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화가 이우환씨 3년만에 귀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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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씨와 함께 세계적으로 호평 받고 있는 재일 한국화가 이우환씨 (54·다마대 교수)가 3년만에 대규모 전시회를 28일부터 9월6일까지 현대화랑과 갤러리 현대, 그리고 인공 갤러리 등 3곳에서 동시에 연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7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대표적 회화작품 50여점과 대형 조각 작품 8점이 전시되는 회고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지난78년 현대화랑에서의 첫 귀국전 이후 10여년간의 변모 과정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의 최근 회화 작품들은 종전의 질서의 세계에서 혼돈의 세계로 크게 변모했다.
점과 선들이 질서정연하고 규칙적으로 배치되던 표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획이 난무하는 흐트러짐을 보이고 있다.
작가 자신은 이를 작가의 표현의지와 개입이 최대한 배제되고 회화 행위 자체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과 선을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냉정하고 이지적으로 표현하던 그는 이제 외부 세계 (공간과 시간)와 접합되면서 자신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스런 표현결과를 낳고 있다.
『바람과 함께』라는 제목의 이 연작들은 종전에 비해 크게 율동 치는 듯한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누구든지 『뭔가 알기 어렵지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을 느낀다』고 말하기 십상이다. 그림의 밑바탕에 독특한 호흡과 리듬이 깃 들어 있기 때문이다.
회화의 원초적 개념과 행위에 대한 작가의 이같은 탐구는 조각 작품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이씨는 『엄밀한 의미에서 조각은 내 작품이 아니다』고 단언할 정도다.
작가의 의지와 손질은 최소한으로 억제되어 설치된 철판과 돌덩이를 스스로의 형태와 조화로 독특한 느낌과 성격을 드러낸다. 더욱이 이 조각 작품들은 전시 공간에 따라 이같은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씨는 바로 이같은 탐구와 실험으로 70년대 일본의 소위 「모노 (물)파」운동의 중추적 작가로 활약해왔다.
이씨는 지난 56년 서울대 미대 재학 중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대 철학과 (미학 전공)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으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69년『사물의 원초적 실체를 캐내야 한다』는 내용의 미술 평론 『사물에서 존재로』를 발표, 일본 화단에 충격을 던지면서 그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후 그의 탁월한 논리와 독특한 작품으로 일본 현대미술계의 선두주자가 되었으며 70년대 이후 유럽 미술계에서도 호평 받고 있다.
프랑스의 퐁피두 미술관·뉴욕 근대 미술관·네덜란드의 크뢸러뮐러 미술관·베를린 국립미술관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20여개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제 미술계에서 이씨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의 이같은 창작·이론세계는 국내 현대미술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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