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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외몽골-말 젖 발효시킨 「애락」이 주식|식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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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외몽골인들은 곡식을 먹지 않는다. 그들은 곡식뿐만 아니라 야채나 과일도 먹지 않고 물고기도 먹지 않는다.
외몽골인들의 의·식·주 분야를 조사하기 전까지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사는지 몹시 궁금했다. 내몽골에는 쌀은 없고 밭에 보리·밀·조·수수·강냉이를 심어 곡식을 먹지만, 외몽골에는 절대 강우량이 부족한데다 기온이 낮고 건조해 밭곡식은 고사하고 상추 한 이파리조차 키워볼 수 없는 곳이었다.
외몽골의 사막 북쪽에 군데군데 푸른 초원이 있지만 그 초원의 풀이라는 것이 잎이 가늘고 한 뼘 남짓한 길이인데 그것도 땅에서 듬성듬성 나있는 것을 보면 여기는 그저 이런 풀 밖에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기후인 것 같았다.

<아주 척박한 기후>
울란바토르시 동쪽에 있는 두르흐니호르라는 곳의 초원 기슭, 유목민들의 둥근 「겔」(이동식 텐트)이 여남은 채 몰려 있어 마치 집단촌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중년이 넘어 보이는 부인 하나가 손잡이 끈이 달린 물통 하나를 들고 겔 안에서 나왔다. 대충 인사를 나누고 그의 겔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여인의 이름은 아라크흐차이고 55세라고 했다. 여인은 방금 말 젖을 짜러나가는 참이었다.
이 여인네는 가족이 여덟이고, 말 60마리와 소 8마리를 가지고 있으며 양은 없다고 했다. 여덟이나 되는 가족이 먹고 사는 주식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주식 부식 할 것 없이 말젖을 발효시킨 「애락」 한가지만 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젖을 짜다가 애락을 만드는 과정을 알아보기로 했다.
애락을 만드는 방법은 말젖을 짜다가 「후루」에 넣고 「부루루」로 저어가며 이틀 동안 발효시킨다. 후루는 커다란 양가죽을 통째로 기름을 빼지 않은 채 뒤집어서 만든 다섯말이나 실히 들어갈 수 있는 가죽부대인데, 말장 두개를 세워 나무를 가로 걸쳐 놓고 땅바닥에서 50㎝쯤 뜨게 달아매고 여기에 말젖을 짜다가 담아놓는다. 후루 속에서 애락이 되기 전의 것을 「삼」이라 한다. 그러니까 삼이란 발효되지 않은 말젖을 가리키는 말이고 삼을 그대로 직접 마시지는 않는다. 부루루는 길이 1m가량의 나무막대기 한 끝에 사방 15㎝ 가량의 나무판자가 T자형으로 붙은 것인데, 한국에서 아궁이의 재를 긁어낼 때 쓰는 고무래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다. 이와 같이 생긴 부루루로 후루 속에 담겨있는 삼을 하루에 5천번에서 7천번 가량 젓는다.
부루로 젓는 방법이 따로 특별한 격식이 있지는 않고 가족이 한 사람씩 5백회에서 l천회씩 젓는다. 젓는 것도 가족 수대로 연속해서 젓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이 젓고 나면 두서너 시간쯤 쉬었다가 또 다른 사람이 저어가며 이틀동안 놓아두면 외몽골인들이 주식으로 마시는 애락이 된다. 그러면 후루 속에 있는 애락을 퍼다가 겔 안에 놓아둔 독에다 옮겨 부어놓고 가족들이 이것을 퍼서 마신다.

<새콤하고 우유 맛>
후루 속에서 발효된 애락은 한번에 다 퍼내는 것이 아니고 반쯤 퍼서 겔 안으로 가져가고 반은 그대로 남겨둔 채 새로 짠 말젖인 삼을 여기에 추가로 넣고 종전의 방법대로 또 가족들이 부루루로 젓는다. 그래서 후루 속에는 매일 약 네댓말 가량의 삼이 있고 겔 안의 독에도 너더댓 말 정도의 애락이 비축되어 있게 된다. 그래서 후루 속에 매일 말젖을 짜 붓고 저어 그것을 겔 안의 독에 퍼다 부어 애락이 독 안에서도 비축된 채 발효된다.
애락의 맛은 우유맛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새콤하면서 주기가 돋아 약 5%가량의 알콜성분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만든 애락을 한 사람이 하루에 3ℓ쯤 마시고 많이 마시는 사람은 하루 5ℓ쯤 마시기도 한다.
우기인 여름철 5개월 동안은 말이 초원의 싱싱한 풀을 많이 뜯어먹고 젖이 잘 나서 이곳 사람들은 이 시기에 주로 애락을 먹고, 초원의 풀이 마르는 건기 (겨울철)에는 애락으로부터 술을 만들고 남은 잔류·물로 만든 「아로움」을 비축해 두었다가 양이나 소·말고기와 함께 먹는다.
아로움은 배가 우묵하게 휜 평평한 철판 솥에 애락을 넣고 밑에서 열을 가해 끓여서 수증기가 증발되고 나면 솥 밑바닥에 눅눅한 버터나 치즈 같은 것이 남는데, 이것을 큰 스푼 같은 것으로 한 덩이씩 크게 떠서 늘어놓아 햇볕에 말린 것이다. 이렇게 햇볕에 이틀쯤 말리면 건조한 날씨에 수증기가 모두 증발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말라 몇 달을 두어도 변질되지 않는다.
이곳에는 또 「아르키히」라는 술이 있는데 마치·한국의 소주와 흡사하고 그 술의 제조 방법까지도 과거에 한국의 농촌에서 막걸리를 증발시킨 수증기를 액화시켜 소주를 만들던 것과 같다. 외몽골에서는 애락을 좀 더 발효시켜 알콜 농도가 높아진 것을 솥에 넣고 끓여서 수증기를 액화시키고 이것을 단지 같은 그릇에 널어 땅 속에 묻어둔다. 그러면 이것이 더 발효되어 알콜 농도가 40도까지 되는 소주와 같은 아르키히라는 술이 된다.
외몽골 유목민들의 의·식·주를 조사하기 위해 여러 곳의 유목민 겔을 방문했는데 가는 곳마다 으레 약속이라도 한 듯 빠짐없이 애락을 한 대접씩 내놓고 마시라고 권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꾸밈없는 마음씨를 엿볼 수 있었다.

