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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PPING] 명품, 장인의 '손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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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가죽도 숙성한다=에르메스 코리아의 우현주 마케팅부장은 프랑스 파리 에르메스 본사를 방문할 때마다 에르메스의 정성에 놀란다. 한번은 본사 사무실에 놓여 있는 낡은 가방 두 개를 보고 "어떤 용도로 쓰이는가"라고 본사 직원에게 물었다. "본사 오너 일가 딸이 시집가거나 며느리를 볼 때 줄 선물"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이어 본사 직원은 "손잡이가 너무 낡아 이 부분만 교체하려 한다"며 잠금장치 줄의 뒷면을 펼쳤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살펴 그 제품을 만든 장인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그 직원은 "회사 내에 연도별로 쓰인 가죽이 보관돼 있는데, 손잡이를 수선할 때 이 가방을 만든 장인이 해당 연도의 가죽을 찾아 고친다"고 설명했다.

토즈에는 원자재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가죽담당 전문 부서도 있다. 이 부서는 송아지 가죽 원피를 사들이는 일에서부터 염색하는 과정까지 책임진다. 구입한 가죽은 같은 색상을 내기 위해 2~3년간 염료를 입히고 숙성시키는데, 그 과정이 마치 와인을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이런 과정을 거친 가죽이라도 장인들의 눈에 안 들면 가차없이 폐기된다. 신동한 바이어는 "까다로움이 오히려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장인은 명품의 힘=명품 업체들의 공통점은 장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구두 브랜드 아 테스토니(A. Testoni)는 장인 중시 경영으로 유명하다. 공정마다 장인들이 한 가지 일만 한다. 심지어 여섯 살 때 원자재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한 장인은 30년 동안 가죽 자르는 일만 한다. 이 회사는 1992년 3년제 장인학교를 설립해 기술 전수에도 열심이다. 에르메스 역시 본사 안에 '에르메스 가죽 장인 학교'를 설립, 현재 80여 명의 수련생이 일을 배우고 있다. 이곳에서 3년간 수업을 받은 뒤 2년의 실습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장인 대접을 받는다. 스위스 구두 브랜드 발리(Bally)의 장인들은 무려 35만여 개의 발 모양 샘플을 갖고 있다. 지역이나 인종에 걸맞은 구두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발리 구두는 외국에 나가 사는 것보다 자국에서 사야 더 잘 맞는다고 한다. 한 켤레의 발리 구두가 나오기까지 고급 제품의 경우 공정이 220개에 이른다. 일반 수제 구두가 30~40개의 공정을 거치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 트렌드 컨설팅 업체인 아이에프네트워크의 김해련 대표는 "기존 왕실.귀족사회에 공급되던 명품이 대중화하면서 각 업체가 내세운 게 바로 장인정신"이라며 "장인정신이 깃든 제품만이 명품 반열에 오른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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