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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립학교 '분리 수업' 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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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30여 년 동안 남녀 공학이 원칙이던 미국 공립학교가 최근 들어 남녀 분리 교육으로 선회하고 있다.

미 교육부는 24일 남녀 분리 학교.학급 운영 여부 등과 관련해 각 지역 교육위원회에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키로 했다. 2년여의 검토 끝에 이뤄진 결정이다. 각종 연구 결과 남녀 분리 교육이 학업 성취도와 출석률 등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 공립학교는 1972년 제정된 '성차별 교육 금지' 규정에 따라 남녀 공학을 원칙으로 운영돼 왔다. 이에 따라 일부 사립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남녀 학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왔다. 다만 공립학교에서도 남녀를 나눠 가르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는 성교육이나 신체적 접촉이 필요한 구급 교육 등은 남녀분리 수업이 예외로 인정됐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 일부 학생은 동성 친구들로만 이뤄진 상황에서 수업을 받을 경우 학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별로 점수 차이가 있는 취약 과목의 경우 동성끼리 수업하면 집중 강화 효과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여학생은 취약 과목인 수학과 과학에서 동성끼리 수업을 듣는 경우 남학생들과 함께할 때보다 학업 성취도가 특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남학생은 어학과 문학 과목에서 분리 수업의 효과가 두드러졌다.

이 같은 실증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자 미 교육부는 남녀 분리 교육을 받을지를 지역 교육위에 재량을 줘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이번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남녀가 함께 공부하길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공학 학교 설치와 수업 운영도 함께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남녀 분리 수업을 하는 공립학교는 그간 꾸준히 늘었다. 98년 미국 전체에서 불과 4개 과목만이 남녀 분리 수업이었던 게 올해 228개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여성운동단체들은 "남녀 분리 교육은 결국 2등 시민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극력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 법무부는 남녀 분리 학교나, 남자나 여자 학생 한쪽만 듣게 하는 단성(單性) 수업이 성적 차별을 금지한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묻는 교육부 질의에 "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여 단성 학교는 머잖아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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