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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사회주의 열기 식고 실용적 이상향 추구|해방 신학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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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해방신학이 행동과 이론 사이를 오가는 순환교통으로 제시, 강조하는 변혁을 위한「실천」(Praxis)을 통해 유물론적 혁명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마르크스의 11번째 논문「현대적 진리」를 긍정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좌경이라는 비판을 수없이 받아온 해방신학자들은 최근 해방신학의 출발전제였던 70년대 라틴 아메리카「상황」이 이제 많이 바뀌어 새로운 90년대 상장으로 진입하는데 따른 적극적인 변신을 시도하면서「실용주의적인 유토피아」를 모색. 과거 사화주의 선망의 열기를 식히고 있다. 해방신학비판 저서까지 낸 페루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리카르도 두란 주교와 라틴 아메디카 해방 신학의 산실인 페루 구티에레즈 신학연구소·부소장 파블로 타이 홉신부를 각각 만나 사은 논란을 빚어온 해방신학의 시와 비를 들어봤다.

<획일적 평등은 있을 수 없는 일-리카르도 두란 교주<페루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페루의 현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페루가 이 같은 위기에 몰리게 된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내재돼있다. 우선 중남미 각국이 공통적으로 안고있는 왜곡된 포플리즘(민중인기주의)과 노조의 문제다.
인구는 많은데 생산력은 결여돼 있고 국가재정은 뻔한데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무리한 복지정책을 시행, 국가재정을 바닥내는 위정자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명분만 그럴듯하게 내세울 뿐 실질적으로는 국민을 현혹시키고 오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페루의 특징적인 상황은 무엇인가.

<통제불능의 현실>
▲무엇보다도 인간 이하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인디언들이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이른바 케추아족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의식주 등 기본적인 생활 여건에서 뿐 아니라 교육·의료·서비스 등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은 유목민들처럼 한곳에 정착하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고 있다. 다시 말해 통제불능의 내부적 이민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페루의 유명한 해방신학자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신부는 인디언들을 비롯한 가난하고 착취당하며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교회가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물론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해방신학이 근거로 삼고있는 68년 제2차 메데인 주교회의(CELAM)는 교회의 사목 사업과 사회적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회의 사회참여가 정치적인 참여를 허용한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빈민아동과 극빈자를 위한 무료급식과 같은 순수한「빈민구제사업」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신학이 정치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는 말인가.
▲분명히 그렇다. 교회가 극빈자 구체활동을 한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인 선전효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정치체제에 상관할바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인간자체를 구제하는데 전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체제 불관여>
유럽에서 마약중독자가 많은 것은 그들의 생활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의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루에서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교회가 특정 이데올로기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해방신학은 궁극적으로 계급이 없는 사회를 유토피아로 지향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회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해방신학이 추구하는 획일적인 평등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이는 마르크스주의를 가장 먼저 도입해 70여년간 실시한 소련에서조차 최근 페레스트로이카를 해결책으로 내건 사실에서도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
-해방신학이 방법론에 있어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해방신학의 오류 중 가장 큰 오류는 사회참여의 방법상의 오류다. 해방신학에서 주장하고 있는 사회적 투쟁은 계급 투쟁적 성격을 띠게 마련인데 이는 이미 수십년 전 독일에서 실패로 끝난 점을 보더라도 큰 오류를 범하고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오히려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해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오류는 보다 분명해진다.
특히 니카라과 선거에서 산디니스트들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패한 점이나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과 중국 등이 개방·개혁정책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새삼 인식해야할 것이다.

