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초만원,이대로 방치할건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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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구분산 역행하는 정부 시책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4분의 1이 서울에,그리고 절반에 가까운 41.5%가 서울을 중심한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다 한다.
이처럼 인구가 한곳에 몰려 살게되는 데 따르는 폐해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주택부족ㆍ교통난ㆍ환경오염ㆍ교육시설부족ㆍ치안유지의 난점등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주요 문제들이 모두 인구집중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며 국가전체의 정책과제인양 떠들어대는 문제들이 사실은 수도권문제에 모두 직결되어 있는 형편이다.
사회간접시설의 부족으로 경제활동에 병목현상이 생기고 있으니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나 부지확보가 어려우니 운동장없는 학교를 지어야겠다는 궁색한 발상이 나오는 것도 수도권 인구집중에서 비롯된 것이며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지방재정의 자립도가 커다란 걸림돌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수도권 인구집중현상은 어떻게 보면 이 나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기형적 모습을 강요하는 원흉이라 할 수 있으며 국가경영에서도 최대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이 문제가 새삼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산업구조 고도화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70년대이래 이 문제는 언제나 정부의 중요한 정책과제로 거론돼 왔고 심심치않게 수도권 인구분산책이라는 것이 발표되기도 했다.
지금도 도시 영세민의 지방이주정책이 실시중에 있고 서울에 있던 담배인삼공사본사가 신탄진으로 옮겨앉은 것도 정부의 이같은 정책의 결과다.
그러나 어떻게 된 셈인지 수도권 인구는 계속 늘기만 해 70년에 전체인구의 28.8%이던 수도권 인구비중이 80년에는 35.5%로 늘었고 이번 경제기획원 조사에서는 다시 그 비율이 41.5%로 끊임없는 상승세만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 낙후를 면치 못하게된 농민들이 돈벌 기회가 많고 편익시설이 더 잘 갖추어진 대도시,특히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것은 불가피한 추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책임의 대부분이 이같은 사태를 방치한 정부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 인구집중에 대응해온 그동안 정부의 자세는 사태를 방치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조장했다는 편이 옳을 지 모른다.
인구가 몰려 집이 모자라니 집을 짓고 유통시설이 부족하니 대형 백화점을 늘리고 그래도 인구가 넘쳐흐르니 서울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하면 된다는 식의 극히 안이하고 단세포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온 게 오늘과 같은 엄청난 비대증상을 가져온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이같은 자세에 조금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도권 인구집중에 대한 경제기획원의 통계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로 같은날 서울시는 지하철 역주변에 고밀도지역을 개발,상업ㆍ업무ㆍ주거 등의 여러기능을 갖춘 고층건물을 중점 건설하겠다는 이른바 「2000년대 서울」 도시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이 계획은 89년말 1천52만명의 서울 인구가 2000년에는 1천4백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상정하여 만들어진 것이라한다.
서울시의 입장으로서는 밀려드는 인구를 수용할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발표는 정부가 인구집중 억제정책을 포기했거나 나아가 조장키로 했음을 시사하는 인상까지 풍기는 것이다.
정부의 수도권인구 조장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발상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부는 기술인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이공계 대학의 입학정원을 1만2천명 늘리되 수도권학교 졸업자 선호경향을 감안,그 대상 학교를 기업측의 희망에 따라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제한하려 하고 있다 한다.
이 문제는 수도권소재 대학으로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상공부와 경제기획원의 주장에 대해 건설부와 문교부가 제동을 걸어 이미 2개월째 부처간에 합의를 못보고 있는 모양이다. 인구집중의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가 교육시절의 서울집중 때문임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어째서 이런 방침을 내세우고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진행중인 세제개혁안 마련에서도 기업의 첨단 인력ㆍ기술개발에 세제상 혜택을 주기로 한 것까지는 좋으나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기업의 지방분산을 유도할 수 있도록 지방에 대해서는 우대조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제시됐었으나 재무부는 이를 아무런 해명도 없이 묵살,인구분산에 대한 의지가 결여돼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우루과이라운드의 출범을 앞두고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농어민대책에서도 농민들이 지방에 거주하면서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이른바 정주권 설정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대책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농민들이 생산하는 과일로 만드는 과실주의 주세를 대폭 올리겠다는 방안만이 나와 있다.
청와대에 설치됐던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이 슬그머니 없어진 것은 현정부의 인구문제에 대한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지방자치제 실시라는 중요한 정치적 과제를 앞에 놓고 있다. 그러나 도의 재정자립도가 46.2%,군은 28.5%에 불과한 실정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불가능하다.
주택ㆍ학교ㆍ도로부족 등 당면한 모든 현안문제도 수도권 인구집중현상을 그대로 두고는 문제로 문제에 답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자원배분의 왜곡현상을 심화시킬 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기업과 학교ㆍ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통해 인구집중을 막고 지방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순리적 방법이다.
정부의 보다 거시적 자세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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