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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집(서울 청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음식에 대한 기억만큼 진한 향수를 자아내는 것은 없다. 특히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기도 한다.
나는 평소 어머님의 손끝으로 빚은 국수와 비빔밥을 좋아하는데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며 입맛이 떨어질 때면 옛 맛이 그리워 청담동 경기고교 건너편에 있는 안동집(511-4141∼2)을 찾아 잃었던 입맛을 되찾곤 한다.
이 집의 주된 메뉴는 안동국시와 안동비빔밥으로 그 맛은 여느 집에서 맛보지 못한 담백함이 일품이다.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방언으로 옛날 우리 나라 양반들이 여름철에 주식으로 먹는 조밥이 깔깔하고 목이 메여 담백한 국물이 있는 국수를 곁들여 먹었던 것이 안동국시의 유래라고 한다.
국수가 나오기 전 먹는 몇 숟가락의 조밥을 물기 젖은 갓 자란 재래종 배추에 쌈을 싸서 가급적 간장을 덜 뺀 구수한 된장에 발라먹으면 그야말로 감칠맛이 절로 난다.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서 손으로 가늘게 썰은 안동국시는 사골국물에 애호박을 듬뿍 넣고 옛날 안동지방 양반집에서 사용하던 특이한 소금인 일명 죽염(천연소금을 대나무 통에 넣고 볶아 수분을 증발시킨 소금)으로 간을 맞춰먹는데 화학조미료를 쓰는 요즘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나는 안동지방에서 산적은 없지만 이 집의 또 하나의 특이한 음식인 안동 비빔밥도 즐겨 찾는다.
안동비빔밥, 일명 헛제사밥은 제사 후 제사음식을 각종 나물에 비벼 먹는 경상도 풍속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춧가루나 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비빔밥의 맛은 무릇 참기름에 달려있는데 이 집의 참기름은 안동시 근교인 구담에서 기름을 짜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 그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한층 돋워 준다.
비빔밥에 넣는 나물인 도라지·무·깻잎·표고버섯 등은 안동지역의 농가와 계약 재배하여 그 신선한 맛이 여느 채소와는 다르다.
또 하나의 별미는 곁 반찬인 간 고등어인데 죽염으로 간을 맞춘 고등어를, 밀가루에 무쳐 구운 것으로 독특한 맛을 내며, 탕국은 계절에 따라 봄에는 여린 쑥을 다져 만든 쑥국, 여름엔 콩나물국, 가을과 겨울에는 우거지국으로 비빔밥의 맛을 더해준다.
후식으로 나오는 단호박 무침은 단호박을 껴서 콩고물에 무쳐 먹는 것으로 콩고물의 고소한 냄새와 군고구마 같은 단호박의 맛이 한데 어우러져 고향에 대한 진한향수를 새삼 자아내게 한다. <주택은행 부행장>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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