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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어·수학·컴퓨터까지…엄마가 배워서 가르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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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달 21일 오후 중앙대 산업 교육원 전산 교육실의 분위기는 매우 진지했다. 「학부모를 위한 컴퓨터 강좌」에 참가, 11주간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출석, 컴퓨터와 씨름해온 수강생 38명에게 산업 교육원측이 「컴퓨터 교육 과정을 수료했음」을 증명하는 총장 명의의 수료증을 한 사람씩 호명하며 전달했다.
컴퓨터의 입문 과정인 MS도스에서부터 산수·영어·사회 등 학습용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법과 초·중·고 컴퓨터 교과 과정 지도법, 가계부 정리, 문서 정리와 편지 작성 등 워드프로세서 사용법까지를 익히도록 한 이 컴퓨터 강좌에는 30대 중반∼40대 주부들이 주축을 이뤘다.
한샘컴퓨터학원에서 MS도스·워드프로세서·베이직까지를 마친 김현녀씨 (37·서울 방배동)는 『우리와는 달리 다음 세대는 컴퓨터시대에서 살게 되므로 이를 일찍부터 익혀야할 것으로 생각해 국민학교 5학년생인 딸을 컴퓨터학원에 보내려고 했으나 새벽반 밖에는 적당한 시간이 없어 자신이 대신 배워 딸에게 가르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이처럼 「자신이 직접 배워 자녀들을 가르치겠다」는 경향이 주부들 사이에 고조되고 있다. 주부란 밥짓고 빨래하는 「가족들의 뒤치다꺼리」만을 맡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발전을 위해 직접 교육에 참가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같은 새로운 주부 문화는 80년대 초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과외 금지 조치를 취하자 어머니들이 대신해 학원에 등록, 교과 내용을 배워 자녀들의 학과를 지도하는 일종의 「변칙 과외」로부터 비롯됐다.
80년대 중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어머니 산수 교실」과 「어머니 영어 교실」을 운영했던 한국 부인회의 배성심 실장은 『과거에 어머니들이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과 요즘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의 차이가 엄청나 「국민학교 4학년만 돼도 아이가 산수 숙제를 물어 볼까봐 겁난다」는 어머니들이 많다』면서 『자녀의 성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로부터 「무식한 엄마」로 취급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과외 금지가 거의 해제되면서 학과 공부보다는 컴퓨터·동화 구연 등을 배워 가르치려는 쪽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서울 목동 청소년 회관에서 구연동화 강사를 맡고 있는 조춘실씨는 『어린이들의 동화 구연대회를 위해 어머니들이 동화구연반에 등록, 테크닉을 배워 가는 이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주부들이 직접 배워서 자녀들을 지도함으로써 「유식한 엄마」(?)가 되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장점은 자녀들과 공통된 화젯거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상수 국교 어머니회를 통해 2개월 과정의 컴퓨터 교육을 받았다는 안형채씨 (38·서울 상계동)는 『아이들은 컴퓨터를 배워 컴퓨터 언어를 써가며 얘기하는데 자신은 문외한이어서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기 일쑤였다』며 『아이들을 가르쳐 줄 정도로 실력이 붙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무얼 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게되고 컴퓨터에 관한 의견을 서로 나눌 수 있어 가족간의 유대가 더욱 돈독해진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샘컴퓨터학원의 이명희 강사는 『살림만 하느라 공부와는 멀어졌던 주부들이 컴퓨터를 배운 뒤 자신감이 생겼다는 여성들이 많다』면서 배워서 가르치는 새로운 주부 문화가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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