<말 없으면 못살아>
이렇게 애락을 권하는 데에는 아마도 그들이 주식으로 삼고 늘 마시는 애락 밖에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먼 타국에서 온 귀한 손님에게 겔 안에 항시 비축되어 있는 애락을 내놓는 것 같았다.
이곳 유목민들은 주식으로 말 젖 (애락)을 먹고, 교통 수단으로 말을 타고 다니면서 또 그들의 주택이라 할 수 있는 겔을 옮겨 갈 때도 말을 이용해 운반하기 때문에 말이 외몽골 유목민들의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유일한 생활수단이 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 관계 때문인지 외몽골의 초원에는 특히 말이 많고 소나 양은 말에 비해 그 수가 훨씬 적어 조랑말만 50∼70마리 가량 가지고 있는 유목민들이 많다. 외몽골에서는 아이가 네살만 되면 남녀 가릴 것 없이 혼자 말을 타고 고삐를 잡는 것을 보면 말이 그들의 생활에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가 짐작할 수 있다.
외몽골 유목민들이 말 (마)을「  르」라고 발음해 귀가 번쩍 띄었다. 두르흐니호르에서는 중년층 남녀로부터 10대의 소년 소녀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에게 말의 명칭을 몽골어로 반복해 발음하도록 부탁했다. 어떻게 하면 「머루」같이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하면 「모르」같이 들리기도 하면서 그러나 「머」도 아니고 「모」도 아닌 모와 머의 중간 발음, 그리고 「루」도 아니고 「르」도 아닌 루와 르의 중간 발음이다.

<발음 제주와 비슷>
또 천천히 세게 발음시켜보면 끝에 약간 몽골 특유의 호음이 나는 듯 하기도 하여 제주도에서 말을 「 」이라고 부르는 것과 흡사한 발음이 되었다. 그래서 제주도의 「말」발음이 외몽골의 「말」발음과 흡사하여 몇 번인가 귀를 의심하게 했다.
우리 나라 증세의 「、」음이 소실되면서 「아」음만 남아 「 」이 「말」로 변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말」이라는 명칭이 외몽골의 「 르」 (마)와 일련의 맥이 통한다고 생각되어 언어에서도 서로 상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외몽골의 유목민들이 주로 말젖을 먹으면서 육식을 하는데 비해 내몽골인 들은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양 (산양) 젖을 유다로 만들어 밀가루와 조를 곁들여 먹으면서 육식도 겸한다. 그런 관계 때문인지 내몽골에서는 초원이나 풀이 듬성듬성 난 사막 지대에 특히 양떼들이 많고 양에 비해 말은 극히 적게 보였다. 내몽골에서도 소젖·양젖·말젖 등을 발효시켜 끓여서 수증기를 액화시켜 소주 같은 술을 만드는데
이렇게 액화시킨 것을 단지에 넣어 땅 속에다 묻고 1년에서 5년간 두었다 파내면 좋은 술이 된다. 이렇게 만든 술을 「수웨르」 (젖 술이란 뜻)라 하고 말 젖으로 만든 술은 「메레수헤레그」 (말 젖 술이란 뜻)라 부른다. 식생활에서 외몽골인들이 전통적인 유목으로 말 젖인 애락을 주로 마시는데 비해 내몽골인들은 농경의 정착생활 단계로 접어들어 유차와 함께 곡식을 먹는다.
내몽골인들은 이제 중국 화해 토막집에서 살며 집단농장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내·외몽골은 이렇게 식생활까지 판이하게 달라졌다. 글 김태곤 교수 (경희대·민간 신앙) 사진 주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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