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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임영<영화평론가>|권영순『인사야투』비서 대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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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0면

권영순 감독(1923년 생)이 필리핀 합작으로 연출했던『인사야투』(81년)는 필리핀에선 『Attack and Des-troy』라는 제목으로 24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됐다. 학병출신의 한국인장교와 필리핀 유격 군이 일본군을 뱀으로 공격하는 얘기인데 뱀이 많이 나왔다. 한국전에 참전한 필리핀 군 병사까지 얽히는 웅대한 전쟁 멜로 드라마였다. 필리핀에선 흥행이 대성공이었다. 24개 극장 동시개봉이니까 하루에 3주 이상 상영 효과가 났고 이틀에 1개월 반 이상 상영효과가 난다. 극장이 연쇄점 형식으로 형성되었을 때 발휘되는 위력이다.
이 『인사야투』는 피지섬에 3천 달러, 마다가스카르섬에 3천 달러 하는 식으로 조금 씩 조금씩 돈을 받고 달았다. 한꺼번에 큰돈 받고 팔려고 하는 것보다 박리다매(?)하니까 금방 큰돈이 되었다.
최근엔 역시 필리핀에서 촬영한『에덴의 서쪽』이라는 것이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 필리핀 오지엔 아직도 석기시대생활을 하고 있는 타사다이 족이 있는데, 이들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수인성 질병을 한국인 의사가 고치려고 연구하다 죽는다는 얘기로 되어 있다. 풍물이나 인물들이 이상하니까 여러 나라에 팔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우선 비디오부터 먼저 팔 생각인데 여기서 벌써 제작비의 태반이 나온다. 아프리카대륙엔 미국계 흑인과 독일인이 쥐고 있는 두개의 흥행 루트가 있는데 이들에게도 팔아 볼 작정이다.
필리핀 합작영화로는『인사여무』(75년)라는 것도 있었다. 필리핀과의 인연은 한국전쟁 때 해군영화 촬영대장노릇을 하면서 군함을 타고 가고 할 때부터 생겼다.
일제 말 일본대학 문학부를 다녔는데 방 얻기가 어려워 고향선배인 윤용규의 아파트에 굴러 들어가 신세를 졌다. 윤용규는 그 당시 어떤 국책영화 시나리오 현상에 당선, 일본감독 풍전사낭의 조감독(퍼스트)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세례는 그에게서 받았다. 그의『마음의 고향』(49년)때는 조감독(퍼스트)을 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권 감독이 한 고향사람이라고 덕을 본적이 또 있다. 독립군과 일본군의 싸움을 다룬 『정복자』(63년)를 운천계곡 고석정에서 찍고 있었는데, 그 당시 1사단장이었던 김재규가 동향인이라 하여 여러모로 지원해 주었다.
운천계곡에 매단 다리(적교)가 하나 있었는데 공병장교가 10명 이상 한꺼번에 지나가면 위험하다고 하는 것을 하도 배경이 좋아 60여명을 지나가게 해 밑이 내려앉아 아주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정복자』를 찍을 때는 문정숙이 탄 말 앞을 가던 엑스트라 말이 얼음이 언 것을 모르고 마구 가다 미끄러져 넘어갔는데, 문정숙의 말이 그것을 피하려고 옆으로 뛰는 바람에 문정숙이 낙마해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때 공연하던 엄앵란의 차에서 방석 3개를 가져다 상처에 댔는데 그것이 다 피에 흥건히 젖었다. 중상이어서 문정숙이 죽지 않으면 식물인간이 된다고들 했다.
이렇게 사연이 많은『정복자』는 국제극장에서 흥행이 대대적으로 성공, 동아흥행 제작자 이성근이 당초의 극장 주인인 김부전으로부터 국제극장을 인수해 새 극장주가 된다.
이광수 원작『흙』(60년)을 김진규·문정숙·김승호 출연으로 촬영할 때는 광나루 근처에서 구경꾼들과 시비가 붙어 조감독이었던 고영남이 경찰에까지 가기도 했다. 그 당시는 촬영할 때마다 그 지역의 깡패 비슷한 친구들이 돈을 뜯으려고 여러 가지 행패를 부리곤 했었다.
『흙』은 국도극장의 성동호가 제작하고 있었는데 임화수가 같은 이광수 원작『재생』을 홍성기 감독 연출로 제작하고 있었다. 두 작품 다 신정프로를 겨냥하고 제작에 피치를 올리고 있었다.
자연히『흙』과 『재생』은 경쟁하게 되었는데 심술 많은 임화수가 어떻게 어떻게 작용해 『흙』을 제작 중지시켰다. 『흙』은 하는 수 없이 구정프로로 상영되었는데 도리어 이것이 전화위복으로 흥행이 대 성공이었다.
권영순 감독은 서울예전에도 시간강사로 네 시간 나간다. 『에덴의 서쪽』을 비롯해 아직도 끊임없이 신작을 내고 있는 그는 아마도 유일한 노익장감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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