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언론의 사시/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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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방언론에 대한 아랍인들의 불신은 미국에 대한 그들의 불신만큼이나 깊고 두껍다.
평소에는 가장 공정한듯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제국주의적 편견을 여지없이 드러낸다는 게 아랍인들의 서방언론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자 불만이다.
한국에 대해 비교적 잘 안다고 자부한 요르단의 한 관리는 『미국의 압력때문에 한국이 어쩔수 없이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에 동참한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한국언론 역시 미국언론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서방언론의 편파적 보도때문에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요르단의 한 신문기자는 이번 사태를 보는 양측의 시각을 균형있게 보도함으로써 양쪽 지도자들이 냉정을 회복,이성적인 해결방안을 찾도록 유도해야할텐데 한쪽입장만을 지나치게 강조,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서방언론의 보도자세에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만일 석유라는 경제적 이해가 걸려있지 않았더라면 미국은 이번 사태에 그처럼 신속하고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곳 사람들은 믿고있다. 미국의 무력개입은 「제국주의적」 이익 유지를 위한 것이지,미국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국제질서나 국제평화는 한갓 구실에 불과하다는 게 그들의 지적이다. 이곳의 다른 한 언론인은 미국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이지,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23년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을때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미국이 지금은 신경질적일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치게해서는 안된다는 미국내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의 압력과 로비때문이라는 것이다.
서방언론은 아랍인들이 이번 사태를 보는 이러한 시각의 바탕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은 채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사담 후세인 개인이나 서방인질문제ㆍ군사문제 등 주변적인 것에 보도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한편 사태를 점점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이곳 사람들은 주장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서방기자들이 짙은 전운이 감돌고있는 중동각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자국의 이익과 아랍 민족주의간의 엄청난 괴리를 눈으로,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요르단 암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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