하수량 4백30만t의 70%정도가 정화된다.
그러나 한강하류에 자리잡은 안양천·난지 하수처리장의 경우 하수 찌꺼기(오니)를 제거하는 2차 시설이 완공되지 않아 처리 후 방류할 때의 환경기준인 생화학적 산소요구 량(BOD)30PPM보다 최고 2배 이상 오염도가 심한 물(최고 75PPM·안양천하수처리장)을 흘려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한강의 수질 오염도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환경관계자들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물리적(l차)·생화학적(2차) 처리뿐 아니라 3차까지 고도 처리해 하천에 최종적으로 흘려 보내는 수질의 BOD를 5PPM까지 끌어내리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수도서울조차 하수처리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은 그래도 다른 도시·농촌보다 훨씬 나은 편이다.
부산·대구·대전 등 직할시의 하수처리율은 기껏해야 30%안팎에 머물고 있으며 그나마 인천·광주시에는 아직까지 가동중인 하수처리장이 한군데도 없는 실정이다. 결국 서울·부산·대구·과천·의정부·구미·경주 등 전국 l2개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과 농어촌지역은 수질오염에 관한 한 거의 무방비상태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하수처리장이 없는 지역에서는 5백 평 이상 건물에는 오수정화시설, 그 이하 숙박업소·음식점에는 정화조를 설치해 생활하수의 수질오염에 부분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들 시설은 건물지하에 묻어 생활하수 속의 더러운 물질을 l주일정도 두면서 처리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국민들의 인식부족과 행정기판의 관리 소 홀로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들 정화시설의 밑바닥에 찌꺼기가 많이 쌓이면 정화능력에 마비가 오기 때문에 건물주는 l년에 한번씩 행정당국에 신고, 전문업체가 청소토록 돼 있으나 이같은 정화조 청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영향 평가업무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동명기술공단 장순천 환경과장은『스위스의 경우 일반가정도 몇 군데씩 어울러 정화시설을 설치, 철저히 관리할 정도로 환경에 힘쓰고 있다』고 말하고『앞으로 농어촌지역에 이같은 방안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개선기미 안보여>
한편 환경처 신현국 오수관리과장은『가정에서 하수처리장까지 연결되는 하수관망이 과거 무계획적인 도시계획으로 거의 구축되지 않은 것도 생활하수에 의한 오염의 중요한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가정에서 버린 생활하수가 하천으로 곧장 흘러 들어가는 합류 식이어서 하천의 수질오염을 한몫 거들고 있고 일부 하수는 지하수에 스며들어 주택가에까지 심한 악취를 발생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환경전문가들은 생활하수증가에 따르는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국민·기업체가 모두 환경보전·보호를 위한 행동실천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정부는 오는 96년까지 하수처리율을 65%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정치상황의 변화 등에 흔들리지 않고 관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같은 지적에 따라 건설부·환경처는 올 들어「맑은 물 공급대책」의 하나로 팔당호주변의 양평·광주·용인·화도, 대청호주변의 영동·보은·옥천·문의, 영산강주변의 광주·나주, 금호 강 주변의 대구·영천 등 12개 지역에 2천7백69억 원을 들여 내년까지 하수처리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또 환경처는 합성세제 사용량 급증에 의한 수질오염을 낮추기 위해 지난 8월1일부터 합성세제 중 복합합성세제·복합비누세제·액체세제에 대해 인산 염을 일절 첨가하지 못하도록 조치(종전에는 2%함량 허용)했다.
또 종전엔 가정의 의류세탁용 합석 세제에 한해 인산 염 함량을 2%이하로 규제하던 것을 상업용·공업용의류 세탁세제까지 적용범위를 확대시켰다.
이와 함께 종전에 생활하수를 BOD로 따져 60∼1백PPM까지 처리한 뒤 흘려 보내도록 했던 오수정화시설의 규제기준을 30PPM으로 강화하는 한편 정학조의 BOD 처리율도 50%이상아서 60%이상으로 높이도록 해 늦어도 내년 2월부터 단속에 들어갈 계획이다.

<세제사용 줄여야>
정부의 하수처리시설 확보와 규제강화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환경보전 실천생활이다.
특히 날로 늘어나는 합성세제 사용량을 줄여 나가는 것은 수질오염을 막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YWCA 소비자고발센터 박인례 간사는『합성세제를 필요이상 무심코 많이 쓰는 주부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합성세제를 적게 쓰는 운동이 주부들간에 더 확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엔 세제에 적정량을 쓸 수 있도록 계량컵이 들어 있어 과거처럼 적정량의 최고 20배까지 한꺼번에 쓰는 주부들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부·소비자들 이외에 합성세제 생산업체들의 노력도 중요하다.
홍 교수는『산업체에서도 생 분해가 잘 안 되는 현재의 석유화학제품인 계면활성제대신 생 분해속도가 비누보다 우수하고 세척력이 뛰어나며 피부에 자극성이나 독성이 없는 합성계면활성제의 개발연구에 적극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김영섭 기자>
사진 오종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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