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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띄운 민족답게 기술로 일본 눌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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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조선업계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자꾸 떨어진다."

지난달 26일 한국선물협회가 주최한 환율 세미나에서 노덕현 HSBC 이사는 이같이 주장했다. 노 이사는 "올 초에는 하반기부터 조선 수주가 감소해 3분기부터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리라고 기대하는 전문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수주가 늘어나는 바람에 환율 하락 압력이 오히려 더 커졌다"며 "조선업을 빼놓곤 환율을 논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불평'이 나올 정도로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은 다른 나라를 압도한다. 2002년 이후 4년 연속 일본을 제쳤다. <그래픽 참조> 생산성 향상과 기술 개발에 끊임없이 땀을 흘려온 결과다.

◆ 속속 개발한 첨단 조선 공법=현대중공업은 2004년 세계 처음으로 맨땅에서 배를 짓는 육상건조공법을 도입했다. 지금까지 10만5000t급 유조선 10척을 이 방식으로 지었다. 다음달엔 한 단계 높은 기술이 필요한 액화석유가스(LPG)선의 육상건조를 시작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은 5년 전부터 블록을 최대 3000t으로 대형화하는 메가블록 공법을 자체 개발해 도크 내 작업 시간을 3개월에서 한 달 반으로 크게 단축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선박 수리에 쓰이던 플로팅 도크를 선박 건조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실용화했다. 이 회사와 삼성중공업은 각기 2개의 플로팅 도크를 확보, 최대 25만t급 선박을 물 위에서 만들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최대 300m인 도크보다 긴 배를 만들기 위해 물속에서 선체를 용접하고 결합할 수 있는 작업장인 '댐'이란 구조물을 고안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현대중공업은 10년 전 한 해 40척에서 올 해 76척으로, 삼성중공업은 20척에서 50척으로 건조량을 크게 늘렸다.

◆ 돋보이는 조선소 운영 및 생산 노하우=대우조선은 올 9월 오만 정부와 오만 두큼 지역에 있는 수리 조선소를 20년간 위탁경영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를 1997년 인수해 알짜 회사로 바꿔놓은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삼성중공업도 올 7월 브라질에 조선소 건설.운영 노하우와 선박 도면 등 모두 1400만 달러어치의 기술을 수출했다. 국내 조선소들은 주변의 기압과 풍향을 측정해 날씨 변화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에 따른 조업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풍부한 설계인력은 일본을 제친 원동력이다. 일본 대형조선소는 대개 200~300명의 설계 인력을 두고 있다. 고객이 요구하는 설계를 바로 내놓기엔 부족한 숫자다. 이에 비해 국내 대형사의 설계 인력은 최고 1500여 명에 이른다. 빠르면 2~3일 내에 발주사가 원하는 기초 설계도면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다.

◆ 중국 추격 따돌려야=내수용 선박을 주로 만들어온 중국은 최근 다롄과 칭따오 등에 100만t 급 규모의 초대형 도크를 잇따라 짓고 있다. 2008년이면 한국과 비슷한 2500만t의 생산 용량을 확보할 전망이다. 석탄.목재 등을 싣는 벌크 운반선 등 값이 싼 배는 대부분 중국 조선소들의 몫이 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10%에 불과한 인건비가 가장 큰 무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체 일부(블록)를 중국에서 만들면 운송비를 합쳐도 국내보다 30% 이상 원가가 절감된다"며 "국내 업계의 임금 인상 폭이 생산성을 앞지르면 급격하게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협소한 부지와 여러 규제로 시설 확장이 어려운 것도 걸림돌이다. 부산 영도에 있는 한진중공업은 몇 년 전부터 도크 연장을 추진했으나 당국의 반대로 포기하고 안벽 증설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요인 등으로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만에 조선소와 블록공장을 짓기로 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설비를 늘리려면 해안을 매립해야 하는데 환경관련 규제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조선 업계의 국제경쟁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싸매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울산.거제=나현철.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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