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청년들 추모 줄이어|한국계 소 가수 빅토르 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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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모스크바=김석환 기자】한국계 소련 인으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가수 빅토르 최(34)가 사망한지 4주일이 지났음에도 모스크바·레닌그라드 등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추도행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빅토르 최 는 레닌그라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록 그룹「키노」(영화)의 리드싱어 겸 기타리스트로 검고 긴 머리, 헐렁한 T셔츠, 청바지를 즐겨 입는 소련청년문화의 우상이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그의 앨범이 소개되지 않았으나 그의 대표작인「캄차트카의 책임자」(나차르니크 캄차트카), 「밤」(노치), 「태양을 기념하는 별」(즈베즈다 파이메니 손체)등은 프랑스·미국 등지에서도 출 반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소련의 대표적 가수였다.
빅토르 최가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유로는 ▲노래도중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듯한 긴장된 침묵 ▲허스키 한 목소리에서 울부짖는 듯 외치는 황량함 ▲러시아의 전통민요에 기초한 단순한 리듬과 이에 어울리는 절제된 가사 ▲서구의 록 밴드를 능가하는 연주솜씨 등 이 러시아인의 허무주의, 대륙기질, 서양에 대한 동경심 등을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이즈베스티야 등 소련의 대표적인 신문들은 빅토르 최의 이와 같은 특징과 인기를 일찍부터 주목, 수 차례에 걸쳐 특집기사를 게재한바 있다.
또한 레닌그라드 록 클럽, 노보시비르스크 록 카페 등은 빅토르 최가 이끄는「키노」의 공연을 유치하려 열심이었다.
빅토르 최 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소련의 청소년 중 그의 앨범을 하나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멜로디 아 등 국역레코드 상점을 통해서는 그의 레코드를 구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보통의 레코드 1장 가격이 1루블에서 3루블인데 반해 그의 레코드나 녹음테이프는 복사된 것이 5루블 정도였다는 데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 내에서 이렇게 큰 인기를 끈 빅토르 최 의 사생활과 이력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밝혀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할린 태생으로 유년시절을 사할린에서 보낸 후 레닌그라드로 이주했다는 것과 처음에는 목수 일을 했고 나중에 보일러공으로 일했다는 것. 80년에서 81년 사이에 음악동맹에 가입, 가수로의 길에 나섰다는 정도였다.
그의 첫 번째 앨범은 1982년에 발표한『45』로 알려져 있으며 멜로디 아를 통해 녹음·출반 됐다.
지금까지 모두 7장의 앨범을 발표한 빅토르 최 의 음악적 특성은 우리로 치자면 언더그라운드성의 가사에 짙은 허스키와 세련된 연주솜씨 등 이 혼합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85년 6인조 록 밴드「키노」를 결성한 후 발표한 앨범『키노』는 소련의 80년대 대표적인 록 앨범으로 알려져 있다.
「키노」를 결성한 후 솔로시절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확보한 빅토르 최 는 유리 카스파랸(기타리스트)·콜랴 미하일로프 등의 도움을 얻어 활동영역을 넓혀 갔으며 지방공화국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그 자신이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빅토르 최 는『운명』『바늘』등 5∼6편의 영화에도 출연한바 있다. 빅토르 최 는 최근 리가 시에서의 공연을 끝마친 후 수년만에 처음으로 며칠간의 휴가를 얻어 리가 시에서 조금 떨어진 투쿰스 지역에서 낚시 등을 즐기며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빅토르 최 는 혼자서 새벽낚시를 즐기는 것이 취미였으나 최근엔 그럴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해 창작을 위한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라도 낚시를 즐기고 싶다고 말해 왔다고 한다.
그러다 8월15일 오후 유르말라 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긴 후 숙소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사망한 것이다.
「키노」의 멤버들은『이제 빅토르 최가 우리를 떠났으므로 소련에는「키노」만큼 큰 대중적 인기를 끌 록 그룹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애석해 하며 그가 남긴 악보와 리듬 등을 활용, 올해 말에 영화『검은 별』을 완성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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