<폭력투쟁엔 반대>
-해방신학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해방신학이 가난한자, 억압받는 자, 그리고 착취당하는 자들의 구제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공산주의식 유토피아나 투쟁방법론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성직자들이 폭력을 수반하는 투쟁에 참여하는데 대해서는 결단코 반대한다.
-그렇다면 해방신학에 대한 교황청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분석과 방법으로 접근하는 해방신학은 반대하고 있으며「의식의 해방」에는 다소의 이견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해방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해방이어야지 마르크스에 의한 해방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은 인간표현…상황따라 변화|억압받는 현실 타개 위해 탄생-파블로 타이 홉 신부<구티에레즈 신학연구소 부소장>>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해방신학이 행동과 이론 사이를 오가는 순환교통으로 제시, 강조하는 변혁을 위한「실천」(Praxis)을 통해 유물론적 혁명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마르크스의 11번째 논문「현대적 진리」를 긍정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좌경이라는 비판을 수없이 받아온 해방신학자들은 최근 해방신학의 출발전제였던 70년대 라틴 아메리카「상황」이 이제 많이 바뀌어 새로운 90년대 상장으로 진입하는데 따른 적극적인 변신을 시도하면서「실용주의적인 유토피아」를 모색. 과거 사화주의 선망의 열기를 식히고 있다. 해방신학비판 저서까지 낸 페루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리카르도 두란주교와 라틴 아메디카 해방 신학의 산실인 페루 구티에레즈 신학연구소·부소장 파블로 타이 홉신부를 각각 만나 사은 논란을 빚어온 해방신학의 시와 비를 들어봤다.
-남미의 해방신학은 불의한 상황 극복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루의 해방신학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해방신학은 하느님의 섭리에 근거하여 불의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하느님과 하느님의 자녀들 사이의 언어이자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해방신학은 모든 분야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부의 정책 같은 갓이 될 수 없다.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기초 공동체를 설립해 가난하고 억압받으며 착취당하는 자들을 조직하고 생각하게 하며, 또 스스로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돕고 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에 대한 로마 교황청의 직·간접적인 통제가 강화된 듯한 인상인데.
▲그렇다. 교황청은 페루신부 70여명이 설립한 신학대학원(Instituto Superior Estudios Teologicos)에 대해 로마 교황청에 등록하라는 명령을 수차례 내려보냈으며 대학원이 이에 불응하자 대학원장 교체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몇 가지 오해 겹쳐>
-교황청이 이처럼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
▲우선 교황청이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사상적으로 공산주의와 가깝다는 것이고 이는 전통적인 신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이론적인 이유 외에도 여러 가지 오해가 복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70년대 들어 해방신학이 제3세계에 공통된 현상으로 대두된데 대해 바티칸 측은 여러 차례에 걸쳐 우려를 표명했으며 이 과정에서 니카라과의 한 신부가 결혼한 사실을 꼬집어 해방신학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섰다. 물론 니카라과 신부의 경우는 분명한 실수였다.
또 하나는 해방신학이 전통적으로 신학의 중심지인 유럽이 발원지가 아니라 중남미라는 제3세계에서 시작됐다는데 대한 일종의 불쾌감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지난 65년 제2차 바티칸 공회가 채택한 현대 사목 헌장에서 현실구원을 용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바티칸이 이를 이단시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 제국주의적 발상이라 보지 않는가.
▲제2차 바티칸 공회는 교회가 세속에 문을 개방했고 이를 토대로 68년 메데인 주교회의에서 해방신학이 탄생케 됐다.
그러나 바오로 6세를 거쳐 바오로 2세가 교장에 즉위하면서부터 바티칸의 태도는 돌변했다.

<불평등에서 해방>
-일부 해방신학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 변혁을 위한 정치경제체제로 생산수단을 공 유하는「사회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해방신학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정치경제체제는 무엇인가.
▲해방신학은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정치경제체제를 제시하고 있지 않으며 고통받고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정책들이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해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첫째, 사회 정치적인 면에서 착취와 불의, 그리고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둘째로는 인간적·정신적인 차원에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기주의로부터의 해방이며, 셋째는 종교적인 차원인데 예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것처럼 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해방신학의「해방」이 강조하는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면, 그리고 종교적인 측면은 이야기하지 않고 사회 정치 체제적인 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데서 오해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과격한 해방신학자들은 사회변혁을 위해서라면 어떤 폭력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등 혼선이 많은데.
▲해방신학의 기조는 억압자들이 행하는 불의한 폭력으로부터 피억압자의 생명을 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다만 유일하게 예외로 인정하는 것은 독재자의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러나 폭력 자체는 나쁜 것이다. 우리는 페루의 게릴라단체인 센데로 루미노소의 정부군에 대항키 위한 폭력 사용에도 반대하며, 게릴라를 탄압하기 위한 군부의 폭력도 배격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폭력만큼 나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동구권의 몰락과 니카라과에서의 산디니스트의 패배 등에 대해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어떻게 평가하고있나.
▲해방신학은 정치사회체제가 아니다. 우리는 정치사회체제를 선택할 뿐이다. 일부 해방신학자들이 사회주의를 선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부분>
세계는 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70년대 상황을 문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90년대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결국 해방신학은 현실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해야할 것이다.
-해방신학이 갖는 지역적 한계와 이데올로기적인 성격 등으로 인해 결국 유행으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견해도 있는데.
▲신학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신학은 인간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방신학은 신학을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으며 착취당하는 현실상황의 타개를 위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상황」이 변하면 해방신학도 변하고 개선되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글 이은윤 특집부장 문일현 기자, 사진 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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