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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화랑이 버젓이 「미술관」행세" 미술관법 제정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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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의 화랑가를 둘러본 외국인들은 두번 놀란다. 서울에 의외로 「미술관」이 많은데 놀라고, 그 미술관이 일반적인 화랑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국내 미술계에선 이처럼 미술관(Art Museum)과 화랑(Gallery)이 명확한 개념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20∼30평의 전시공간에 작품 몇 점 걸어놓고도 미술관이란 간판을 내걸고있다.
서울시내 1백여개 화랑가운데 미술관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20여 군데가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미술관 본래의 기능과는 동떨어져 전시장을 대관하거나 기획·초대전들을 통해 작품을 거래하는 일반 상업화랑이다.
미술관이라면 일반적으로 『많은 미술품을 소장하고 넓은 전시장을 갖춰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며 자격있는 학예직원을 확보해 조사·연구활동을 펴고 유능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등, 일반인들에게는 미술가치 향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들에게는 창작의욕을 높이는 구실을 해야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미술관 법이 없기 때문에 미술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미술관」명칭 사용에도 아무런 제한과 규제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개인의 미술관 설립·운영은 박물관법의 준박물관 설치 기준에 준하도록 되어있다. 이 법에 따르면 준박물관은 ▲1백점 이상의 자료를 소장해야 하고 ▲1백평방m 이상의 전시실·수장고·작업실을 확보해야 하며, 또 ▲연구실·자료실·독서실·강당 중 1개 시설 이상이 있어야 하고▲2인 이상의 학예연구직원을 두어야 한다.
이 법에 따라 설립된 미술관은 호암·워커힐·한국·신천지·토탈미술관 등 10곳도 채 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국·공립을 제외한 사설미술관이 4백여개나 되는 것과 비교해보면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올들어 서울에서만 30여개의 화랑이 신설되는 등 화랑은 크게 늘고 있지만 미술관은 답보상태다.
미술계에서는 이처럼 미술관이 크게 부족한 것을 미술관법이 없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화랑협회와 한국미술협회 등은 지난해부터 세미나를 열고 미술관법 시안을 만들어 문화부에 건의하는 등 미술관 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박물관법은 적용범위가 미술 뿐 아니라 민속·자연과학·산업 등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분야만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관 법이 따로 제정되어야한다는 주장이다. 미술관을 설립하거나 개인 또는 기업이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할 때 여러 가지 세제혜택을 주고 부지를 지원해 미술관 설립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같은 미술관 설립 운영에 따른 혜택이 자칫 소장가들의 재산상속 등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고 보고있다.
주무부서인 문화부는 미술관 설립에 현행 박물관법이 미비하다고 보고 우선 박물관법의 보완·개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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