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쉼] 180분의 호사 … 수입 명차 4종 시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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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지둥 아침 출근길에도 '나만의 잔재미'가 있다. 어쩌다 앞에 수입 명차가 끼어들면 꽁무니를 쫓는 일이다. 그때부터 시야는 '감상 모드'로 전환한다. 더구나 신호등 때문에 '끼~익'하고 앞차가 멈출 때는 감상 모드가 순식간에 '줌 모드'로 돌아선다. 쭉 빠진 엉덩이 라인부터 램프 디자인까지 찬찬히 훑는다. 그 맛이 그만이다.

'인터넷에 널린 게 자동차 사진인데, 굳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이다. 그런데 다르다. 눈앞의 명차들은 생생하게 숨을 쉰다. 자동차 잡지에서 본 잡동사니 정보까지 떠올리며 코 앞에서 잘근잘근 씹어먹는 재미는 분명 '별미'다.

그러다 뜻밖의 기회가 왔다. 지난달 27일 인천 영종도에서 열린 '2006 수입자동차 시승회'에 참석했다. 바람이 꽤 부는 가을 섬, 행사장에는 내로라하는 수입차들이 쫙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는 포르셰를 비롯해 벤츠, BMW, 폴크스바겐, 렉서스, 재규어, 볼보, 아우디 등 명차들의 도열은 끝이 없어 보였다. 문을 열어 안을 살피고 시트에도 앉아봤다. 도열한 19개 브랜드 70여 대 중 미리 신청한 4대를 타보게 됐다.

차종은 '종합 선물세트'였다. 데이트 상대는 아우디 Q7, 폴크스바겐 페이튼, 메르세데스 벤츠 SLK 350, 볼보의 S60 D5 순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SUV차량을 비롯,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 스포츠카, 디젤 엔진이 장착된 5기통 세단, 4200㏄짜리 대형 세단까지 다양했다. '과연 어떨까, 속도감은? 제동력은? 또 실내 인테리어는?'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했다. "영종도 외곽순환도로를 한 바퀴 도는 데 45분이 걸립니다. 좌회전은 없고 우회전만 있습니다." 주최 쪽의 간단한 코스 설명을 듣고 시승 장소로 향했다.

아우디 Q7 4.2 FSI 콰트로
눈 깜짝할 새 시속 170km로

폴크스바겐 페이튼 V8 4.2 LWB
앞 쏠림 없는 완벽 제동

메르세데스 벤츠 SLK 350
‘에어 스카프’가 찬 바람 제압

볼보 S60 D5
성능은 기본 … 뒷모습 매혹적

상황실로 가 열쇠를 신청했다. 첫 상대는 아우디 Q7 4.2 FSI 콰트로(1억2450만원). 손에 쥔 열쇠가 묵직했다. 왼쪽 위에 도드라진 단추를 살짝 눌렀다. '철커덕!' "아우, 깜짝이야!" 숨어 있던 키가 잭나이프처럼 튀어나왔다. 아우디 부스로 갔다. 주차장 구석에 Q7이 서있었다. 첫인상은 '들소'였다. 머리를 숙이고 뿔을 세운 채, 코에서 김을 쉭쉭 내쉬며 '돌진 명령'만 기다리는 들소, 바로 그것이었다. 어깨를 쓰다듬었다. 역시, 단단했다.

차에 올랐다. 7인승 SUV, 그런데 실내 분위기는 깔끔한 세단이다. 도로로 나갔다. '과연 이 들소의 근육은 얼마나 탄탄할까'. 몇 차례 신호등을 지나자 기다리던 직선 코스가 나왔다. '그래, 한번 달려봐!' 액셀러레이터 바닥까지 밟았다. "우우우~웅" 들소의 돌진이 시작됐다. 순식간이었다. 불과 몇 초만에 아우디 Q7의 계기판은 시속 170㎞를 넘어섰다. "우~와" 탄성이 절로 터졌다. 놀라웠다. 가속 과정에 '덜커덕~우웅, 덜커덕~우웅'하는 '가속 계단'도 없었다. 힘은 남아 돌았다. 갑자기 눈 앞에 커브길이 나타났다. 할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최고 출력 350마력, 최고 시속 210㎞. 강하다. 너무 매끈해서 울퉁불퉁한 오프로드에선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두 번째도 기대한 그대로의 데이트였다. 폴크스바겐의 '기함' 페이튼 V8 4.2 LWB(1억2220만원). "밖에서 보면 차분하고, 안에서 보면 럭셔리하다"는 설명을 들으며 차에 올랐다. 실제 그랬다. '명품'을 겨냥한 폴크스바겐의 손길은 섬세했다. 4200cc인만큼 페이튼은 묵직했다. '이렇게 큰 차는 제동거리가 꽤 있지 않을까'. 백 미러를 보니 따라오는 차가 없었다. 시속 190㎞에서 급제동을 걸었다. 순간,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거의 제자리에서 속도는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급제동으로 인한 앞쏠림도 없었다. '우와, 이런 차도 있구나' 싶었다. 대신 운전하는 재미는 좀 떨어졌다. 역시, 적당히 작은 차가 '조종하는 맛'이 난다.

세 번째 데이트는 더 각별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SLK 350(8790만원), 뚜껑을 여닫는 스포츠카였다. 영종도의 바람은 꽤 매서웠다. 스포츠카니까 속도는 내야겠고, 컨버터블이니 뚜껑은 열고 싶고, 뚜껑을 여니 춥기는 춥고…. 사면초가였다. '아, 맞아. 이게 있었지'. 벤츠의 첨단 기능인 '에어 스카프'를 작동했다. 순간, 뒤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이 스카프처럼 목을 감쌌다. 한결 나았다. 그제야 중후한 엔진음과 원하는 대로 착착 치고 들어가는 SLK의 기동력이 느껴졌다. '뚜껑이 없다고 늘 낭만적인 건 아니구나, 컨버터블은 실용성도 따져야겠구나' 싶었다.

마지막 데이트. 상대는 매혹적인 뒷모습을 가졌다. 바로 볼보의 S60 D5(4479만원). '볼보=각진 차'의 등식은 이제 없다. '가장 아름다운 꽁무니를 가진 차'. S60은 내게 그런 차였다. 게다가 시승차는 새빨갰다. 가속력도 좋고, 제동력도 좋았다. 다만 디젤차라 소음과 진동은 다소 감수해야 했다. 어쨌든 S60까지 타고 나니 묵은 숙제를 해치운 기분이었다.

하루에 네 대나 맛본 수입차 시승회, 흡사 맛집 골목에서 요리조리 옮겨다니며 별미만 찔러본 기분이었다. 잊을 수 없는 맛, 그 여운 역시 길 듯하다.

영종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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