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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통령각하” 예의 깍듯/북대표 청와대예방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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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 고립 불원” “주석께 전하겠다”/연총리 긴장된 표정… 15분 요담
○…우리 국가원수와 북측 내각 수반의 첫 대면인 노태우대통령의 연형묵 북한정무원총리 접견은 5일 오후 4시 정각에 이루어졌다.
연총리는 최봉춘책임연락관과 함께 접견장인 청와대 소접견실에 미리 입장,강영훈총리ㆍ김종휘 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노대통령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
노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연총리와 악수를 나눈 뒤 왼손으로 연총리의 등을 감싸 두들기며 『반갑습니다. 고생 많지요』라고 격려했고,배석한 최 책임연락관에게도 『수고많다』고 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자리에 앉아 『우리 온 국민과 함께 여러분의 역사적인 방문과 회담을 다시한번 환영해 마지않는다』고 인사한 뒤 『일정이 강행군이어서 여러가지 피곤한 일이 많겠다』고 위로.
노대통령은 이어 『지난번 입경할 때 마포쪽에서 차량접촉사고가 나 다치신 분도 있었는데,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라고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며 『다친 분은 괜찮으냐』고 묻자 연총리는 『괜찮습니다』고 답변.
연총리는 이어 『대통령각하께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며 『여기 와있는 동안 회담준비 종사원들이 여러 준비를 잘 해 주셔서 불편이 없습니다』고 정중하게 감사의 뜻을 표명.
노대통령은 연총리와 최연락관앞에 인삼찻잔이 놓이자 『개성인삼 맛이 좋지요? 남쪽 인삼차도 맛이 좋으니 들어보시라』고 권유.
노대통령은 약 3분에 걸친 가벼운 인사가 끝나고 공식 사진사및 남북측 보도진들이 퇴장하자 곧바로 본격요담에 들어갔는데 노대통령의 연총리 개별면담은 오후 4시18분까지 정확히 15분간 계속.
이날 청와대 현관안에 들어서는 연총리의 모습은 긴장된 듯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으나 노대통령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 동안 차츰 여유를 찾는 느낌이었는데,노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각하께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중한 예의를 갖추는 자세.
이에앞서 연총리는 오후 3시51분 그랜저승용차에 홍성철통일원장관과 동승,청와대 현관에 도착했으며 노재봉비서실장ㆍ노창희의전수석비서관의 영접을 받은 뒤 현관안에 마련된 방명록에 한글로 「연형묵」이라 서명했고 다른 북측 대표들도 뒤이어 서명.
○…노대통령은 연총리와의 개별면담이 끝난 뒤 나머지 북한대표들과 우리측 대표들이 대기하고 있던 대접견실에 입장,뒤따라온 연총리의 소개로 북측 대표들과 일일이 악수.
북한측 대표들은 오후 4시19분 의전관계자가 『대통령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고 알리자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벽쪽으로 일렬로 섰는데,노대통령이 『반갑습니다』고 악수하자 목례로 답례.
노대통령은 이어 의자에 앉아 좌중을 돌아보며 『연총리를 비롯한 북측 대표단여러분,온 국민과 함께 여러분을 환영한다』고 서두를 연 뒤 『아울러 이곳 청와대에 오신 것도 정말 반갑고 환영해마지 않는다』고 인사.
노대통령은 지난 4일 연총리가 판문점을 넘어선 뒤 『45년간 넘어오지 못한 길이지만 넘어 보니 쉽더라』고 한 말에 동감을 표시한 뒤 『자주 만나면 안될 일이 무엇 있겠냐』며 『우리 세대에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민족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강조.
노대통령은 오후 5시5분까지 약 45분간 북측 대표단 일행을 접견한 뒤 청와대 현관앞에서 남ㆍ북측대표단 등과 함께 기념촬영.
노대통령은 연총리에게는 자개서류함을,여타 대표들에게는 카메라 한대씩을 선물.
다음은 노대통령과 북측 대표단과의 대화내용­.
▲노태우대통령=온 국민과 함께 북측 대표단을 환영하며 청와대방문을 반갑게 생각한다.
역사적인 총리회담에 관한 국민들의 관심은 매우 크다.
여러분들이 이 역사적인 회담을 35년간 계속된 분단을 종식시키고 영광된 통일을 여는 거대한 출발점으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 연총리가 판문점을 넘어올 때 『이렇게 쉽게 올 수 있었던 것을』이라고 한 말을 신문에서 읽었는데 남북이 서로 오가고 자꾸 만나면 해결못할 일이 없고,안될 일도 없다.
판문점에서 서울로 올 때 교통이 복잡해 대표단 차의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깜짝 놀라고 걱정했다. 다치신 분은 괜찮은가.
▲연형묵총리=괜찮다.
▲백남준대표=아무 일 없다.
▲노대통령=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얘기해 보시지요.
▲연총리=대통령께서 귀중한 시간을 내 따뜻하게 저희 대표단을 맞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
경애하는 김일성주석께서 노대통령을 만나면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의 위임을 받아 김주석님의 안부를 전한다.
고위급회담은 북과 남의 협의에 따른 것이고 김주석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김주석께서는 건강하고 공장이나 농장에 많이 나가서 인민을 만난다.
김주석은 7ㆍ4 공동성명에서 밝힌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에 따라 통일을 추진하기를 바라고 있고 북과 남이 제도가 다르지만 다른 제도를 지키면서 통일하는 길이 연방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주석은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해서는 안되고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서울에 올 때도 45년만에 처음 열리는 고위급회담인만큼 이 회담을 아끼고 이 회담을 통해 통일의 바탕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막상 남에 와서 대표들과 만나보니 인간적으로 가까워져 북과 남이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노대통령=김주석의 안부말씀에 대해 감사하다. 이번 회담을 보니 남과 북간에는 많은 문제에 대해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합의된 것을 실천해나가는 데 있다.
남북분단은 일제 36년보다 10년이나 더 지속되고 있다.
북방정책도 결코 북한을 고립시키거나 어려운 처지에 빠뜨리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처럼 북한도 미ㆍ일 등과 관계를 개선해 국제적인 통일환경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뜻이다.
▲연총리=대통령말씀을 김주석께 보고하겠다. 불신과 긴장해소가 가장 급한 문제다. 회담에서도 얘기했지만 유엔단독가입보류,구속된 방북인사 석방,팀스피리트중지 등을 남북 관계진전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회담이 진전되고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대통령께서 결단을 내려주시면 노대통령 임기중에 통일문제가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께서 밝히신 7ㆍ7선언도 잘 분석해 보았다.
▲노대통령=북한에 대한 세가지의 확고한 입장을 밝히겠다.
첫째 우리는 북한이 안정속에서 발전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중요하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에도 중요하다. 우리가 북한의 발전을 위해 도울 일이 있으면 지원하겠다.
둘째 남북간에 이해와 신뢰를 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셋째 우리는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이해하고 합리적이며 실현가능한 북한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남는 물자를 북에 보내고 우리가 필요한 자원을 멀리서 사오지말고 북에서 사오면 좋을 것이다.
(김정우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을 가리키며) 이점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김 부부장=앞으로 조건이 잘 맞아서 그런 관계가 발전되기를 바란다.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교역이 이루어지면 모두 혜택을 받을 것이다.
▲연총리=이런 말씀도 김주석께 잘 보고하겠다. 북한에서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인력이 달려 지하자원을 다 개발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
앞서 말씀드린 시급한 세가지 과제에 대해 정치적 결단을 내리도록 잘 고려해주기 바란다.
▲노대통령=남북회담의 진전을 위해 여러분들이 진지하게 노력해 달라. 구속자문제에 대해 얘기하겠는데 북에서 온 당신들보다 대통령인 내가 그들을 더 사랑한다.
3박4일의 일정이 짧은 것 같은데 다음에 오면 더 오래 머물러 지방도 내려가보고 해 달라. 이 지구상에서 냉전체제로 분단된 유일한 나라로 우리가 남을 수 없다. 여러분들이 통일을 향한 위대한 업적을 남겨달라.<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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